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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민자 문학

프랑스 이민자 문학

(이민자·문자·정체성)

김미성 (지은이)
한국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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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민자 문학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프랑스 이민자 문학 (이민자·문자·정체성)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세계문학론 > 프랑스문학론
· ISBN : 9788968179280
· 쪽수 : 412쪽
· 출판일 : 2020-08-31

책 소개

1980년대 마그레브계 이민자들의 자녀 세대는 역사의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그들은 문맹이었던 부모 세대와는 달리 말과 글의 세대로 대도시 주변 임대 주택 단지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자신들의 존재, 현실, 고민, 절망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목차

들어가기 전에

1부 들어가는 말
1장 프랑스의 이방인들
2장 프랑스 이민자 문학의 탄생

2부 1980년대의 프랑스 이민자 문학
1장 1980년대 : 뵈르 문학의 탄생과 글쓰기를 통한 정체성 탐구
1. 메디 샤레프=
2. 아주즈 베가그
3. 파리다 벨굴
4. 사키나 부크헤데나
5. 레일라 세바르

3부 1990년대의 프랑스 이민자 문학
1장 방리외 : 프랑스 이민자의 현주소
2장 글쓰기를 통한 정체성 탐구 : 어떤 정체성인가?
1. 페루자 케사스
2. 소라야 니니
3. 시모
4. 타사디 이마슈
5. 폴 스마일

4부 2000년대의 프랑스 이민자 문학
1장 뵈르 문학을 넘어서 세계문학으로
2장 2000년대의 뵈르 : 어떤 정체성인가? 그리고 그들에게 글쓰기란?
1. 아흐메드 칼루아즈
2. 람단 이사드
3. 니나 부라위
4. 파이자 겐
5. 라쉬드 자이다니
6. 라크다 벨라이드

5부 나가는 말

참고문헌
주요 뵈르 작가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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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김미성 (지은이)    정보 더보기
연세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불어불문학을 공부했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프랑스 낭만주의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취득 후에는 문학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으로 관심 영역을 확장해 이에 관련된 많은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다. 출간한 역서로는 『오월의 밤』, 『백색의 시학』 등이 있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로 재직하면서 문자의 사회 문화적 연구에 매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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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1부 - 들어가는 말

1장 - 프랑스의 이방인들


프랑스 이민자 문학에 다가가려는 우리를 가장 먼저 가로막는 것은 뵈르Beur라는 낯선 단어이다. 뵈르란 누구이며, 뵈르 문학과 프랑스 이민자 문학은 어떤 관련을 지닌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끌어내기 위해서 먼저 프랑스 역사에서 이민자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배경에 대해 짚어보도록 하자.
단일민족임을 자랑하고 같은 ‘핏줄’이라는 사실에서 느껴지는 가슴 뭉클한 동질감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프랑스는 기본적으로 이민자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물론 프랑스에서 “우리 조상 갈리아인Nos Ancêtres les Gaulois”이라는 문구는 프랑스인이라면 누구나 그 과정을 수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반복해서 들어온, 민족의 동질성을 주입하는 마법 같은 표현이다. 그 때문에 오랜 세월 프랑스인들은 자신들 대부분이 갈리아인의 후손임을 무의식적으로 가슴에 새겨왔다.
갈리아인이 프랑스의 역사에 등장한 것은 청동기시대이다. <케임브리지 프랑스사>에서는 프랑스인들이 자신들의 뿌리로 삼고 있는 갈리아인이 프랑스 지역에 자리 잡게 된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원전 8세기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난 새로운 이주 집단이 북부 지방을 이미 침범해 들어오고 있었다. [...] 이들은 남부와 서부로 진출하였고 기원전 700년에 이르러서는 아르모니카 반도에 살게 되었다. 기원전 400년까지 이들은 카르카손과 제네바 간을 잇는 선의 북부 프랑스 전역에 거주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구의 이동은 동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초원 지대의 스키타이인과 근동 및 중동 지방의 몇몇 집단은 유럽을 가로지르는 이주 움직임의 구심점이었으며, 이는 이후 수 세기에 걸쳐 장, 단기적인 이주의 물결을 촉발시켰다. 처음에 그리스와 로마의 작가들은, 유럽 전역으로 광범하게 퍼져나간, 지칠 줄 모르고 자유롭게 이동하던 켈트족을 지칭하여 ‘골족Gauls’이라고 불렀다. 이들 중 일부는 서부뿐만 아니라 남동부로도 이동하며, 발칸반도와 소아시아의 ‘갈라티아Galatia’에 이르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그 이름이 ‘갈리아’가 되었음.) [...] 파리 분지에 근거를 둔 파리시Parisii 족은 요크셔에 식민지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 민족은 기원전 2000년쯤부터 형성된 인도 유럽 어족 언어를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 언어는 오늘날 주요 유럽 언어들의 기초가 되었다. 이들은 프랑스 전역에 걸쳐 긴밀한 문화적 통합을 이루었다. 오늘날의 프랑스 지명에서 이전에 존재하던 언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지금의 프랑스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이 ? 예를 들어 감동적인 라스코 동굴이나 코스케 동굴의 벽화를 그린 사람들 ? 남겼을 흔적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갈리아인’인 ‘우리’ 프랑스인이 아버지의 아버지의 그 아버지 때부터 프랑스 지역에 ‘계속’ 뿌리박고 살아왔음을 은연중에 주입하는 이 문구는 사실과는 다르다. 프랑스는 지정학적으로 유럽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까닭에 지속적으로 유럽 문명의 교차로가 되어왔다. 그 결과 프랑스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로마인의 점령, 게르만의 침공, 노르만족의 정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의 프랑스 지역에서는 이베리아계, 그리스계, 아랍권의 북아프리카인, 아시아의 베트남인 등 수많은 이방의 민족들과의 교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런 까닭에 ‘우리’ 조상 ‘갈리아인’은 프랑스 지역에 흘러들어온 이방인들과 뒤섞여 지금의 프랑스를 이루어왔다고 말하는 편이 사실과 가깝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 조상 갈리아인’의 신화는 사실상 수정되지 않으면 안 되는 오류이다. ‘우리 조상 갈리아인’들은 조상으로 갈리아인을 갖지 않은 사람들과 어우러져 프랑스 지역에서 살아오며 지금의 프랑스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랑스는 이주가 일상화되어 있는 현대에 접어들기 이전부터도 대표적인 이민자의 나라이다. 우리가 ‘프랑스인’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불과 몇 대만 거슬러 올라가도 이방인의 피가 섞여 있음을 너무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민자들에 대해 취한 강경 노선으로 잘 알려진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아버지는 헝가리에서 이주해 온 이민자 출신이다. 연예계, 패션계 그리고 스포츠계로 범위를 넓혀보면 유사한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샹송 역사상 가장 프랑스적인 노래를 불렀을 뿐만 아니라 아마도 샹송 가수 중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은 가수이기도 할 에디트 피아프의 외증조부는 모로코 출신이며, 파리 오트 쿠튀르의 황태자라고 불렸던 이브 생로랑은 알제리인의 혈통을 이어받았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었던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 역시 알제리 출신임은 비록 축구광이 아니라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20년 만에 프랑스에 우승컵을 안겨준 선수 중 한 명인 킬리안 음바페의 아버지는 카메룬 출신이며, 어머니는 알제리 출신의 이민자이다. 이처럼 프랑스는 본토박이와 이방인의 경계가 그리 분명치 않은 나라이다. 그렇다면 대체 본토박이 프랑스인은 누구인가? ‘순수한’ 프랑스인이 있기는 한 것일까?
프랑스에서 특히 마그레브 출신 이민자들의 존재가 부각되고, 정치 쟁점화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였다. 이와 맞물려 의미심장한 사건이 하나 있다. 1981년에서 1995년까지 프랑스 최초의 사회당 출신 대통령이었던 프랑수아 미테랑은 현직 대통령이었던 1987년 공개적으로 ‘우리 조상 갈리아인’의 신화를 거부한다. 그는 소르본 대학에서 ?프랑스와 문화의 다원성?을 주제로 열렸던 한 심포지엄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우리 조상 갈리아인’의 신화를 정면 반박한 바 있다.

우리 조상은 갈리아인이고, 조금은 로마인이고, 조금은 게르만인이고, 조금은 유대인이고, 조금은 이탈리아인이고, 조금은 스페인인이고, 아마도 점점 포르투갈인이 되어갑니다. 누가 알까요? 폴란드인이 되어가는지? 그리고 나는 이미 우리는 조금은 아랍인이 아닌지 자문합니다.

하지만 미테랑 대통령이 표명한 것과 같은 이민자들에 대한 이런 포용적인 시각은 현재진행형은 아니다. 그로부터 삼십여 년이 지난 2020년 프랑스는 우경화했고, 이민자들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반감은 극에 달해 있기 때문이다. 그 원인으로 지목될 수 있는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높은 실업률, 이에 더해 모두가 짐작하듯이, 직접적으로는 지난 2015년부터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시민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테러의 영향이 가장 클 것이다.
프랑스에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 국가IS’와 연관되어 2015년 이후 발생한 테러는 그간 수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프랑스인들의 이방인에 대한 불만과 불안, 공포를 가시화시킬 수 있을 만큼 위협적이었고, 잔인했고, 지속적이었고, 대규모의 사상자를 냈다. 2015년 1월 발생한 프랑스 시사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에 대한 테러는 전 세계인을 놀라게 했다. 이는 2015년 1월 7일 이슬람 극단주의자 쿠아치 형제가 ≪샤를리 에브도≫ 잡지사 사무실에 난입해 총기를 난사해 편집장 샤르브 등 열두 명이 목숨을 잃고, 총 열일곱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샤를리 에브도≫는 무신론과 반교권주의를 표방했던 까닭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표적이 되었는데 특히 테러 직전인 2015년 1월, 이 잡지는 ?모하메드의 일생La vie de Mohamet?이라는 타이틀로 두 권의 특별 호를 발간하는데, 이 특별 호의 발간이 테러의 직접적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테러범인 아메디 쿨리발리는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튿날 경찰관 한 명을, 테러 이틀 후인 1월 9일에는 파리 유대인 식료품점에서 인질극을 벌여 네 명의 인질을 각각 살해했다.
하지만 2015년 파리의 불행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십 개월 만인 2015년 11월 파리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악의 테러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IS가 파리 시내·외에서 벌인 동시다발적 테러로 130여 명의 시민이 사망하고 350여 명이 부상당했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고, 프랑스 사회의 분위기는 자유보다는 ‘프랑스인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했다. 톨레랑스의 가치를 내세우고 자유, 평등, 박애라는 대혁명의 이념을 자랑했던 프랑스에서 테러 이후 극우 정당이 종전의 거부감을 극복하고 ‘보통의’ 프랑스인들에게 큰 인기를 끄는 이례적인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 사건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과는 달리 외국에서 프랑스로 잠입한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겉으로는 너무나 평범해 보였던 이민자 출신 젊은이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밝혀짐으로써 프랑스 내부적으로는 더 미묘하고 복잡한 상황을 만들어내게 되었으며, 프랑스 사회를 더 큰 충격에 빠뜨리고 말았다.
2016년에도 모슬렘에 의한 테러는 프랑스에서 계속 자행되었다. 2016년 7월 14일 프랑스의 휴양지 니스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던 사람들은 IS의 무차별적인 테러에 무고한 목숨을 또 잃어야 했다. 7월 14일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시작을 알린 바스티유 감옥의 습격이 있었던 날로, 프랑스의 가장 큰 국가적인 축제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 남프랑스 코트 다쥐르의 유명한 해안도로인 ‘영국인들의 산책로’에서 축제를 즐기며 바캉스를 만끽하던 사람들은 갑자기 자신들을 향해 돌진해 오는 트럭에 치여 86명이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빼앗겼고, 434명이 부상당했다. 이 테러의 주범인 모하메드 라우지부렐Mohamed Lahouaiej-Bouhlel은 니스 거주 튀니지인이었다. 그는 정신병의 전력이 있었으며,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니스의 테러는 잘못된 것이었을지언정 철저한 준비와 신념에 의한 테러가 아니었으며, 개인적인 폭력성이 이슬람 급진주의와 급속히 결합해 어이없는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진단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진단은 향후 이슬람과 결부된 테러의 양상을 더욱 종잡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기도 했다. 사건 직후 발간된 ≪르몽드≫지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을 수 있다.

내무부 장관인 베르나르 카즈뇌브에 따르면 지난 목요일 저녁 니스의 영국인들의 산책로에서 자신의 트럭 핸들로 여든네 명의 목숨을 앗아간 트럭 운전사는 “아주 급속히 급진화된 것 같다.” 내무부 장관은 이번 테러는 “필수적으로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서도, 필수적으로 훈련을 받지 않고서도 극도로 폭력적인 행동에 가담할 수 있다는 IS의 메시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 “새로운 유형의 테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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