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이탈리아소설
· ISBN : 9788975276262
· 쪽수 : 248쪽
· 출판일 : 2012-12-17
책 소개
목차
아카바도라 / 7
옮긴이의 말_ 자비로움과 냉혹함 사이 극단의 삶을 사는 여인, 아카바도라 / 241
리뷰
책속에서
보나리아 부인이 아이에게 내준 방은 침대가 하나 있을 뿐, 온통 성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그곳에서 마리아는 천국
이란 결코 아이들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리아는 이틀 밤을 뜬눈으로 지내며 어둠 속에서 피눈물이 흐르지는 않는지, 빛이 번쩍이지 않는지 숨을 죽인 채 조용히 지켜보았다. 3일째 되는 날 밤, 손가락으로 성호를 그으
며 성심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려 하는데, 가슴 위로 힘차게 튀어 흩어지는 묵주 세 개의 무게가 위협적으로 느껴졌
다. 마리아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누군가 손으로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을 때 마리아는 잠들어 있지 않았다. 곧 어느 남자의 낮지만 격양된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너무 낮게 들려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마리아는 붉은 빛을 띠는 그림자들 아래 이불 밑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앞뜰로 난 문이 열리고 보나리아의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다. 바닥에는 찬 기운이 느껴졌지만, 아이는 침대에서 맨발로 내려와 문을 향해 어둠 속을 더듬거렸다. 발이 요강에 부딪혔다.
“아이가!” 입구의 그늘에 서 있던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나무라듯 말했다. 그는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낯익었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가 누군지 알아볼 겨를도 없었다. 보나리아가 방문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교회에서 지정한 축제일에나 입는 모직으로 된 긴 숄 안에 검은색의 단정한 옷차림을 했다. 비쩍 마른 몸으로 그 사내가 마치 귀중품상자라도 되는 것처럼 가리고 서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 왜 왔는지를 감추려고 했다.
“네 방으로 돌아가.”
“이 계집애를 낳지 말았어야 했어. 하늘도 무심하시지. 애가 셋이나 있는 걸 아시면서도 이 아이를 또 주시다니…….”
자신이 태어난 것이 실수였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마리아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마치 태어나지 않은 사람마냥, 대상이 자기가 아닌 것마냥 무표정했다. 아이가 입은 하얀 옷의 오른쪽 호주머니에서는 훔친 버찌가 번져 꽃처럼 피어나기 시작했다. 붉은색이 피어오르는 듯싶더니 넓게 번지며 몇몇 군데는 검게 물들었다. 오직 얼룩만이 아이의 몸에서 유일하게 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상점 주인은 그제야 도둑질당한 것을 깨달았다.
“바구니에서 버찌를 꺼냈니?”
안나 테레사 리스트루는 딸의 옷 위로 번져나간 얼룩을 보고 손바닥으로 아이를 한 대 때렸다. 아이는 맞는 순간 눈을 감았다가 곧바로 뜨더니 바깥으로 드러난 얼룩이 더욱 번져나가도록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거칠게 문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