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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68970214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15-11-04
책 소개
목차
1. 주님, 저희를 버리지 마소서
2.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3. 여러 명을 동시에 안는 것 같습니다
4. 인간의 빛나는 이성과 지성으로
5. 모든 악으로부터 오는 협박에서 당신의 모상을 구하시며
6. 천국의 모든 성인들이여, 제 위에 내리소서
리뷰
책속에서
원래 범띠가 사제랑은 상극이야. 다 이런 사연들이 있어. 넌 별로 특별한 것도 아니야.
“그럼 신부님은 뭐가 그렇게 특별하신데요!”
최준호가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소리쳤다. 김신부를 노려보는 눈에 분노가 일었다. 그런 최준호를 가만히 바라보던 김신부는 다시 소주잔을 채웠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최준호는 온몸에 뻗친 흥분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박수사님은 왜 그만 두셨습니까?”
“놈들은 범죄자들이랑 비슷해. 자신의 존재가 알려질수록 더 깊게 숨어버리지. 들켜버리는 순간 이미 반은 진 것이나 다름없어.”
최준호는 김신부의 말을 들으며 여러 기억을 떠올렸다. 미친놈 하나 있다고 내뱉던 박수사의 얼굴과 애 엄마와 합의를 했다고 말하던 학장신부의 목소리, 그리고 김신부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수도원장의 눈빛.
“다행히 수컷이 여자 몸에 들어갔으니까 가능한 일이야. 그래서 우리한테 행운이고.”
김신부의 얼굴은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최준호는 김신부가 어떤 사람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김신부는 어두운 표정으로 술병을 들어 잔에 기울였다. 병은 텅 비어있었고, 겨우 소주 한 두 방울이 떨어질 뿐이었다. 최준호는 취기가 오른 김신부의 얼굴을 살피며 그만 일어나자고 했다.
“그래, 이제 달도 올라왔겠다.”
빈 잔을 다시 내려놓는 김신부의 얼굴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술병처럼 허전했다.
최준호는 먼저 밖으로 나와 묶어두었던 돼지를 챙겼다. 가게 안에서는 김신부와 가게 주인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김신부는 돈을 내려고 하고 가게 주인은 받지 않겠다고 하는 모양이었다. 김신부가 무어라 말을 하며 억지로 돈을 쥐어주고 나오자 가게 주인이 뒤따라 밖으로 나왔다. 가까이서 보니 가게 주인은 만삭의 임신부였다. 김신부가 최준호를 데리고 골목을 빠져나가자 가게 주인이 뒤에서 소리쳤다.
“오빠! 나 다음달이야. 안 오기만 해봐!”
김신부는 화답을 하듯 손을 들어 흔들었다. 유흥업소가 몰려있는 길은 번쩍이는 불빛과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뒤섞여 번잡했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앞서가던 김신부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 것처럼 멈추더니 최준호를 돌아보았다. 최준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김신부가 손가락으로 최준호의 이마를 툭툭 건드리며 외쳤다.
“우리 지금 5000살 먹은 놈 만나러 가는 거야. 긴장해!”
최준호는 이마를 매만지며 인상을 찌푸렸다. 단호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