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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41602543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25-09-08
책 소개
목차
어떤 가정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누가 찍었는지, 어떤 날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소설을 구상하다가 그가 떠올라 상자를 열었고 해상도 낮은 사진이 거기 있었을 뿐이다. 이런 사진과 내 기억 속을 헤집는 것 말고는 나는 그를 찾을 수 없다. 엽도 마찬가지다. 혹은 많은 사람들이.
나는 성인이 되어 이 시절을 생각할 때 어째서인지 그날 밤이 가장 먼저 떠오르곤 했다. 엽의 얼굴에 마르지 않은 채 묻어 있던 피딱지와 수도꼭지에서 세차게 흘러나오던 물줄기, 담 너머 하천을 향해 흘러가던 물소리와 새벽까지 웅성거리던 풀벌레 소리. 무더운 여름이 끝나가던 시기라 밤공기는 싸늘했고, 다락방으로 가 그곳에 있던 박스들을 랜턴 빛으로 하나하나 비춰가며 열었다. 해가 뜰 때까지 잠들지 못했던 새벽. 다락방은 아버지가 쓰레기를 수거하다가 주워온 잡동사니들이 쌓여 마치 작은 상점 같았다. 타자기와 트럼펫, 무늬가 화려한 망토, 표면이 부드러운 피아노 건반 덮개, 표지가 해어진 족보까지. 일층에서 잠든 가족이 깰까 우리는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그래서 서로의 눈빛과 표정만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말은 거추장스러웠다. 말보다 가깝게 뭔가를 연결 지을 만한 사물들이 거기 있었다.
평소 음악을 잘 찾아 듣지 않는 준은 내게 스피커를 건네며 요즘 듣는 음악을 틀어달라고 했다. 음악이 시작되자 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췄다. 나도 준의 손에 이끌려 춤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이상한 움직임을 보였고 준은 소파에 드러누워 한참을 웃었다.
우리 막 사귀기 시작했을 때 음악 자주 들었던 거 기억나?
준이 물었다.
네가 같이 듣자고 들려줬잖아.
그랬지.
그랬어.
나는 준을 일으켜세워 의자에 앉혔다.
그때 많이 들어줄걸. 같이 할걸. 그런 생각이 들어, 요즘.
볼이 빨개진 준은 물을 한 컵 마시곤 다시 말했다.
그래서 여기 왔어.
나는 얇은 모포를 가져와 준의 무릎에 덮어줬다. 그러곤 테이블 위에 놓인 식기들을 정리했다. 준은 잠이 오는 듯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