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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67901187
· 쪽수 : 560쪽
· 출판일 : 2022-08-20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1975년의 어느 춥고 흐린 겨울날,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때 나는 열두 살이었다. 나는 그날, 무너져가는 담장 뒤에서 몸을 웅크리고 얼어붙은 시내 가까이의 골목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래전 일이다. 사람들은 과거를 묻을 수 있다고 얘기하지만, 나는 그것이 틀린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과거는 묻어도 자꾸만 비어져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난 26년 동안 아무도 없는 그 골목길을 내내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지난여름 어느 날, 라힘 한이 파키스탄에서 전화를 했다. 그는 나한테 그곳으로 와달라고 했다. 수화기를 귀에 대고 부엌에 서서 전화를 받던 나는 전화기 속에 있는 게 라힘 한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속죄하지 못한 죄들이 가득한 내 과거가 그 속에 있었다.
나는 그들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돌아섰다. 뭔가 따뜻한 것이 내 팔목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눈을 깜박여보았다. 나는 아직도 내 주먹을 깨물고 있었다. 손마디에서 피가 흘러나올 정도로 깨물고 있었다. 내가 깨달은 또 다른 것은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이었다. 모퉁이를 돌 때, 아세프가 빠르고 규칙적으로 내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마음의 결정을 내릴 마지막 기회였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결정할 마지막 기회였다. 하산이 과거에 나를 위해 그랬던 것처럼, 골목으로 들어가 하산의 편을 들어주고 싸우고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결과를 감수하거나, 혹은 달아날 수 있었다.
결국, 나는 달아났다
“네가 그 돈을 훔쳤느냐? 하산, 네가 아미르의 시계를 훔쳤느냐?”
하산이 가늘고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그 말뿐이었다.
나는 뺨을 얻어맞은 것처럼 몸을 움찔했다. 나는 하마터면 진실을 얘기할 뻔했다. 그때, 나는 그것이 나를 위한 하산의 마지막 희생이라는 걸 알았다. 그가 아니라고 말하면 바바는 그의 말을 믿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하산이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바바가 그의 말을 믿는다면 나를 추궁할 것이었다. 나는 해명을 해야 할 것이고 결국 거짓말이 들통날 것이었다. 바바는 결코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었다. 하산은 진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내가 골목에서 모든 걸 보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거기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내가 자기를 배반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한번, 어쩌면 마지막으로 나를 구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