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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84312890
· 쪽수 : 320쪽
책 소개
목차
당신의 턱을 조심하세요 | 마지막 로망 | 잘 쓰고 돌려주세요 | 사이프러스 | 푸른 이구아나, 라몬 | 아버지를 빌려드립니다 | 청바지 혹은 명품 가방처럼 | 이상한 초대 | 구멍과 직면하다 | 수상한 보호자 | 글루미 선데이 | 아빠는 놀이 기구를 만들어 | 모든 게 들통 나 버리는 경우 | 유쾌한 거짓말 | 어느 한순간 문득 | 오 해피데이 | 유기농 오곡 시리얼 | 암스트롱입니다 | 깊은 방 | 짬뽕을 강요하는 사회 | 짬뽕 죽이기 | 흔들리는 성城 | 사십오 도 인생 | 끼워 팔기 | 왕돈가스와 오붓한 돈가스 | 두 번 사라진 남자 | 그래도 로망이잖아 | 비굴함을 팝니다 | 농담 |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 튜닝할래요 | 행진 | 동물원을 모독하다 | 두 시간짜리 아버지 | 이구아나에 사랑을 싣고 | 아내는 출장 중 | 춤추는 산타 | 보물을 낚으세요 | 불구의 시대 | 탈출 | 그리움에 대하여 | 추락하는 것에 경의를 표하다 | 십 프로의 비애 | 무엇을 찾으세요 | 푸른 이구아나를 찾습니다
해설·이명원 |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다급한 의사가 투박한 양손을 입에 넣고 턱을 끌어 올렸다. 힘이 어찌나 센지 얼굴 전체가 뽑혀 나가는 듯했다. 그래도 빠진 턱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입을 있는 대로 벌리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마치 아랫도리를 내리고 길 한가운데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아내가 보지 않아서 다행이다. 아직도 아내에게 추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다른 게 추한 게 아니라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상황 자체가 추하게 느껴졌다.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도 그랬다. 내 의지와 무관한, 마치 지금처럼 입을 있는 대로 벌리고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하는 경우 같은 거였다. 누군가 등을 떠밀면 입을 한껏 벌린 채로 거리를 활보하고 지하철을 타야 할 상황이었다. - 본문 14쪽 중에서
집이 집이 아니긴 내게도 마찬가지다. 사실 벌써부터 집을 처분하고 싶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떠난 후 집은 갑자기 광활해졌다. 정확히 말하면 갑자기는 아니었다. 서서히 아주 조금씩 조금씩 자랐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거실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자라 있었다. 이상한 것은 눈에 띄지 않을 만큼이었지만 비밀번호를 눌러 현관문을 열고 어두운 실내를 맞닥뜨리는 순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는 점이다. 불을 켜고 실내를 아무리 둘러봐도 어디가 얼마큼 자라났는지는 통 알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아침에 눈을 뜨면 방이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자라 있었다. - 본문 25쪽 중에서
텔레비전을 껐다. 냄비를 기울여 남은 라면 국물을 다 마셨다. 냄비를 바닥에 내려놓는 그 순간 집이 살짝 팽창하는 것을 느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크다는 페르시아 거목 사이프러스가 떠올랐다. 키가 삼십 미터나 되고 그늘 지름이 이십 미터에 이른다는 사이프러스. 그 속에 들어앉아 있으면 이런 느낌이 나지 않을까. 살아 있는데 숨 쉬고 있지 않은 것 같은, 혹은 죽어 있는데 숨 쉬고 있는 것 같은. 집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사이프러스처럼 집에도 생장점이 있는 게 아닐까. 문제는 그 생장점이 어디에 자리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생장점만 도려내면, 그것만 없애면 집은 더 이상 자라지 않을 텐데. - 본문 26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