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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외국 역사소설
· ISBN : 9788976042149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15-01-20
책 소개
목차
책속에서
조타로는 우뚝 발걸음을 멈춘 무사시에게 가르쳐 주듯 말했다.
“저 담 위에 불이 비치는 곳 있죠? 오츠 님이 자고 있는 방이 저 근처예요. 저 불은 오츠 님이 일어나서 기다리고 있는 불일지도 몰라요.”
“…….”
“스승님, 빨리 들어가요. 제가 문을 두드려 문지기를 깨울게요.”
조타로가 문을 향해 달려가려 하자 무사시는 조타로의 손목을 꼭 잡았다.
“아직 이르다.”
“왜 그래요?”
“나는 이 집에 들어가지 않을 거란다. 오츠 님에게는 네가 말을 잘 전해다오.”
“예? 뭐라고요? 그럼, 스승님은 왜 여기까지 왔어요?”
“너를 데려다 주려고 온 게다.”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며 내심 두려워하던 현실이, 그 예감이 불현듯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순간, 조타로는 절규하듯 소리를 질렀다.
“안 돼요, 안 돼! 스승님, 꼭 가야만 해요!”
조타로는 온 힘을 다해 무사시의 팔을 잡아당겼다. 바로 문 안쪽에 있는 오츠의 머리맡까지 어떻게 해서든 데리고 가려고 했다.
“조용히 하거라.”
무사시는 어둠 속에 깊이 잠겨 있는 가라스마루의 저택을 쳐다보며 속삭였다.
“조타로,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싫어요, 듣지 않을래요. 스승님은 아까 나와 같이 가겠다고 말했잖아요.”
“그래서 여기까지 너와 함께 온 게 아니냐?”
“문 앞까지라고 하지 않았잖아요. 나는 오츠 님과 만나는 걸 말한 거라고요. 스승이 제자에게 거짓말을 하는 게 어디 있어요.”
“조타로, 그렇게 소리치지 말고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거라. 나는 가까운 시일 안에 또 생사의 갈림길에 서야 한다.”
“무사는 아침에 태어나 저녁에 죽을 각오로 수련하고 있다고 스승님이 입버릇처럼 말했잖아요. 그러니 그런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잖아요.”
“맞다. 내가 항상 하던 말을 이렇게 너에게 들으니 도리어 내가 배우는 기분이 드는구나. 하지만 이번만은 나도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구나. 그러니 더욱 오츠 님을 만나지 않는 편이 좋단다.”
“왜요? 왜요?”
“그건 네게 말해 줘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너도 크면 알 수 있을 게야.”
웃음을 지어 보이는 무사시의 얼굴에 달빛에 비친 하얀 이가 보였다. 농담이라고는 할 줄 모를 것 같았던 무사시가 싱긋 웃으며 우스갯소리를 하자 고지로는 다소 당황한 듯 정색을 하고 말했다.
“무사시 님, 지금 농담을 할 때가 아닙니다.”
“저도 농담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림자하고 둘이서 왔다고 하면서 사람을 놀리고 있지 않소이까?”
“그렇다면…….”
무사시는 고지로보다 더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신란親鸞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염불행자는 항상 두 사람이 붙어 다니니, 아미타이다’라고 하셨는데 그 말도 농담이란 말입니까?”
“…….”
“고지로 님은 그저 겉으로 보기에 요시오카 사람들은 분명 많아 보이고 이 무사시는 보시다시피 혼자여서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고 여기고 저를 걱정하고 계시는 듯한데,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무사시의 말은 신념에 차 있었고 정확히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상대가 열 명을 세운다 해서 이쪽도 열 명으로 맞선다면, 상대는 다시 스무 명으로 맞설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다시 서른 명, 마흔 명이 모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을 소란스럽게 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다치게 되어 질서도 문란해질 터인데 그것이 검의 도道에 합치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백해무익할 뿐입니다.”
“맞는 말씀이오. 그러나 질 것을 뻔히 알면서 싸움에 임하는 것은 병법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없소이다! 그건 병법이 아니라 무법無法이자 터무니없는 짓이오.”
“그러면 병법에는 없지만 제 경우에만 있는 것으로 하지요.”
“말도 안 되는 소리요.”
“하하하하.”
무사시는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지로는 멈추지 않았다.
“병법에도 어긋난 그런 싸움을 왜 하려는 게요? 왜 활로活路를 찾지 않는 게요?”
“지금 활로를 걷고 있소. 이 길이야말로 저에게 있어 활로입니다.”
“저승길이 아니길 바라겠소만.”
“어쩜 지금 건너온 것이 삼악도三惡道의 천川이고, 지금 걷고 있는 길이 무덤이며 앞에 있는 언덕이 바늘 산일지도 모르지요. 설령 그렇다손 치더라도 자신을 살리는 활로는 이 외길 외에는 없는 듯합니다.”
“꼭 저승사자에 홀린 것처럼 말씀하시오.”
“아무래도 좋습니다. 살아서 죽는 자도 있고 죽어서 사는 자도 있으니.”
흡사 야차와 같은 짓이었다. 그것이 가장 중대한 목적이었던 듯 무사시는 다른 이들을 제쳐 두고 제일 먼저 겐지로를 베어 버렸다. 무참하고 잔인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비록 적이지만 어린 소년에 불과했다. 그런 소년을 벤다고 해서 눈앞에 있는 적의 수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요시오카 일문의 분노만 사서 그들의 전의만 격앙시킬 뿐이었다. 특히 겐자에몬은 당장이라도 통곡을 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네 이놈, 어찌 그런 짓을!”
그는 고함을 치며 늙은이의 팔에는 다소 무거워 보이는 큰 칼을 머리 위로 높이 쳐들고 무사시를 내리칠 기세로 달려왔다. 무사시는 오른쪽 발을 한 자 정도 뒤로 빼고는 몸과 양손을 오른편으로 기울이더니 겐지로의 목을 벤 칼로 자신을 향해 내려치는 겐자에몬의 팔꿈치와 얼굴을 올려쳤다.
“으윽!”
누구의 비명인지 분명치 않았다. 무사시의 뒤에서 창을 찔러 왔던 자가 앞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가더니 겐자에몬과 뒤엉켜 피투성이가 된 채 나뒹굴었다. 곧바로 네 번째 적이 정면에서 달려들었지만 무사시의 칼에 늑골까지 베여 머리와 손을 축 늘어트린 채 이미 생명이 빠져나간 몸으로 두세 걸음을 옮기더니 고꾸라졌다.
“이쪽이다!”
“다들 어디 있느냐!”
남겨진 예닐곱 명이 절규하며 사람들을 불렀다. 그러나 세 방면으로 흩어져 있는 같은 편 무사들이 모두 본진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매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극히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이곳의 일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또 그들이 필사적으로 외치는 소리는 솔바람과 넓은 대나무 숲이 우는 소리에 파묻혀 허공에서 가뭇없이 사라져 버렸다.
몇 백 년에 걸쳐 이곳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는 오늘, 뜻하지 않게 땅속으로 스며든 인간의 피를 빨아들이고는 안개바람이 불 때마다 그 거대한 몸과 나뭇가지를 부르르 떨었다. 사방으로 뻗어 나간 소나무 가지 아래에 있는 사람들과 칼 위로 차가운 이슬방울이 흩날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