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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87527475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16-01-04
책 소개
목차
운명 앞에 서다
지나가는 사랑, 다가오는 사랑
사랑을 그리는 날들
인생의 모닥불 앞에서
세월 속에 남겨지다
만남
에필로그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누구에게나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하루가 있다. (……) 나에게는 지난 서른여섯 살 때 한 여성을 만난 어느 날이 바로 그날이다. 왜냐하면 그날이 포함된 그해가 지나기 전에 내 심장은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범섬 앞바다 심해의 바닷물도, 시냇물이 흐르듯 높게 솟아오른 나무 사이를 비집고 흘러내리는 어느 봄날의 햇살도, 바닷가 바위 위에서 춤추는 그 수많은 한여름밤의 보름달 달빛도, 어느 여인의 헌신적인 도움과 그녀의 따스한 손길도, 하물며 용광로 안의 불꽃같은 문학을 향한 나의 열정도…… 내 심장을, 고철 조각처럼 얼어붙은 내 심장을 녹여주지는 못했다. 사반세기가 지난, 아직까지도…….
도대체 작중인물의 가슴속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원고지에 늘어놓은 것은 말장난에 불과했다. 대화는 서술보다 성격 묘사와 스토리 전개에 더 경제적이고 능률적이어야 하는데 지루한 요설에 불과했고, 작중인물인 화자의 느낌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희미한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 다른 사람의 느낌이 내 펜 끝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혹은 일제강점기 시대 소설에서나 쓰였을 법한 죽은 표현들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나는 그것이 속임수라는 것을 알았고, 그것이 일반 독자들을 속일 수 있을지는 모르나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두 번째 사랑은 한밤중 아무도 찾지 않는 곳, 해변 모래사장에 피워놓은 모닥불 옆에서 이루어졌다. 마치 꿈속에서 이루어진 듯한, 그 사랑행위는 자연을 모독한 죄에 가까웠다. 그러나 어떤 천벌이 내리더라도 후회할 것 같지 않았다. 아니, 계속해서 범하고 계속해서 벌을 받기를 나는 두 손 들어 환영했다. 같이 범하고 같이 벌을 받는, 그 가능성이 오히려 우리 둘을 꽁꽁 묶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