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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여행 > 국내 여행에세이
· ISBN : 9788978789011
· 쪽수 : 239쪽
· 출판일 : 2006-12-26
책 소개
목차
여는 글 - 양병호
핏빛 선연한 황톳길 : 전라도
이병기 l 그리움으로 피어나는 난초와 청매 - 시민정
김영랑 l 찬란한 슬픔이 스며들다 - 박지학
신석정 l 그대! 그 먼나라를 알으십니까? - 김아리사
서정주 l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 신혜원
조태일 l 바람의 속도로 길을 걷다 - 이강하
사랑의 은근한 중독과 아픔 : 충청도
한용운 l 사랑, 참말로 알 수 없어요 - 양병호
정지용 l 꿈꾸는 소년의 항해 일지 - 이승철
오장환 l 한나절 나는 향수에 부다끼었다 - 송지선
박용래 l 노을 지는 나루터에 눈물의 시인 살더라 - 정유미
신동엽 l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노용무
저자소개
책속에서
내 성은 오씨. 어째서 오가인지 나는 모른다. 가급적으로 알리워주는 것은 해주로 이사온 일청인이 조상이라는 가계보의 검은 먹글씨. 옛날은 대국숭배를 유ㅡ 심히는 하고 싶어서, 우리 할아버니는 진실 이가였는지 상놈이었는지 알 수도 없다. 똑똑한 사람들은 항상 가계보를 창작하였고 매매하였다. 나는 역사를, 내 성을 믿지않어도 좋다. 해변가로 밀려온 소라 속처럼 나도 껍데기가 무척은 무거웁고나, 수퉁하고나, 이기적인, 너무나 이기적인 애욕을 잊을랴면은 나는 성씨보가 필요치 않다. 성씨보와 같은 습관이 필요치 않다. - '성씨보'
오장환의 슬픔은 그가 서출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이 태생적 슬픔이 그의 인생 행로를 결정지었을 뿐 아니라 시의 경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신분 때문에 겪었던 서러움은 '성씨보와 같은 습관', 낡은 전통을 파기하고 싶었다. 그런 제도로 인간의 신분이 구분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이 일었고, 평등 사회를 지향하는 진보사상에 관심이 기울었을 것이다. '가계보의 검은 먹글씨' 때문에 음지에 앉아 있는 소년 오장환의 모습이 보인다. 억압할수록 주눅 들지 않고 질풍처럼 일어설 때를 기다리는 게 시인이다. 그는 '나는 내 역사를, 내 성을 믿지 않아도 좋다.'는 선언으로 전통을 거부해 버린다.
... 늙으신 어머니가 홀로 계시지만 성씨보가 족쇄가 되는 고향을 떠난다. 소년 오장환은 내가 차를 타고 헐떡거리며 올라온 멀고 먼 산길을 고개를 숙인 채 터벅터벅 내려갔을 것이다. 슬픔에 찌든 어머님의 얼굴에 주저앉게 될까봐 두려워서 뒤도 보지 못하고, 때론 그 사람의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그의 실체와 진실에 더 가까울 때가 있다. 단 한 번 돌아보지 못하는 자식의 등이 한스러워 어머니는 온몸으로 펑펑 울었을 것이다. 그날, 고향을 등지고 내려간 굽이굽이 산길은 굴곡 많은 그의 인생길을 예시했다.
- 본문 186~187쪽, '오장환 : 한나절 나는 향수에 부다끼었다 / 송지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