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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73815692
· 쪽수 : 268쪽
· 출판일 : 2010-02-26
책 소개
목차
불량배 18호
임금님과 거북이와 스즈키 군
궁극의 선택
언젠가 어딘가에서
공유
모험왕 야야
히치하이커, 요코
나그네의 의자
시간 여행
어른 대디와 꼬마 프랑체
규정된 여행
엄연한 삼색의 법칙
탈 샐러리맨 2인
물건 찾기 경주
기적의 개
작은 파시스트
2500년, 우주여행
사랑스런 로라
각자의 불만
불량배 55호
미스터리 트레인
이문화 탐방
세계관을 바꾸는 경악의 섬
일요일 아침은……
판타지아
라일라 아줌마의 펜션
은빛 마을
트라우마
방 할아비의 여행 가방
보라색 공포
애냐의 길
달콤한 날들
닥터 가나이의 항해기
미싱 브라이드
실종된 나그네에 관한 항설
운명?피할 수 없는 여행?
잔혹한 호인들의 마을
팟카라킹 5세의 생애
주문이 필요 없는 레스토랑
속 이문화 탐방
장피에르 롯시
귀향
화원
시식 인간
달
임금님과 스즈키 군
애프터 플라이
비포 플라이
후기
문고판 후기
여행의 찌꺼기 - 이시이신지
역자 후기
거꾸로 보는 특별 일러스트 - 쇼트 쇼트 트립
리뷰
책속에서
저는 오늘 아침, 싸구려 여인숙에서 가벼운 아침 식사를 끝내고 산책이나 할 겸 마을을 걸어 다니다가, 아직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는 희미한 햇빛 아래에서 이 마을 자전거들의 삼색이 얼마나 엄연한지를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그건 ‘위대한 딸기우유의 마을’에서 만난, 정말이지 위대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딸기우유 이상의 충격이었지요.
집, 시장, 식당, 술집, 마을회관, 진료소, 교회, 역. 찻길이 없는 이 마을에서는 어딜 가나 자전거가 눈에 띄었고, 그 자전거들 모두가 엄연한 삼색의 법칙을 따르고 있더군요. 엄연한 삼색의 법칙이란, 빨강, 하양, 노랑, 빨강, 하양, 노랑……의 배열을 말하는 것입니다. 빨강, 노랑, 하양……은 안 되지요. 하양, 빨강, 노랑……도 안 됩니다.
만약 맨 끝에 노란색 자전거가 서 있는 줄에 누군가가 또 노란색 자전거를 세우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엄연한 삼색의 법칙을 지키기 위해, 그(혹은 그녀)는 빨간색과 하얀색 자전거가 올 때까지 무조건 기다려야만 합니다. 실제로 저는 마을 곳곳에서 사람들이 순서에 맞지 않는 자전거를 옆에 둔 채 무료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았습니다.
“지금 하양을 기다리는구나?”
“안녕. 노랑이 빨리 와야 할 텐데.”
이런 소리가 가는 곳마다 들려오지요. 「엄연한 삼색의 법칙」 중
랏타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가을 운동회. 그중에서도 인기 종목인 ‘엄마들의 물건 찾기 경주’에서 1등을 따내기 위해, 엄마는 여태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해왔던가?
정말이지, 피를 토할 정도로 노력했다.
(중략)
엄마는 단연코 선두를 지키며 첫 번째 코너를 돌았다. 두 번째 코너에 접어들었을 때는 2등과의 거리를 더 넓혔다. 세 번째 코너에서 랏타와 달링의 얼굴이 언뜻 시야를 스쳤을 때, 엄마의 달리기에 더더욱 가속도가 붙었다. 죽을힘을 다한 라스트스퍼트. 마지막 직선코스 상에 하얀 봉투가 놓여 있었다.
랏타, 달링, 마침내 여기까지 왔어. 엄마의 눈에 벌써부터 눈물이 고였다. 인간이라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이 정도는 노력해야 하는 법이다. 엄마는 그것을 랏타, 너에게 가르쳐주고 싶었어…….
엄마는 눈물을 훔치며 오른쪽에서 세 번째 봉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뒤쪽에서 달려오는 엄마들이 따라잡기 전에 서둘러 봉투를 잡아 뜯었다.
하얀 종이에 적힌 지령. 순간, 엄마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오, 마이, 갓! 「물건 찾기 경주」 중
이런 이야기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나 나치 폭포와는 완전히 다른 여행의 산물이다. 사진이나 그림에 남지도 않고, 물론 가이드북에도 실려 있지 않다. 그야말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들개나 빈 깡통과도 같은 것, 말하자면 여행의 ‘찌꺼기’이다. 교회나 폭포는 들고 올 수 없지만, 이러한 ‘찌꺼기’는 얼마든지 가지고 돌아올 수 있다. 나는 여행에서 돌아와, 한 평 반 남짓한 상하이의 여관이나 프랑크푸르트의 마약견이나 아바나의 팔 없는 할아버지 친구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 이야기하는 동안 ‘여행의 찌꺼기’는 흔들리고, 부풀어 오르고, 둥실둥실 떠오르고……. 우리는 그때 작은 여행지에 있는 것이다. 목적지도, 짐도, 여권도, 여행의 의미도, 그곳에서는 필요 없다.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가 이어지고 웃음이 퍼지고, 끝내는 멀어져 가겠지만, 서로의 마음속에 남은 여운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또 다른 기회에 누군가에 의해 이야기되고, 옮겨지고, 읽힘으로써, 그 작은 여행은 데굴데굴, 모습을 바꿔가며 어디까지나 굴러갈 테니까. 「여행의 찌꺼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