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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정치비평/칼럼
· ISBN : 9788971997154
· 쪽수 : 443쪽
· 출판일 : 2016-03-21
책 소개
목차
저자 서문/ 프롤로그
1부 권력을 불편하게 만든 사법부(1945~1971)
1 미군정과 이승만 시절의 법관들
2 5 · 16 군사반란과 사법부
3 무장군인 법원난입 사건과 동백림 사건
4 1971년 봄과 여름, 사법부의 결정적 판결 두 가지
5 사법파동, 사표를 쓴 판사 37인
2부 유신, 겨울공화국의 사법부(1972~1979)
1 유신쿠데타와 재임명에서 탈락한 법관들
2 NCC 구호금 횡령 사건, 재판의 배후는 중앙정보부
3 긴급조치 1호 · 4호와 사법권 침해
4 사법살인, ‘인혁당 재건위’ 사건
*인혁당 사건과 공안검사들의 항명파동
5 ‘긴급조치 9호’하의 재판
6 ‘사법부 독립’을 요구한 원주선언과 명동 사건
3부 군사정권, ‘회환과 오욕’의 사법부(1979~1995)
1 10.26 사건, 허술한 절차와 신속한 처형
2 비서관 뇌물 사건, 안기부의 검찰 길들이기
3 국가모독죄와 안기부의 보고서들
4 안기부의 학생시위 엄벌
*연세대생 내란음모 사건과 안보수사조정권
5 즉심판결 판사들에 대한 안기부의 내사
6 불륜의 파트너, 조정관과 형사수석부장
7 법정소란, 사법부를 믿지 못하는 피고인들
*탄압받는 변호인들
8 “돌출 판결”인가, “소신 판결”인가
9 암흑시대의 빛나는 판결들
4부 정보기관의 간첩조작과 고문, 조정당하는 사법부(1982~1986)
1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 (1)
2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 (2)
3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 (3)
4 김근태 고문 사건 (1)
5 김근태 고문 사건 (2)
6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두 공범
5부 민주화 이후의 사법부, 과거는 청산되었는가?(1988~1997)
1 ‘공안판사제’를 꿈꾼 안기부
2 법관들에게도 이념교육이 필요하다?
3 민주화와 제2차 사법파동
4 제 3차 사법파동과 ‘정치판사’ 논란
5 사법부의 과거청산
*민주화 이후 검찰개혁은 이루어졌는가?
에필로그/ 미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사법파동 당시 계엄령까지 생각했던 박정희는 진짜 계엄령을 선포한 뒤 사법부를 손보았다. 박정희는 1973년 말 새 헌법에 따라 모든 법관을 새로 임명했다. 법관 재임명이라기보다는 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껄끄러운 법관들을 걸러내는 작업이었다. 대법원 판사 중 절반이 넘는 9명(사광욱, 양회경, 방순원, 나항윤, 손동욱, 김치걸, 홍남표, 유재방, 한봉세)이 ‘의원면직’ 형식으로 물러났는데, 1971년 국가배상법 제2조 1항에 대한 위헌판결에서 위헌의견을 낸 이들이었다. 일반판사로는 356명이 재임명되고 41명은 재임명을 받지 못했다.
정권의 압력으로 제구실을 못하자 법원의 권위는 크게 실추되었다. 1985년부터는 피고인들이 재판을 거부하거나, 피고인과 방청객들이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법관에게 야유를 보내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사법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학생운동이 이념적으로 급진화한 것은 법정소란 사태를 불러오는 주된 요인이 되었다. 민정당사 점거 사건이나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같은 대형 사건에서 수십 명이 한꺼번에 재판을 받게 되자 학생들은 너나없이 법정에서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부르며 재판을 거부했다.
1986년 4월 15일 유태흥이 역대 대법원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임기만료로 퇴임했고, 다음 날 법원행정처장 김용철이 새 대법원장으로 취임했다. 유태흥이 사법부 수장으로 있던 기간은 한국 사법부의 역사에서 최악의 시간이었다. 사법부는 권력에 완전히 종속되었고 법정소란과 재판거부바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시위 학생들에게 가벼운 판결을 내린 법관에 대한 보복인사 파문은 급기야 사법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안 발의로 이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