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사 일반
· ISBN : 9788976961457
· 쪽수 : 460쪽
· 출판일 : 2026-02-06
책 소개
-1967년 직업훈련법 제정에 이르기까지
한국전쟁 종전 후 원조 당국은 산업에 맞게 직업교육·훈련을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기존에 설립된 학교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중등교육의 목표가 진학이었다는 점과 노동시장에서 기술훈련과 기술검정자격증이 고용과 숙련, 나아가 계층상승 효과를 내기 어려웠던 산업 구조적 조건이 맞물리면서, 기술훈련이 직업교육을 주도하고 기술력이 졸업장보다 높은 가치를 인정받도록 만들자는 목표는 실현되지 못했다. 이 같은 학교 중심의 기술인력 양성책의 실패로 1960년대에는 문교부가 아니라 노동청이 직업훈련사업을 전담하는 부처로 선정되었고, 그 과정에서 기술인력 양성책은 노동정책으로 자리 잡아갔다.
노동청은 인력관리를 담당하는 행정부처로서 ‘인력개발’ 노동행정을 표방했지만, 자신들이 추진할 노동행정을 “경제시책의 일환”으로 규정하였기 때문에 노동정책이 갖는 독자성을 강하게 요구하지 못했다. 부처 간 협의를 거쳐 마련된 직업훈련법(안)은 노동청이 애초 구상했던 안으로부터 훨씬 후퇴한 형태였다. 사업 내 직업훈련을 확산시킨다는 명분과 학력중심사회가 아닌 능력중심사회의 조성, 나아가 노동자 지위 향상을 위한 직업훈련법의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삭제된 채 “뼉다구 없는 법”에 불과하다는 악평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1970-80년대 직업훈련사업과 기능경기대회, 기능올림픽
-학력이 아닌 기술에 대한 사회적 인정의 추구 및 좌절
기술인력 양성의 궁극적 목적은 하위직 기술인력인 기능직들이 우대받는 기능우대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정책 입안자들은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한 후 높은 기술을 갖춘 자들이 졸업장 없이도 사회적 인정을 받게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이에 대한 청소년 기술인력의 호응은 컸고, 비교적 단기간에 기능경기대회가 정착할 수 있었다. 동시에 박정희 정부는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과 연동시켜 미래의 노동인력인 청소년들에게 기능자격 수검을 통해 기능사 자격증 취득이라는 성취를 경험시키려 했다.
그러나 기능우대사회를 형성하기 위해 도입된 기능경기대회는 기능공들 내부의 치열한 경쟁의 장이었다. 이 시기 정부가 구상한 기능우대사회는 기능을 가진 모든 기능직들이 자신의 기술력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아니라, 경쟁에서 승리한 기능직들이 선별적으로 혜택을 부여받는 사회였다. 수상한 기능직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혜택은 대학 진학의 기회였다. 이 과정에서 최고의 기능을 가진 일부 ‘엘리트’ 기능공들마저 진학을 통해 학력을 높이지 않으면 학력과 학벌 중심의 사회로부터 소외를 느꼈다. 그 결과 역설적으로 가장 우수한 기능직들부터 탈기능직을 시도했다. 국가기술자격 제도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병역특례와 진학 우대정책, 정부 투자기관 및 정부 산하 기업체에 기술자격증 취득자 우선채용 및 우대정책을 도입했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정책은 단기에 효과를 낼 수는 있어도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문화가 정부의 의도대로 쉽게 바뀌긴 어려웠다.
허용된 향상, 부서진 기대
-남성 기술직들의 직업훈련과 기능경기대회 경험과 인식
기능우대사회를 만들어갈 새로운 주체인 직업훈련소 출신, 공고 출신 청소년 기능직들은 급증한 직업훈련소, 공고, 사내직업훈련소를 거치며 기술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들 중 엘리트 기능공들은 전국기능경기대회와 기능올림픽에 출전해 입상하며 사회의 인정과 계층성장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 막 퇴직을 앞둔 이들은 10대에 자신들이 정부로부터 수혜를 받은 점은 인정했으나 한국 사회가 기능우대사회가 되었는가라는 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실제 자신의 생애를 통해서도 기능직으로서 성장과 성취를 추구해갔다기보다는 노동시장과 한국 사회가 바란 학력 성취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었음을 드러냈다. 기능우대사회의 핵심 세력인 기능직 노동자, 즉 사무직과 관리직을 제외한 생산직 노동자들은 정부의 선별적 혜택 제공에 근거한 기능우대사회 실현이 불가능한 목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1950-80년대 내내 정부와 기업은 노동조합 결성을 비롯한 노동권 보장을 가로막았다.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기능이 우대받고 기술인력의 다수를 차지하는 기능직 노동자들이 사회의 인정을 받을 리 만무했다. 기능에 대한 인정은 기능우대 정책과 노동권 보장이 함께 가야 가능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기능직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외친 저항의 목소리가 바로 사무관리직과 기능직의 차별 철폐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금지된 성취, 전복된 질서
-기술인력 양성정책의 남성중심성과 여성노동자의 저항
1960년대 이후 기술인력 양성정책에 예산과 자원을 투입한 정부는 여성을 기술인력 양성정책 대상에서 배제했다. 정부와 기업에게 기술인력은 곧 남성노동자였기 때문에, 여성은 직업훈련과 기능경기대회 종목, 기술자격 제도의 모든 영역에 참여하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그로 인해 여성노동자는 교육과 훈련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고,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한 채 취직했기 때문에 열악한 근무조건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교육과 훈련에서의 배제, 한국 사회의 강한 성별분업 구조, 양육과 가사부담이라는 다중부담 속에서도 YWCA 같은 여성단체들의 노력과 여성들의 참여의지로 인해 ‘남성’의 일은 점차 ‘남녀’의 일로 확산될 수 있었다.
같은 대우를 받고자 하는 인정욕구는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향상시키고 저항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만든다. 1970년대 노동조합 결성과 노동운동이 여성노동자들로부터 먼저 시작된 것은, 같은 시기 한국 사회가 여성노동자들이 가진 기술을 인정하지 않았고, 개인적 성장을 추구할 여지가 그나마 있었던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에게는 그런 여지가 전혀 없었다는 점에 기인했다. 개인적 상승의 여지가 거의 없었던 여성 기능직들은 사회적 상승을 위해 노동조합이라는 조직과 여성들의 연대라는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980년대 여성들은 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성별에 의한 차별 문제로 확장시켜 연대를 실천해 나갔다.
목차
서론
1부 기술인력 양성 구상과 정책 수립
1장 1950년대 복구와 재건을 위한 기술인력 양성
1. 한국전쟁 이전 정부와 산업현장의 기술인력 양성
2. 원조기구의 직업교육·훈련 구상과 추진
2장 1960년대 인력개발 노동정책의 수립과 노동청 신설
1. 인적자원 관리의 필요성 대두와 노동청 설립
2. 인력개발 이론의 유입과 인력개발 노동정책 구상
3장 노동청의 직업훈련사업 전담과 기능직 양성
1. 경제기획원의 기술훈련소 설치 구상
2. 정부 내 조정 과정(1964~1965)
3. 1967년 직업훈련법 제정
2부 기술인력 양성사업의 추진과 전개
1장 기업 주도 직업훈련의 강조
1. 노동청의 초기 직업훈련사업과 사내훈련의 부진
2. 사내훈련 의무화와 대기업의 우수 기능직 양성
3. 사내훈련의 일시적 확대와 공고 위주 재편
2장 경쟁을 통한 확산, 기능경기대회의 임계
1. 국제기능올림픽 참가 결정과 기능경기대회 도입
2. 남성 기능직들의 경쟁 심화와 우수 공고·대기업의 지원
3. 메달리스트라는 환상과 고졸 기능직의 한계
3장 국가기술자격 제도 통합과 역설
1. 기능검정 제도 실시와 도입 의도
2. 국가기술자격 제도 일원화와 공인 기능장 제도의 도입
3. 국가기술자격 제도가 만들어낸 역설
4장 1980년대 축소된 정책들
1. 직업훈련의 성격 변화와 중등교육의 일반교육 중시
2. 축소된 기능 우대정책
3부 허용된 향상, 부서진 기대
1장 기술 향상의 경험들―기능대회 참가자들
1. 기능경기대회 참가자들의 훈련과 수혜자 의식
2. 입상자들의 기대와 기술보국 의식
3. 기술보국 인식의 균열
2장 금성통신 GTS맨들의 경험
1. 금성통신 GTS맨들의 훈련 경험
2. 금성통신 GTS맨들의 기대와 어긋남
3. 사내훈련소 출신, GTS맨들의 역동적 대응
4. 1980년대 GTS맨들의 노조 인식
4부 금지된 성취, 전복된 질서
1장 배제와 성취―여성이 성취한 기술
1. 직업훈련 정책의 여성 배제와 훈련 실태
2. 여성노동자들의 자발적 기술 성취
3. 기능경기대회 속 여성들
2장 변화와 전복적 실천들
1. 여성단체의 여성 직업훈련: YWCA의 새로운 여성 직업개발사업
2. 기술성취와 부정의한 분배: 여성 노동운동의 동기
3. 고용차별 폐지를 주장한 여성들
결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