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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액션/스릴러소설 > 외국 액션/스릴러소설
· ISBN : 9788984375024
· 쪽수 : 400쪽
· 출판일 : 2025-05-29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여자 친구가 위험에 빠지자 소년은 신발을 벗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날 꼭 잡아, 겁먹지 말고.”
소녀가 소년의 몸에 매달렸다. 소년은 안간힘을 다해 팔을 휘저으며 서서히 호숫가로 헤엄쳐갔다. 소년은 숨이 가빠왔지만 잠수를 한 상태로 소녀를 호수 기슭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막상 자신의 차례가 되자 몸에 남아 있던 힘이 모두 소진되어버렸다. 호수 밑바닥에서 누군가가 억센 두 팔로 몸을 세게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소년은 숨이 막히고 심장이 달음박질치는 가운데 뇌에 극심한 압력이 가해졌다.
소년은 더 이상 가라앉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폐에 물이 차오르는 걸 느꼈고, 더는 버티지 못하고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내 고막이 터지고 주변이 암흑으로 변했다. 숨 막히는 어둠에 휩싸인 소년은 막연하나마 마지막이라는 걸 직감했다.
이제 소년의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차갑고 무시무시한 어둠밖에는.
어둠.
어둠.
그리고 별안간……
빛.
‘총을 쏘아서는 안 돼. 제발 쏘지 마.’
케빈은 밤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나서 방아쇠를 당겼다. 커다란 총성이 밤의 정적을 뒤흔들었고, 케빈은 그 자리에 스르르 주저앉더니 바닥으로 쓰러졌다.
일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옥외 전망대는 극도의 혼란에 휩싸였다. 모두들 반사적으로 엘리베이터 앞으로 뛰어갔다. 다급해진 사람들은 먼저 엘리베이터에 오르려고 서로 몸을 밀치며 우왕좌왕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이 위험한 상황을 알리려고 조바심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9.11 테러를 경험한 뉴욕 사람들은 아직도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심지어 뉴욕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조차도 테러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벗어던지지 못했다.
네이선을 포함해 전망대를 떠나지 않은 몇몇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케빈의 주위에 둥그렇게 모여 섰다. 하필이면 케빈의 옆에서 키스를 하다가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연인들이 소리 죽여 흐느꼈다.
빌딩 경비원이 케빈의 몸 상태를 확인하며 소리쳤다. “다들 뒤로 물러서요.”
그가 무전기를 들고 로비에 구조를 요청했다.
“구조대원을 전망대로 보내주고, 앰뷸런스를 대기시켜줘요. 86층 옥외 전망대에서 총상 환자가 발생했어요.”
“메신저라면?”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찾아가 저세상으로 떠날 준비를 시켜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을 메신저라고 하지.”
네이선이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이지 황당한 이야기야!’
“그러니까 누군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메신저라고 한다는 말이죠?”
“메신저들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산 사람들과 차분히 이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요. 그들이 인생을 정리하고 마음 편히 떠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뜻이오.”
네이선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렇다면 굿리치 박사님은 상대를 잘못 고르셨습니다. 저는 나름 합리적인 사람일뿐더러 영적 세계를 믿지 않는 사람이니까요.”
“나도 잘 알아요. 사람들이 영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는걸.”
네이선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나서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체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지?’
잿빛 하늘에서 다시 목화솜 같은 함박눈이 주차장이 내다보이는 통 유리창을 때리며 쏟아졌다.
“그러니까 굿리치 박사님이 바로 그 메신저라는 뜻인가요?”
“내가 바로 메신저요.”
“메신저라서 케빈의 죽음을 미리 알았던 건가요?”
“바로 그거요.”
굿리치의 수작에 말려들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이 미친 작자의 헛소리를 계속 들어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럼 왜 케빈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도 수수방관했죠?”
“무슨 뜻이오?”
“굿리치 박사님은 케빈이 권총 자살을 시도할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으면서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차분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게 그런 겁니까? 죽어가는 케빈의 얼굴이 내 눈에는 결코 편안해 보이지 않았기에 묻는 겁니다.”
“메신저라고 해서 모든 죽음에 관여할 수는 없어요. 케빈은 삶의 고통이 너무 크다보니 죽고 싶다는 마음을 제어할 힘이 하나도 없었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다들 케빈 같지는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