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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인문계열 > 철학
· ISBN : 9788968498930
· 쪽수 : 516쪽
· 출판일 : 2022-06-24
책 소개
목차
서문 / 05
『거산유고(巨山遺稿)』 / 강천수 / 11
『고당집(顧堂集)』 / 김규태 / 21
『균헌유고(筠軒遺稿)』 / 홍우진 / 45
『금서유고(錦西遺稿)』 / 유준철 / 49
『낙사유고(洛史遺稿)』 / 유구현 / 63
『대봉실기(大峯實記)』 / 최경환 / 70
『도남집(道南集)』 / 기노선 / 74
『백곡시고(柏谷詩稿)』 / 구익모 / 80
『복재유고(復齋遺稿)』 / 이종택 / 87
『부해만고(浮海漫稿)』 / 안병택 / 94
『서강문집(西岡文集)』 / 유원중 / 106
『성계집(惺溪集)』 / 조용 / 123
『성암유고(惺菴遺稿)』 / 나상일 128
『성은유고(城隱遺稿)』 / 김재범 133
『소백처사유고(小栢處士遺稿)』 / 안달삼 / 137
『소해유고(蘇海遺稿)』 / 노종룡 / 143
『송계유고(松溪遺稿)』 / 박영호 / 155
『송산일고(松山逸稿)』 / 변대용 / 161
『송암유고(松菴遺稿)』 / 신재철 / 166
『송오유고(松塢遺稿)』 / 김기현 / 175
『송파유고(松坡遺稿)』 / 박학동 / 181
『야암유고(野菴遺稿)』 / 신연규 / 186
『야은만록(野隱謾錄)』 / 박정규 / 192
『오산유고(梧山遺稿)』 / 이용헌 / 201
『오암유고(梧巖遺稿)』 / 조석일 / 206
『용오유고(龍塢遺稿)』 / 정관원 / 212
『우고선생유고(又顧先生遺稿)』 / 이태로 / 222
『우산유고(牛山遺稿)』 / 홍우용 / 233
『원재유고(遠齋遺稿)』 / 박철현 / 243
『월산유고(月山遺稿)』 / 조성주 / 250
『유촌유고(有村遺稿)』 / 정휴명 / 257
『율계집(栗溪集)』 / 정기 / 263
『이당집(而堂集)』 / 권재규 / 285
『이천집(夷川集)』 / 남창희 / 320
『인산재문집(仁山齋文集)』 / 배현기 / 332
『일봉유고(日峰遺稿)』 / 이교문 / 343
『일재유고(逸齋遺稿)』 / 정홍채 / 354
『입암집(立巖集)』 / 남정우 / 363
『정재집(正齋集)』 / 양회갑 / 387
『죽오집(竹塢集)』 / 이상백 / 407
『죽파유고(竹坡遺稿)』 / 심계순 / 414
『중헌문집(重軒文集)』 / 황철원 / 420
『총계집(叢桂集)』 / 조영만 / 432
『추봉집(秋峰集)』 / 남승우 / 439
『추탄유고(秋灘遺稿)』 / 이정현 / 451
『춘탄문집(春灘文集)』 / 이태현 / 456
『호석유고(湖石遺稿)』 / 김재헌 / 464
『효당집(曉堂集)』 / 김문옥 / 470
『흠재문고(欽齋文藁)』 / 조덕승 / 488
『희암유고(希庵遺稿)』 / 양재경 / 499
책속에서
『거산유고(巨山遺稿)』
1. 저자 소개
강천수(姜天秀, 1863~1951)의 자는 중민(仲民)이고 호는 거산(巨山)이며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의 후손으로, 1863년 12월 18일 전남 장성군 황룡면 장산리(莊山里)에서 통덕랑(通德郞) 강지영(姜芝永)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하동정씨(河東鄭氏) 정재진(鄭在珍)의 딸이다. 조부는 춘파(春坡) 강인회(姜寅會, 1807~1880)로,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의 문인이다.
어려서 조부에게 『천자문』을 배우다가 15세 때 조부의 권유에 따라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경전을 정밀하게 연구하고 백가서(百家書)까지 널리 배우니 문리가 마치 천리마가 광야를 달리는 듯하였다. 스승의 가르침을 돈독히 믿고 자신의 체험을 통해 연구하므로 스승이 나무랄 데가 없다고 권면하며 “나를 흥기시킬 제자다.”라고 감탄하였다. 동학들도 공경하고 추종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재기가 넘치는 호걸로, 학처럼 우뚝한 선비로 붓을 한번 들면 물이 흐르듯 하여 다시 다듬어 시문을 꾸미는 법이 없었을 정도로 학문과 문장에 일가를 이루었다.
21세 때 기정진의 문집을 간행할 때 육봉(六峯) 이종택(李鍾宅, 1865~1842)과 함께 감인(監印)을 맡았는데 스승이 누차 칭송하여 말하기를 “그대는 문리가 크게 통하였으니 아주 기뻐할 일이다.”라고 하였다. 25세 때 모친상을 당하고 33세 때 부친상을 당하자,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라 집상(執喪)을 한결같이 하였다. 1897년 35세 때 족숙 강해영(姜海永)이 집안 자손들을 가르치기 위해 고창군 성송면 암치(巖峙)로 초빙하자, 장성에서 이사한 뒤 서당을 열고 후진을 교육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울분을 이기지 못해 침식을 잊고 통분하였고, 1908년 스승 기우만이 의병을 일으키자 달려가서 위태로운 일을 마다하지 않고 도와주었다. 1910년 국권침탈이 되자 향리에 은거하며 두문불출하면서 가까운 지인들과 시사를 논하며 도학을 지키고자 하였다.
1930년 68세 때 스승의 문집을 간행하게 되자, 여러 동학과 담대헌(澹對軒)에서 여러 가지 일을 주선하였다. 인근 향리에 거주하고 있는 참봉 정영원(鄭榮源, 1853~1940)은 기정진의 문인이었는데, 태호정(台湖亭)을 짓고 후배인 강천수를 초빙하여 집안 자제들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잠시 그곳에서 강학하자 사방에서 배우러 오는 사람이 많아 수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러한 강학 활동으로 향리의 풍속이 개선되었다. 만년에는 제자들이 뜻을 모아 스승이 사는 성송면 암치리 서쪽 계곡 위에 거산정사(巨山精舍)를 지어 학문과 후학 강학에 힘쓰도록 하였다. 그는 정사에서 강학하면서 동학 및 지인들과 역사를 논하고 시문을 평하며 유유자적하였다. 특히 그는 제자들에게 “노사 선생의 「외필(猥筆)」과 「납량사의(納凉私議)」 두 편은 실로 유학의 도술(道術)을 말한 큰 글이다.”라고 하면서 정독하기를 권장하였다. 1951년 2월 15일 세상을 떠나니 향년 89세였다. 대산면 장자산(莊子山) 선영 아래에 안장되었다.
2. 문집 구성과 내용
『거산유고(巨山遺稿)』는 4권 1책 필사본으로 강천수(姜天秀)의 시문집이다. 권두에는 변시연(邉時淵)이 1991년에 쓴 서문, 권말에는 배성수(裵聖洙)가 1991년에 쓴 발문이 있다. 이 문집은 1992년 학민문화사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었으며, 2008년에 국역되었다. 이 필사본 문집은 후손이 소장하고 있다.
권1은 235제 247수가 수록되어 있다. 시는 스승이 강학하던 삼산재(三山齋)에서 학문을 닦으며 그 주변의 화훼(花卉)를 읊은 시, 노사학파 학인들과 교류하며 지은 시가 적지 않은데, 그 가운데 후석(後石) 오준선(吳駿善, 1851~1931)과 식재(植齋) 기재(奇宰, 1854~1921)가 방문하자 서로 창화(唱和)한 시, 육봉(六峰) 이종택(李鍾宅, 1865~1942)을 방문하여 온천정사(溫泉精舍)의 십승을 읊은 시, 춘담(春潭) 기동준(奇東準, 1869~1918)에게 올린 시 등이 있고, 자연과 계절을 읊거나 누정을 찾아 지은 차운시, 부안 변산반도를 여행하며 명승지에 대해 읊은 9수가 있다. 더욱이 기재를 비롯한 여러 학인을 애도한 만시도 있다.
권2는 서(書) 68편, 서(序) 29편이 수록되어 있다. 서간문은 송규헌(宋奎憲, 1870~?)을 비롯하여 노사학파의 기동준과 오준선 등, 면암학파의 지은(智隱) 최전구(崔銓九, 1850~1938) 등의 다양한 학인들과 나눈 시사 및 안부, 예학 등의 다양한 주제를 담론한 것이다. 특히 문인들에게 학문을 독려하는 글도 있다. 서문은 진주강씨(晉州姜氏) 선조와 외손계, 가승, 파보 등에 관한 글, 진주정씨 및 문집, 시축(詩軸), 계안(契案)에 대해 지은 것이다.
권3은 기(記) 38편, 발(跋) 11편, 상량문(上梁文) 11편, 제문(祭文) 8편, 고축(告祝) 2편이 수록되어 있다. 기문은 남하한 선조를 모신 사당의 중수기를 비롯하여 여러 당호 및 그 중수기, 누정, 그리고 학인들의 호에 관한 내용이다. 발문은 집안 선조 강시경(姜時儆, 1612~1682)의 문집 『은휴집(恩休集)』을 비롯한 여러 문인의 유집(遺集), 정시해(鄭時海, 1872~1906)가 시묘 생활을 하며 기록한 것에 관한 내용, 효행에 대한 천장(薦狀), 그리고 계안(契案)에 관해 쓴 것이다. 상량문은 재실과 누정에 대한 것이다. 제문은 스승 기우만을 비롯한 신호(莘湖) 김녹휴(金祿休, 1827~1899), 오준선(吳駿善), 최전구(崔銓九) 등을 애도한 것이다. 고축은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의 제자이며 사위인 청정공(淸靖公) 배을서(裵乙瑞)를 청천사(淸川祠)에 봉안하고 봄과 가을에 제사지낼 때 쓰인 축문이다.
권4는 비(碑) 4편, 묘갈명(墓碣銘) 23편, 묘표(墓表) 16편, 행장(行狀) 10편, 전(傳) 3편, 추록(追錄) 2편이 수록되어 있다. 비문은 효자를 기리는 글이고, 족질이자 제자인 강대식(姜大湜, 1878~1944)이 성송초등학교를 사립에서 공립으로 전환하여 개교하자 그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묘갈명과 묘표는 고창의 선배와 동학을 비롯한 인근 지역 학인들의 활동, 그리고 효부와 열부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행장은 집안 선조 인천처사(仁川處士) 강지영(姜智永)을 비롯한 인근 향리의 여러 학인과 제자 강대식의 일대기를 기록한 것이다. 전은 오장환(吳壯煥, 1863~1909)의 의병 활동, 밀양박씨(密陽朴氏)인 박공길(朴公吉) 외 4인의 효행, 그리고 율봉(栗峯) 신현중(申鉉中, 1877~1942)의 항일의지를 열전형식으로 기록한 내용이다. 추록은 편집 간행에서 누락된 기문과 묘갈명 두 편을 추가한 것이다.
부록은 1990년 배성수(裵聖洙)와 윤정복(尹丁鍑)이 강천수의 일대기를 기록한 행장과 묘갈명이다.
3. 문집 목차
巨山遺稿序(邉時淵)
卷一
詩: 余遊三山齋也松沙先生吟嘉卉十絶詩以示余余迺忘奉和(松 梧 梅 柳 薇 芝 菊 蘭 蓮 芭) 次李六峰(鍾宅)溫泉精舍十勝韻(溫泉精舍 方塘觀魚 盤松聽琴 菊峰賞秋 砥柱臨流 沙羅振衣 雙溪濯足 草峰爲筆 盤石醉月 飛龍看雲) 寄李六峰(五首) 次勿欺齋重修韻 題族姪參奉(大直)悅雲亭韻 吳後石(駿善)奇植齋(宰)訪余于雲亭留連數日詩以相和(二首) 老圃堂成步韻以寄 與有村鄭丈(休明)逐日追從于道東齋(三首) 次朴翰林(海昌)侍山齋韻 族姪(奭)尹婿(炳祜)留學東京贈別(二首) 南棠(奭)再赴東京時適初秋不無遠離之悵詠一十韻以贈別 金承旨(然泰)所同羅碧史吟(二首) 同崔參奉智隱(銓九)會鶴天齋 呈奇上舍春譚(東準○五首) 賀族兄晩圃堂(淵秀)壽宴 有感題悅雲亭 次呈金上舍(榮喆)晩睡堂韻 春晩與閔斗南(一鎬)登悅雲亭相和 同閔斗南夜話 次呈朴雲樵(源昇)晩翠亭韻 福洞齋與李友六峰夜話(二首) 呈崔京祚梅巢三絶 次五惇齋韻(二首) 次鄭上舍(官源)回甲韻 次黃參奉(鍾允)回甲韻 賀伯賢(奭)得男(二首) 與鄭南岡(民源)訪鄭松河(晩源)時餘熱猶熾 次高光斗大人回甲韻 次金氏世松亭韻 呈崔智隱 上元日與尹友石諸伴唱酬玉洞新亭 殷春日同族弟溪隱(璣秀)宿族弟白隱(成千)所 偶吟 客至相和 謹次族兄晩圃堂板上韻 次靈光鷹岩望華亭韻 次成寢郞(永悳)松溪亭韻 次松溪亭十勝韻(老松鶴觀 平川漁磯 榜峴樵篴 吉城靑嵐 安市野燈 兜率曉鍾 鷼山明月 鷄郊嘉禾 竹林初雪 蓬萊歸運) 次後松堂韻 次康珠溪龍岡亭韻 訪鄭友南史宿山齋 次金友(在聲)蘆川亭韻 次徐參奉(源玉)何人亭韻 賀金溪樵(箕行)晬日兼慶宴韻 次洪友(鍾洙)香社韻 追李復齋(鍾澤)回甲韻 和羅惺菴致龜回甲韻 贈別吳省菴(誠根○四首) 次金小松(台信)壽辰韻 贈鄭仁夫(休麟) 贈別閔斗南 庭梅新開爲賦長絶八首亦發憫之一事也 和族兄雲菴韻 同金石心(邦喜)諸友秋遊蓬來(九首: 月明庵 天皇峰 中溪 海倉 宿知止浦 采石江 格浦 水落洞 來蘇寺) 歸路入壺巖 禪雲寺 路中與諸益口號以別 逢奇友松南 七月旣望會橋洞靖慕閣(金氏齋○二首) 同鄭友南岡吟 次南岡亭韻 勿欺齋和諸君上韻(十一首) 謝金斯文(鍾熙○三首) 春晩到玉洞與諸益溯流陟岡 年邁衰甚久矣無詩癸酉冬以毒感數旬伏枕得數韻呼筆疲恭氣力半雜呻吟聲病有不暇擇矣(二十五韻) 寄雲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