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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책읽기/글쓰기 > 책읽기
· ISBN : 9788976822376
· 쪽수 : 168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 | 엉거주춤한 문학의 표정
제1부 악마와의 결탁 없이도 창작이 가능할까
LST 체험과 분단문학
도스토옙스키와 하루키: 빨간 거미와 검은 거미
보편어를 꿈꾸는 걸음걸이
소설 주인공에 대한 소설 쓰기: 독고준의 투신자살에 부쳐
해당화를 위하여: 박경리와 최인훈
두 종류의 애완동물, 두 종류의 곤충: 신춘문예 소설의 풍경
선우휘의 「외면」과 이병주의 「변명」: 세대 감각으로서의 문학의 절대성
악마와의 결탁 없이도 창작이 가능할까: 토마스 만과 공지영
금관문화훈장에 대한 문학사의 몫: 『토지』, 『미망』, 『서편제』
금년을 빛낸 소설들
언어의 꿈, 소설의 꿈: 백수린의 경우
세헤라자데에 바치고 싶은 작품: 이승우의 근작에 부쳐
대하소설 세 편 읽기: 『남과 북』, 『지리산』, 『태백산맥』
오디세우스의 후예들
입양 고아에 대한 문학적 성과: 김연수의 ‘심연’, 최윤의 ‘오릭맨스티’에 부쳐
내 관심이 놓였던 곳: 2012년을 보내며
『수경주』와 『역사』 속 작가의 상상력
우리 문학이 갖고 있는 네 가지 거울: 이상에서 이인성까지
제2부 세계를 업고 다니는 대리운전사
제국의 수도에서 죽은 사내: 이상 탄생 백 주년이 특별한 이유
4.19와 말라르메: 김현 죽음 20주기에 부쳐
이상의 날개, 도쿄에서 다시 한 번 날다
집중성, 지속성의 삼인행: 이호철, 이승우, 박민규
일관된 지속적 미의식: 사르트르, 마루야마 마사오, 박경리
두 개의 제단을 밝힌 다섯 개의 등불: 의형제 장준하와 김준엽
후기의 스타일: 최인훈의 「바다의 편지」에 부쳐
엉겅퀴꽃에 얻어맞은 곡절: 윤후명의 제1회 전시회에 부쳐
단편으로 일관했던 레이먼드 카버: 『레이먼드 카버-어느 작가의 생』에 부쳐
‘나의 청춘은 나의 조국’론 재음미: 정지용의 경우
박완서의 후기 스타일: 『그 남자네 집』에 부쳐
저우쭤런과 백철: 문학인의 대화
어째서 신진 작가에겐 아비가 없는가: 세 신진 작가에 부쳐
문우회 회원 백상용에 관하여
세계를 업고 다니는 대리운전사
작품과 작가의 생활: 「고린도후서」 5장과 관련하여
제3부 아직도 월평을 쓰고 있는가
3.15를 아시는가: 4.19의 모체론
놀면서 배우는 곳, 수유너머에 가다
인문학의 깊이: 나카노 시게하루와 김두용
어떤 지한파 서생의 죽음: 다나카 아키라와 천관우
서당개 삼 년의 변: ‘수월관음’을 향해 짖다
다마레엔의 무궁화: 사토 기요시 교수의 무덤을 찾아서
서울에 온 세잔이 만나고 싶은 사람들: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이 종교화인 곡절
국보 제100호는 어떻게 있어야 하는가
역사 감각의 단절성과 문학 교육의 연속성: 간접화로서의 상상력
번역 제일과 비평 제일: 찬(讚), 말라르메의 제자 황현산
문학관은 어떻게 있어야 하는가: 고바야시 다키지와 윤동주
아직도 월평을 쓰고 있는가: 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
문학사와 세대 감각: 학병세대, 전중세대, 4・19세대, 386세대
최하층 조선인 종군위안부: 리코란과 하루미
한국 근대시 일역의 두 가지 현상: 김소운과 김시종의 경우
『미의 법문』과 인간다움
작품 개작에 대한 보르헤스의 우정 어린 충고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남의 나라를 여행할 때 누구나 겪는 일. 낯선 언어의 광범한 소음이 그것. 그 나라에 적의를 품지 않는 한 그것이 감미롭게 나그네를 보호하지 않았던가. 어째서 그러할까. 이 물음에 고명한 구조주의자 롤랑 바르트가 일본 기행 『기호의 제국』(1970)에서 대충 아래와 같은 해답을 제시했소.
자기가 알지 못하는 외국어, 그러니까 기이한 국어에 통효하면서도 그것을 이해하지 않고 있다는 것. 곧 각 국어는 그 자체가 갖추고 있는 구조가 있음을 훤히 알면서도 그것을 이해하지 않고 있다는 것. 각 국어가 갖고 있는 차이를 감지하면서도 그 차이가 전달이나 통속적 이해라는 언어의 표층적 사회 조직에 의해 조금도 결정되어서는 안 되는 것. 한마디로 번역 불가능인 것 속에로 하강하여 우리의 내부에서 국어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것. 요컨대 번역 불가능한 것의 진동을 감지하여 그것을 결코 감소 또는 쇠약지 않고자 하는 꿈. 그러니까 바르트는 ‘꿈’을 말하고 있었던 것.
. ― 「언어의 꿈, 소설의 꿈」
작가는 뭐라 말하고 싶었으나 잘 되지 않았다 하오. 조용식이 잠들어 버렸으니까. 깨어 있는 것은 작가와 조애라. 단둘이서 시방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오.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아느냐. 모른다고 하자 그 내용을 들려주며 파주로 가고 있습니다. 조용식의 직업은 대리운전이었소. 취객을 실어 나르는 직업. 그는 매일 취객을 실어 강을 건너고 있었소. 그 취객들이 모두 세계 자체가 아니었던가. 그는 세계를 업고 강을 건너고 있었던 것.
그렇다면 시방 파주로 차를 몰고 가고 있는 작가인 ‘나’는 무엇일까. 두 개의 세계를 등에 업고 강 건너는 거인 크리스토포루스가 아니고 새삼 무엇일까. 작가란 거창하게 말해 세계를 어깨에 태워 옮겨 주는 그런 존재가 아니고 무엇일까. 크리스토포루스의 전설은 원칙적으로 가톨릭의 것. 그것은 종교인 것. 그렇다면 「파주로」는 무엇인가. 종교도 그 무엇도 아닌 것. 소설 쓰기인 것. 바로 이것만이 작가 김연수의 것이 아니겠는가.
― 「세계를 업고 다니는 대리운전사」
아직도 월평을 쓰고 있는가. 딱하고도 민망하기 짝이 없음을, 딱하고도 민망하게 살펴보았소. 이쯤 되면 나만의 방도도 실토하지 않을 수 없소. 작품과 작가의 구별 원칙이 그것이오. 작가는 누구의 자식이며 어디서 낳고 어느 골짜기의 물을 마셨는가를 문제 삼지 않기. 있는 것은 오직 작품뿐. 이 속에서 나는 시대의 감수성을 얻고자 했소. 내 자기의식의 싹이 배양되는 곳.
어째서 그대는 세상 속으로 나와, 작가・현실・역사와 대면하지 않는가. 그럴 시간이 없었다고 하면 어떨까. 그러나 작품 속에서 만나는 세계가 현실의 그것보다 한층 순수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소. 카프카의 표현을 빌리면, 그 순수성이란 이런 것이오. 밤이면 모두 푹신푹신한 침대에서 담요에 싸여 잠들지만 따지고 보면 원시시대의 인간들이 그러했듯 들판에서 땅에 머리를 처박고 언제 적이 쳐들어올지 몰라 가까스로 잠이 든 형국이라고.
― 「아직도 월평을 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