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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88979212228
· 쪽수 : 400쪽
· 출판일 : 2016-12-30
책 소개
목차
검은 땅에 빛나는 9
제1부 스웨덴의 조선 여인 33
제2부 운명의 저울 253
저자소개
책속에서
-스톡홀름의 거리 풍경도, 인심도 어릴 적 지리시간에 배우며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그런 곳만은 아니었다. 좁은 뒷골목을 양편으로 메운 단조로운 회색빛 건물들을 가진 이 도시는 외국인의 틈입을 거부하는 듯 차가워 보였다. 그 건물들에 박힌 유리창들은 온기 없는 북구의 태양빛을 흐릿하게 반사하고 있었고……. 금발 머리에 콧대가 우뚝하고 키가 크며 억센 뼈대를 가진 게르만 민족의 혈통대로 그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남들에게 무관심하고 냉담해 보였다. 거리를 걷는 행인들의 얼굴에 박힌 청색과 녹색, 회색 눈동자가 유리구슬처럼 무채색으로 번쩍이며 내 시선과 부닥칠 때 그들 눈에 어린 알 수 없는 경계심을 느낄 때마다 내가 만리타향에 돌멩이처럼 혼자 몸으로 굴러온 뜨내기라는 사실을 진저리치듯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문득 그녀(나혜석)의 앞길이 비극으로 끝날 것 같은 불안감이 드는 것이었다. 완강한 유교적 구습과 봉건적 분위기로 가득 찬 조선사회에서 그녀의 불꽃같은, 하지만 무모한 도전은 끝내 싹이 잘려 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느낌이었다는 거다. (…)신여성을 자처하는 우리들이라면 일반 여성들과 반걸음 앞에서, 때로는 보조를 맞춰가며 손을 잡고 걸어가며 수많은 조선의 가부장들이 쳐놓은 덫을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음악이 끝났다. 황태자는 내 손을 풀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가만히 껴안았다. 이윽고 그의 입술이 내 이마에 와 닿았다. 꺼칠하고 마른 입술이었다. 나는 훅 하고 호흡을 멈췄다. 가슴이 쿵하고 거세게 뛰면서 술에 취한 듯 눈앞이 어찔해졌다. 그의 입술이 머뭇머뭇 미간 아래로 스쳐 내려오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 멈추었다. 이게 그가 내게 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선물이었으리라.
“영숙, 잘 가오. 신의 가호가 그대에게 영원히 머물기를……”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나는 서전에서의 내 시간이 드디어 끝났음을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