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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72754824
· 쪽수 : 560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1975년의 어느 춥고 흐린 겨울날,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때 나는 열두 살이었다. 나는 그날, 무너져가는 담장 뒤에서 몸을 웅크리고 얼어붙은 시내 가까이의 골목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래전 일이다. 사람들은 과거를 묻을 수 있다고 얘기하지만, 나는 그것이 틀린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과거는 묻어도 자꾸만 비어져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난 26년 동안 아무도 없는 그 골목길을 내내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달아났다.
내가 달아난 것은 겁쟁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아세프가 두려웠고 그가 나한테 할 짓이 두려웠다. 나는 다칠 게 두려웠다. 나는 골목에, 아니 하산에게 등을 돌리면서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믿게 만들었다. 나는 실제로 비겁하고자 했다. 내가 달아나는 진짜 이유는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아세프의 말이 맞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하산은 내가 바바의 마음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이고 죽여야 하는 양이었는지 모른다. 그것이 공정한 대가였을까? 내가 막을 새도 없이 그에 대한 답변이 떠올라버렸다. 그래, 그놈은 하자라놈일 뿐이야.
나는 속으로 누군가가 깨어서 내 말을 들었으면 싶었다. 그래서 내가 더 이상 이 거짓말과 함께 살 필요가 없어졌으면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깨지 않았다. 나는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내게 주어진 새로운 저주의 본질을 이해했다.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는 것이 내 저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