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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가톨릭 > 가톨릭 인물
· ISBN : 9788981330132
· 쪽수 : 232쪽
· 출판일 : 2014-07-14
책 소개
목차
목차가 없는 도서입니다
책속에서
준비된 질문이 있었지만 나는 나에게 미리 주어진 도식을 따르지 않기로 마음먹고 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는 누굽니까?”
교황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것이 그에게 해도 되는 질문인지 물었다. 그는 질문을 받아들인다는 표시를 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무엇이 가장 올바른 정의定義가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군요... 저는 죄인입니다. 이것이 가장 올바른 정의이지요. 그냥 흔히 하는 말, 곧 하나의 문학유형이 아닙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교황은 그 질문을 기대하지 않았던 듯, 그 이상의 숙고를 하지 않으면 안 되기라도 하듯 깊은 생각에 잠긴 채 계속해서 깊이 숙고하며 말했다.
“그래요. 어쩌면 저는 좀 약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일을 처리하는 법을 알아요. 하지만 또 좀 순진한 것도 사실이지요. 그래요. 하지만 최선의 종합적 결론은, 곧 저의 내면에서 나오는, 가장 진실하다고 여겨지는 종합적 결론은 이것이지요. ‘저는 주님께서 바라보아주신 죄인입니다.’”
그리고 반복해서 말했다.
“저는 주님께서 바라보시는 사람입니다. 저의 좌우명座右銘인 ‘미제란도 앗꿰 엘리젠도’Miserando atque eligendo 역주. 교황 본인이 아래서 말하듯 이태리어 문장으로 옮길 수 없는 표현인데 내용을 의역하자면 ‘자비롭게 바라보면서 동시에 선택하다’라는 의미이다.
를 저는 언제나 저에게 대단히 적절한 것으로 느껴왔습니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모토는 존자尊者 성 베다 역주. 존자 베다Beda(673-735)는 영국 노덤브리아 왕국에서 태어나 성 바오로 수도원의 수도자로 일생을 보내며 영문학사와 성경주해를 비롯한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당대의 가장 박학한 사람으로 인정받아 그 탁월한 지혜와 성덕으로 인해 853년 아헨 교회회의에서 ‘존자尊者’라는 별칭을 얻었다.
의 『강론집』에서 따온 것으로, 그는 성 마태오의 부르심에 대한 복음서의 이야기를 해설하면서 이렇게 쓰고 있다. “예수께서는 세리 하나를 보셨습니다. 그를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시고 그를 선택하셨기에, 그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황은 덧붙였다. “라틴어 분사 ‘미제란도’miserando는 이탈리아어로도 스페인어로도 번역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단어를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다른 분사 misericordiando 역주. 교황은 자신이 만들어낸 이 라틴어 단어로 '자비를 보이면서'를 의미하고자 한다.
로 옮기기를 좋아하지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계속 숙고하면서 말했는데 이야기의 흐름을 건너뛰면서 말했기에 그 순간에는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저는 로마를 모릅니다. 아는 게 조금밖에 안 되지요. 그 중에 하나가 싼타 마리아 마죠레Santa Maria Maggiore 역주. 로마의 일곱 언덕 중 하나인 에스퀼리노 언덕에 세워진 성모 대성당으로 서방에서 제일 먼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성당이며, 로마의 4대 성당 가운데 하나이다. 성모 마리아의 지시에 따라 로마의 한여름인 8월 5일 눈이 내렸던 자리에 세워졌다고 해서 성모 설지전聖母雪地殿이라고도 부른다. 예수회를 설립한 성 이냐시오가 사제품을 받고 18개월이 지난 후에야 첫 미사를 봉헌한 성당이기도 하다.
인데 늘 거기에 가곤 했어요.”
나는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저희 모두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지요, 교황님!”
“그렇군요.” 교황은 계속 말했다. “저는 싼타 마리아 마죠레, 성 베드로 성당 … 등을 알지요. 그런데 로마에 오면 항상 스크로파 길의 숙소에 머물렀어요. 그곳에서 출발하여 싼 루이지 데이 프란체지San Luigi dei Francesi 역주. ‘프랑스인들의 성 루이’라는 의미를 가진 성당 이름. 1518년에서 1589년에 걸쳐 세워진 이 성당은 성 루이 9세 왕에게 봉헌되었고, 로마 나보나 광장 근처에 위치하고 있으며, 프랑스어로 미사가 거행된다. 이 성당은 화가 카라바죠의 세 작품으로도 유명한데, 왼쪽 경당 벽에 걸린 성 「성 마태오의 부르심」, 「성 마태오와 천사」, 「성 마태오의 순교」가 그것이다.
를 자주 방문했고 그곳에 있는 카라바죠Caravaggio 역주.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의 화가(1571? 1610)로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이며 위험했던 삶 안에서 극적인 명암법과 사실적인 묘사로 바로크 양식의 탄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로마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미술의 흐름을 급격히 변화시켰다. 사망 후 오랫동안 잊혔다가 20세기에 들어서 재발견되어 거장으로 재평가되었다.
의 그림 「성 마태오의 부르심」을 감상하러 가곤 했습니다.”
나는 교황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 마태오를 향한 예수님의 그 손가락이죠. 저도 그렇습니다. 저는 그렇게 느꼈어요. 마태오처럼.”
그때까지 탐색해오던 자신의 이미지를 포착하기라도 한 듯 여기서 교황은 단호해진다.
“마태오의 동작이 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지요. 마치 이렇게 말하듯이 돈을 움켜쥐지요. ‘아니요. 전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이 돈은 제 것이에요!’ 예, 이것이 저예요. ‘주님께서 눈길을 돌려 바라보신 죄인’. 교황직 선출을 받아들이겠느냐고 저에게 물었을 때 했던 말은 이렇습니다.”
그리고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저는 죄인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자비와 한없는 인내에 위탁하며, 참회의 정신으로 받아들입니다.(Peccator sum, sed super misericordia et infinita patientia Domini nostri Iesu Christi confisus et in spiritu penitentiae accepto.)”
2. “움직이는 생각이 필요합니다.”(160쪽)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욜라의 이냐시오가 다음과 같이 요구하는 『영신 수련』의 실천에서 이러한 견해를 성숙시킨다. “하느님이 어떻게 피조물 안에 기거하시는지를 살펴본다. 곧 하느님은 물질들에 존재를 부여하시면서 그 안에 계시고, 식물들을 성장하게 하시면서 그 안에 계시며, 동물들에게 감각을 부여하시면서 그 안에 계시고, 사람들에게는 이해력을 부여하시면서 그들 안에 계시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존재와 생명과 감각을 주시면서, 그리고 이해력을 주시면서 그렇게 내 안에 계시고, 또한 나를 성전聖殿이 되게 하심으로써, 그리고 당신의 존엄하신 모습을 닮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하신 내 안에 그렇게 계신다.”(『영신 수련』 235) 그런 후 또 하느님의 활동을 주시하도록 요구한다. “하느님께서 어떻게 땅 위의 모든 피조물 안에서 나를 위하여 수고하시고 일하시는지, 곧 일하는 사람처럼 행동하시는지를 생각한다. 하늘과 물질들과 식물들, 열매들과 가축들 따위 안에서 그것들에게 존재를 부여하고, 보존하며, 성장하게 하고, 감각을 부여하는 등의 일을 하시면서 그 안에서 일하시는 것이다.”(『영신 수련』 236)
요점이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 발견하기”라면 이 역동적 과정에서 사명과 변화는 복음과 성령께 대한 충실성과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변화들 이 두 가지 모두에 의해 인도된다. 이 점에 있어 교황은 분명하다.
“하느님은 모든 곳에 계신다. 모든 문화의 고유한 언어로 하느님을 선포할 수 있기 위해 그분을 발견하는 법을 알 필요가 있다. 모든 현실, 모든 언어는 다른 리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3. ‘서민민들의 교황’의 면모 (본문 34쪽-35쪽 등등)
2013년 3월 13일, 아르헨티나 추기경 출신으로 본명이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Jorge Mario Bergoglio는 1200여년 만에 첫 비유럽인 출신으로 가톨릭 교회의 제 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의 공식 이름은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는 2013년 3월 이후 교황으로서의 행적은 단지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비가톨릭계 신자들 나아가 전세계인들에게 깊은 인상과 감동을 안겨 주고 있다.
세계인들은, 교황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우는 게 아니라, 貧者와 弱者들 편에서 서서 어려운 그들의 처지에 도움을 주려하고 그들과 함께 하려고 하는 그의 탈권위적이고 실천적이며 겸손한 교황의 진심에 깊은 감동과 신뢰를 갖게 된 것이다. 그는 섬김을 받는 교황이 아니라 사람들을 섬기는 교황이다.
교황 선출 다음날 미사에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전례의식 전통을 깨고 아무런 무늬도 없는 소박한 제의를 입고, 원고 없이 강론을 하였다던가, 전임 교황들과는 달리 의자에 앉지 않고 추기경들과 같은 위치에서 선채로 강복을 주었다는 것, 또한 교황전용 관저 대신 일반 추기경들과 함께 바티칸의 산타마리아 게스트하우스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등은 교황의 서민적 성품을 알려줄 뿐 아니라, 그가 교황의 권위를 스스로 버리고 평범한 삶을 선호하고 모든 인간을 섬기는 종교적 지도자로서의 교황의 지위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대담집 앞부분에서도 곳곳에, 이러한 서민들, 보통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교황의 서민적 성품을 확인할 수 있다.
“교황님, 무엇이 교황님으로 하여금 예수회를 선택할 생각을 하게 했는지요? 예수회라는 수도회의 무엇이 교황님께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까?”
“전 뭔가 그 이상의 것을 원했어요.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를 몰랐지요. 저는 신학교에 들어갔었어요. 저는 도미니코회원들이 좋아서 도미니코회원들을 친구로 사귀었지요. 그런데 후에 저는 예수회를 선택했는데, 그 신학교가 예수회원들에게 위탁되어 있었기 때문에 예수회를 잘 알게 되었던 거지요. 예수회에 대해서 말하자면 세 가지가 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선교성, 공동체, 규율이 그것입니다. 근데 이게 재미있어요. 왜냐면 저는 태생적으로 규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거든요. 그렇게 태어났어요, 태어나길. 그런데 예수회원들의 규율, 시간을 배정하고 다루는 방식은 저에게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저에게 그야말로 근본적인 것 하나는 공동체입니다. 언제나 저는 공동체를 찾고 있었어요. 저 자신을 혼자 사는 사제로 간주하지 않았지요. 다시 말해 공동체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제가 여기 싼타 마르타에 산다는 사실로 알 수 있지요. 선출 당시 저는 제비뽑기를 통해 207호실에 머물렀습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 방은 손님용 방이었는데, 저는 여기 201호에 살기로 했지요. 왜냐면 제가 교황 관저에 살기로 되었을 때 저는 안으로부터 명료하게 ‘아니야’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교황궁 안에 자리한 교황 관저는 화려하지 않아요. 오래 되고 세련되고 크지만 화려하지는 않지요.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깔때기를 거꾸로 엎어놓은 것 같은 모양이에요. 커다랗고 널찍하지만 입구가 정말이지 좁아요. 사람들이 물방울이 하나씩 떨어지듯 들어가는 거예요. 그런데 전 아니에요. 전 사람들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저에게는 제 삶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 필요하지요.”
교황이 사명과 공동체에 대해 말할 때 나에게는 “사명을 위한 공동체”에 대해서 말하는 예수회의 그 모든 문헌들이 떠올랐다. 그 문헌들의 내용을 나는 그의 말에서 다시 발견했던 것이다.
4. 교황 프란치스코가 한 어록 중, 이 대담집의 제목이기도 한
“나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하는 말과 관련하여 그의 할머니 로사의 말을 비교, 음미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예수교의 사랑과 관용의 종교정신에서 나온 말이다. 교황 개인사적으로 할머니 로사에게서 지대한 종교적 영성을 얻었다고 고백하는데, 베르골리오의 할머니 로사는 청년 베르골리오가 예수회에 입교하기로 결정하자, 이렇게 말한다.
“그래, 하느님께서 너를 부르시는 거라면 축복받을 일이지. 그렇지만 우리 집 대문은 늘 열려 있다는 것과 네가 귀가를 결정한다고 해도 아무도 너를 비난하지 않을 거란 점을 기억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