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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여자

종이 여자

기욤 뮈소 (지은이), 전미연 (옮긴이)
밝은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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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여자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종이 여자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84374614
· 쪽수 : 488쪽
· 출판일 : 2023-06-01

책 소개

기욤 뮈소의 대표작 《종이 여자》가 새로운 표지를 제작해 새롭게 만난다. 가슴 설레게 만드는 로맨스, 심장을 뛰게 만드는 서스펜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영화적 긴장감,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판타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기발한 결말이 함께한다.

저자소개

기욤 뮈소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74년 프랑스 앙티브에서 태어나 니스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몽펠리에대학원 경제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이수한 후 국제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집필 활동을 시작했다. 첫 소설 《스키다마링크》에 이어 2004년에 출간한 두 번째 소설 《그 후에》는 프랑스 문단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고, 질 부르도스 감독의 영화로 제작되어 모나코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각색상을 수상했다. 《그 후에》부터 《미로 속 아이》까지 20권의 소설 모두가 프랑스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매년 《르 피가로》와 〈프랑스서점연합회〉에서 조사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순위에서도 8년 연속 1위에 올랐다. 세 번째 소설 《구해줘》는 아마존 프랑스 85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고, 국내에서도 무려 200주 이상 베스트셀러에 등재되었다. 지난 12년 동안 프랑스에서 책이 가장 많이 판매된 작가이고, 현재 전 세계 47개국 독자들이 그의 소설에 공감과 지지를 보내고 있다. 2021년 프랑스 작가 최초로 전 세계 서스펜스 대가에게 수여되는 레이먼드 챈들러 상을 수상했다. 그의 소설 《미로 속 아이》, 《안젤리크》, 《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 《인생은 소설이다》,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아가씨와 밤》, 《파리의 아파트》, 《브루클린의 소녀》, 《지금 이 순간》, 《센트럴파크》, 《내일》, 《7년 후》, 《천사의 부름》, 《종이 여자》, 《그 후에》, 《당신 없는 나는?》,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구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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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연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과를 졸업했다. 파리 제3대학 통번역대학원(ESIT) 번역 과정과 오타와 통번역대학원(STI) 번역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며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기욤 뮈소의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사랑하기 때문에》, 《그 후에》, 《천사의 부름》, 《종이 여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억》, 《죽음》, 《고양이》, 《잠》, 《파피용》, 《제3인류》(공역), 《만화 타나토노트》, 로맹 사르두의 《최후의 알리바이》, 《크리스마스 1초 전》, 《크리스마스를 구해줘》, 아멜리 노통브의 《두려움과 떨림》,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 《배고픔의 자서전》, 폴 콕스의 《예술의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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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아가씨는 누구냐니까?”
내가 거듭 묻자 여자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날 첫눈에 알아볼 거라 생각했는데…….”
어둠 때문에 얼굴이 또렷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귀에 익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더구나 지금은 스무고개 식으로 그녀가 누군지 알아맞히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성냥을 그어 패서디나의 벼룩시장에서 산 낡은 허리케인 램프에 불을 붙였다.
은은한 불빛이 실내에 퍼져나가면서 여성 침입자의 모습이 보다 명확하게 들어왔다. 나이가 스물다섯쯤 돼 보이는 젊은 여자로 왕방울처럼 큰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하고, 갈색 머리칼에서는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우린 한 번도 만난 적 없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볼 거라 생각했죠?
그녀가 피식 헛웃음을 흘렸지만 나는 절대로 그런 수작에 말려들 생각이 없었다.
“아가씨, 이제 그만 하시죠. 이 야심한 새벽에 남의 집에서 대체 무슨 짓이죠?”
“정말 모르겠어요? 나란 말이에요, 빌리.”


캐롤과 단둘이 있을 때면 어린 시절 겪었던 혼돈스런 상황이 부메랑처럼 날아와 나를 할퀴고 지나갔다.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의 전부나 다름없었던 맥아더파크의 지저분한 공터들, 우리를 가두었던 그 악취 나는 수렁과 질식할 것 같았던 공기, 학교가 파한 후 철책으로 둘러쳐진 농구장에서 나누었던 고통스러운 대화의 기억들…….
오늘도 나는 우리가 아직 열두 살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백만 부가 팔린 내 소설들, 캐롤이 체포한 수많은 범죄자들은 우리 둘이 맡은 연기에 필요한 소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린 아직도 그 혼돈의 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사실 우리 셋 다 아이를 낳지 않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강박증과 싸우기에도 벅차 생명을 잉태해 흔적을 남기겠다는 희망 따위는 품어 볼 틈이 없었다. 솔직히 나는 캐롤의 근황에 대해 잘 몰랐다. 요즘은 얼굴을 볼 기회도 뜸했고, 더러 만날 기회가 생겨도 서로 본질적인 문제는 건드리지 않으려 애썼다. 어쩌면 우리가 입에 올리지만 않는다면 과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 있을 거라 믿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사람이 산다는 건 그리 간단하고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잊기 위해 밀로는 허랑방탕하게 살고 있고, 나는 크리스털 메스를 흡입하고 있고, 온갖 중독성 약물로 하루하루 버티며 필사적으로 글쓰기에 매달려 있다.
“난 거창한 이야기는 하기 싫어.”
캐롤이 티스푼을 빙글 돌리며 말했다.
밀로가 없으니 굳이 유쾌함을 가장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서인지, 그녀의 어두운 얼굴에 수심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정말 대책 없는 여자네. 당신은 면허증도 없으면서 절도 차량을 몰았어요. 게다가 샌디에이고 카운티의 과속 단속 역사상 최고 기록으로 달린 게 확실해요.”
“알았어요. 그 도덕군자 같은 소리는 들을 만큼 들었으니 제발 그만해요. 이제야 당신 애인이 내뺀 이유를 알겠어요.”
나는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당신은 뭐라 규정할 말이 없는 여자야. 당신 혼자 이집트에 내린 10가지 재앙에 맞먹으니까.”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는데 정신이 팔려 나는 그녀의 대답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보안관은 일단 본부에 지원을 요청할 테고, 우리를 순찰차에 태워 경찰서로 데리고 간 다음 도난당한 차를 찾았다고 차주인 밀로에게 연락할 것이다. 빌리가 신분증도 운전 면허증도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게 꼬이게 될 것이다. 게다가 내가 가석방 상태인 유명 작가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질 게 분명했다.
순찰차가 우리 차 몇 미터 뒤에서 멈춰 섰다. 빌리는 차의 시동을 끄고 나서 의자에 앉은 채 어린아이처럼 다리를 심하게 떨었다.
“바보처럼 굴지 말고 핸들에 손 얹고 차분하게 앉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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