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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류학/고고학 > 인류학
· ISBN : 9788976826534
· 쪽수 : 544쪽
책 소개
목차
제3판을 위한 일러두기 9
2판에 부치는 서문 (1997년) 11
서론 불구성의 전경 -들러리 존재 17
방법론적 매개 42
1장 성서와 불구성 -신에 대한 숭배 61
금기 62 | 시스템 75 | 금기의 단절? 81
2장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신들의 공포 89
실제들 : 격리된 기형, 보살펴진 허약함 89 | 신화들 107
테이레시아스의 주변, 실명의 사례 140
3장 중세의 자선 시스템(들) 149
조티코스에서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까지 : 구빈원의 자선과 적선의 윤리학 165
신비주의적 윤리학 : 불구자가 예수 그리스도가 될 때 179
‘사회적’ 윤리 : 모든 가난한 자들이 위험한 자들이 될 때 188
4장 전형화의 세기들 -오싹한 한기 201
의학과 철학 201 | 자선과 수용 225 | 생물학과 인간중심주의 236
구호와 재기 243 | 19세기를 따라가며 269
5장 재적응의 탄생 287
삭제 287 | 계기와 그 조건들 290 | 일련의 시련들, ‘모순점들’ 342
뒤얽힌 도식들 그리고 분할 원칙들 379 | 예고장으로서의 결론 400
6장 장애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위하여 413
이론의 개념 파악하기 413 | 모델 개념 파악하기 422
장애에 관한 위대한 이론들 428 | 또 다른 전망을 향하여 454
에필로그 487
부록: 입법화의 단계들 513
참고문헌 523
책속에서
어째서 우리는 다르게 태어나거나 혹은 그렇게 된 존재들에 온갖 이름을 붙여 가며 지칭하는 것일까? 어째서 그토록 많은 범주가 필요하게 된 것일까? 누구에게나 흔히 일어나고 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두고 어째서 그토록 극적인 과장을 하는 것일까? 분명한 건 우리의 삶이 ‘그 일cela’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회 역시도 ‘그 일을 위해pour ca’ 조직되지 않기 때문에, 또 이런 일에는 항상 예외적인 조치와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결국 그런 일은 ‘전문화된’ 이들과 시설들에 일임해야 하기(때로는 어떻게 하면 다르게 처치할지 궁리해 가며) 때문이리라.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지점으로 되돌아가 모종의 현실(오늘날의 용어로는 ‘장애’)에 경계를 그음으로써 그만큼 우리로 하여금 현실을 더 느끼게 하고 꼭 그만큼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이 엄청난 ‘명명’의 과정이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되물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의사가, 친구가, 사회복지요원이 “그게 말입니다…” 하고 입을 떼는 순간, 불행의 실체는 분명히 통보되고 많은 경우에는 확증되어 언제나 황망해지지 않던가. ‘자폐증’입니다, ‘하지마비’입니다, ‘중증 정신박약’입니다, 하면서 말이다. 요컨대 이는 저 옛날 페스트나 폐결핵, 오늘날의 암과도 어느 정도 닮았다. 어쨌든 ‘그 일’이 일어나면, 유죄판결이 내려진 셈이다.
특히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라는 구호에 편중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하겠다. 결함 있는 존재가 평범한 존재를 자신의 본보기로 삼고, 그 성공 여부를 자가용 운전이 가능한지, 대규모 집단주거단지에 거주할 수 있는지, 하루에 8시간 일할 수 있는지, 여름에 ‘스페인 관광’을 할 수 있는지 등으로 가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립을 실현하려는 욕망을 조롱하는 일이란 생각할 수조차 없다. 그것이 일상 활동이나 직장 내에서의 자립이건 경제적인 자립이건 간에 말이다. 하지만 일상 관계의 회복이랄지, 기본 활동의 습득 사례랄지, 엄청나게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어낸 성취를 말하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쉽게 공감할 수 있고 또 감동으로 가득한-은 모든 비판을 일거에 중단시키고 만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중세 시대의 신체불구자는 가난한 자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차원 그리고 거의 존재론적 차원에서도 상이한 위상에 놓일 만큼 너무나도 ‘다른’ 존재였다.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그리고 건강한 자와 허약한 자는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이고, 지금도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그 순서가 약간 전도되었다. 장애인을 그 불행한 운명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미명하에 그들을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가능성을 지닌 주체로 간주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더 이상 ‘비-정상적’ 상황들이란 있어서는 안 되며, 심리적·정신적 혹은 육체적 차이도 예전과 같은 어떤 틈으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고로 이 빈공간은 채워져야만 한다. 그러니 낯섦의 공포를 회피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규범 내부에서 해체시켜 일탈을 잊고 사는 일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으리라. 이제 모든 것은 이러한 시도가 진정 가능한 일인지 알아보는 데 달렸다. 푸코가 묘사했던 고전주의 시대와 관련한 위대한 새로움도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