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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가톨릭 > 가톨릭 성서 > 성서의 이해
· ISBN : 9788984815674
· 쪽수 : 256쪽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욥기 • 008
욥의 고통과 나의 고통 • 012
욥, 비非히브리인의 믿음? • 025
욥기와 고대 근동의 다른 문학 작품들 • 029
욥기의 거룩한 독서
시험에 든 욥 ── 욥 1,1-22 • 036
이의를 제기하는 사탄 ── 욥 2,1-13 • 042
“차라리 없어져 버려라, 내가 태어난 날” ── 욥 3,1-26 • 047
친구 엘리파즈의 첫 번째 담론 ── 욥 4,1-21 • 052
생각을 바꾸라는 엘리파즈의 초대 ── 욥 5,1-27 • 057
자신의 정의를 주장하는 욥 ── 욥 6,1-30 • 062
“내 날들은 한낱 입김일 뿐” ── 욥 7,1-21 • 068
빌닷의 첫 번째 담론 ── 욥 8,1-22 • 073
하느님의 정의에 이의를 제기하는 욥 ── 욥 9,1-35 • 078
욥, 고통 중에 오직 탄원뿐 ── 욥 10,1-22 • 083
욥의 죄를 확신시키려 하는 초파르 ── 욥 11,1-20 • 088
욥의 자기 방어 ── 욥 12,1-25 • 093
욥은 말을 멈추지 않는다 ── 욥 13,1-28 • 098
부서지기 쉽고 약한 인생 ── 욥 14,1-22 • 103
욥을 고발하는 엘리파즈 ── 욥 15,1-35 • 108
욥, 포위된 사람 ── 욥 16,1-22 • 114
어디에 내 희망이 있는가? ── 욥 17,1-16 • 119
빌닷의 둘째 담론 ── 욥 18,1-21 • 123
마지막에 정의를 재설정하실 하느님 ── 욥 19,1-29 • 127
초파르의 둘째 담론 ── 욥 20,1-29 • 133
친구들의 신학을 뒤집는 욥 ── 욥 21,1-34 • 138
욥의 회개를 촉구하는 엘리파즈 ── 욥 22,1-30 • 143
하느님을 찾는 욥 ── 욥 23,1-17 • 148
악과 불의를 잘 알고 있는 욥 ── 욥 24,1-25 • 153
빌닷과 욥, 하느님의 업적에 대한 명상 ── 욥 25,1-6; 26,1-14 • 158
계속해서 자신을 변호하는 욥 ── 욥 27,1-23 • 163
하느님의 지혜 찬가 ── 욥 28,1-28 • 168
욥의 그리움 ── 욥 29,1-25 • 173
현재의 씁쓸함 ── 욥 30,1-31 • 178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욥 ── 욥 31,1-40 • 183
엘리후, 거만한 젊은 침입자 ── 욥 32,1-22 • 189
젊은이의 교훈 ── 욥 33,1-33 • 194
엘리후의 둘째 담론, 자비 없는 정의 ── 욥 34,1-37 • 200
엘리후의 셋째 담론,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신 하느님 ── 욥 35,1-16 • 206
엘리후의 넷째 담론, 고통의 기능 ── 욥 36,1-21 • 211
엘리후의 하느님의 지혜 찬가 ── 욥 36,22-33; 37,1-13 • 216
엘리후의 마무리 담론, 하느님의 능력 ── 욥 37,14-24 • 222
하느님의 대답 ── 욥 38,1-41; 39,1-30 • 226
욥과 하느님의 대화 ── 욥 40,1-14 • 234
브헤못과 레비아탄 ── 욥 40,15-32; 41,1-26 • 239
하느님께 대한 욥의 대답 ── 욥 42,1-6 • 244
맺음말, 욥을 회복시키시는 하느님 ── 욥 42,7-17 • 249
간추린 참고 문헌 • 254
리뷰
책속에서
욥기는 불의한 고통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강력하게 항의하는 이야기를 쓴 책이다. 욥은 불의한 고통을 하느님 탓으로 돌린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항의를 한다. 욥은 하느님께 불의한 고통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다. 욥은 고대의 보상 원칙에 이의를 제기한다. 즉 고통과 죄 사이에 설정되는 관계, 다시 말하면 고통이 죄의 결과로 제시되는 관계에 근본적으로 의문을 갖는다.
하느님은 마지막까지 침묵하신다. 하느님은 사람들의 토론에 개입하실 뜻이 없다. 아마 하느님은 그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자유롭게 논의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다. 이는 하느님의 부재나 무관심을 뜻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욥의 친구들의 말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표상을 하느님이라고 주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곧, 사람들은 구체적 상황과 역사를 고려하지 않은 채, 달리 말해 사람들의 구체적 사건들을 이해하고 통찰하지 못하면서 단순히 자기들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표상을 주장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그리고 상처받은 인류의 이야기 속에서 욥기를 읽는 모든 사람은 욥기에서 자신을 보게 된다. 또한 하느님께 항의하고 그분 최고의 정의를 일깨우며 그분의 주의를 끌어 보려는 모든 사람은 욥기에 열중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정의가 그들의 처지에 무관심하며 오로지 하느님의 정의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부르짖음, 항의와 기도가 되는 그 부르짖음을 이 고대의 책인 욥기에서 어떻게 주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욥기를 읽으면서 독자는 자신이 욥과 같은 처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곧, 어쩌면 이스라엘의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지만, 세상의 악과 고통 앞에서 무관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적어도 욥의 친구들이 한 것처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변명이나 비난을 하지는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그 상황에 있을 수밖에 없는 고통받는 사람을 설득하기 위하여 계속해서 말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더 낫다. 우리는 자주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대신 그들에게 있을 수 있는 잘못을 그들 탓으로 돌리면서 어떻게 해서든 그들이 고통받는 이유를 찾아내려고 애를 쓰곤 한다. 우리 사회가 가난한 이들에 대해 자주 그렇게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