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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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언어로 한국 문학사의 큰 발자취를 남긴 김유정은 1908년 2월 12일(음력 1월 11일)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에 서 아버지 청풍 김씨 춘식과 어머니 청송 심씨 사이에서 이남 육녀 중 일곱째로 태어난 후 서울 종로구 운니동으로 가족 모두 이사를 오고 재동공립보통학교와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하지만 중퇴한 후 고향 춘천 실레 마을로 내려가 금병의숙을 세워 문맹퇴치운동을 벌이고 금광에 손을 대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서울로 올라와 본격적으로 문학에 대한 열정을 품고 금광 생활에서 얻은 경험과 고향에서 보고 느꼈던 농촌 배경의 토속적 정취를 녹여낸 〈산골 나그네〉, 〈총각과 맹꽁이〉를 발표하고 채만식·박태원·이상 등과 교류 하며 〈금 따는 콩밭〉 〈노다지〉 〈금〉 〈떡〉 〈만무방〉 〈봄봄〉 〈안해〉 등 열한 편의 소설과 수필 세 편을 발표해 문단의 찬사를 받고 후기 구인회 동인으로 참여한 후 이태준, 이상과 깊은 친분을 쌓는다. 그는 이때쯤 치질과 늑막염이 악화한 상태로 병원에서 폐결핵 진단까지 받고 고통으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 후 농촌에서 우직하고 순진하게 살아가는 하층민의 비참한 생활 실상을 특유의 해학적 수법으로 표현한 단편 〈봄과 따라지〉 〈가을〉 〈두꺼비〉 〈봄밤〉 〈이런 음악회〉 〈동백꽃〉 〈야앵호〉 〈옥토끼〉 〈정조〉 〈슬픈 이야기〉와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 〈어떠한 부인을 마지할까〉 〈전차가 희극을 낳아〉 〈길〉 〈행복을 등진 정열〉 〈밤이 조금만 짤렀드면〉 등을 발표하고 미완의 장편 〈생의 반려〉를 연재하기도 했다. 그는 불과 이 년 남짓한 작가 생활 동안 삼십여 편의 단편과 한 편의 미완성 장편, 두 편의 번역 소설, 열두 편의 수필과 편지와 일기 여섯 편 등 왕성한 창작 의욕을 보이다 지병인 폐결핵에 시달리다 1937년 3월 29일 꽃다운 스물아홉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의 유해는 친구, 형제, 조카들에 의해 화장한 후 한강에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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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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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생이며 1956년 영화계에 데뷔했다. 1950년대 그 당시에 우리나라의 영화비평 분야가 황무지였다. 그는 좋은 영화비평 없이는 좋은 영화의 창작이 어렵다는 판단 하에 이 땅에도 영화비평이 확립되어야겠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주요 경력을 소개하면, 『평화신문』 문화부장, 전문지 『영화예술』 주간, 한양대학교, 동국대학교, 중앙대학교, 同신방대학원, 청주대학교, 서울예전, 선문대학교 연극영화과 강사를 했다. 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창립초대회장, 한국영화인협회 시나리오위원장 겸 부이사장, 대한민국예술원 『한국예술사』, 『한국예술사전』 편집위원 및 필자, 공연윤리위원회 윤리위원 및 심사위원, 국제비평가연맹, FIPRESCI(뮌헨) 한국본부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작품으로 [지하실의 7인](1967), [무녀도](1972), [땡볕](1984) 등 외 30편이 있다. 그 외 『영화개론』, 『한국영화감독론』 등 수많은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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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봉 (각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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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작품에는 [연산군](1987), [감자](1987), [태](1985), [땡볕](각본, 1984), [이 한몸 돌이 되어](1983), [명동잔혹사](1972), [풋사랑](1971), [여창](1971), [미워도 정 때문에](1971), [명동사나이 따로 있더냐](1971), [두 딸] (1971), [명동삼국지](197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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