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죽음의 재 같은 땅 이스라엘

죽음의 재 같은 땅 이스라엘

피터 S. 럭크만 (지은이), 이혜선 (옮긴이)
  |  
말씀보존학회
2005-10-05
  |  
25,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알라딘 22,500원 -10% 0원 1,250원 21,250원 >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인터파크 로딩중
11st 로딩중
G마켓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책 이미지

죽음의 재 같은 땅 이스라엘

책 정보

· 제목 : 죽음의 재 같은 땅 이스라엘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88988795910
· 쪽수 : 518쪽

목차

들어가는 말 / 3
서 문 / 22


제 1 장 덫은 놓여졌다 / 41
제 2 장 성경 해석에 존재하는 “머피의 법칙” / 59
제 3 장 장애물 / 93
제 4 장 스스로 증명하는 책 / 123
제 5 장 “눈에 가시”의 역사 / 146
제 6 장 “최신” 성경 역본들의 열매 / 169
제 7 장 수많은 “그리스도들” / 200
제 8 장 불타는 가시덤불에 계속되는 박해 / 208
제 9 장 2천 년의 암흑 끝에 비추는 최초의 서광 / 235
제10 장 마호메트, 교황, 처칠 vs. 하나님의 말씀 / 253
제11 장 처칠의 팔레스타인 “평화전개운동” / 291
제12 장 대가를 지불하다 / 317
제13 장 제 무덤 파는 UN / 347
제14 장 함-카나안-이스마엘-마리아-마호메트와 손잡는 미국 / 381
제15 장 화평이 없는데도 화평을 말하다 / 419


부록 1 박식한 시온 장로들의 의정서 / 451
부록 2 유대인 “메시야” / 459
부록 3 성전 재건 / 466
부록 4 “거룩한” 코란의 진짜 수 / 476


에필로그 / 482
어휘 사전 / 488
지도 / 497

저자소개

피터 S. 럭크만 (지은이)    정보 더보기
미국 플로리다 주 펜사콜라에 있는 성경침례교회(Bible Baptist Church)의 목사였으며, 펜사콜라 성경 신학원(Pensacola Bible Institute)의 설립자이자 원장으로서 50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럭크만 박사는 밥 존스 대학교(Bob Jones University)에서 Ph.D.를 받았지만, 그 학교의 신학 노선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저자는 존 칼빈 이래로 500여 명 이상의 유명하다는 성경 주석가들이 주석서에 범해 놓은 주요 오류들을 일일이 지적하여 바로잡았으며, 창세기, 출애굽기, 욥기, 시편, 잠언, 소선지서, 마태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 요한계시록 등의 주석서를 저술함으로써 올바른 성경 진리를 밝히고 있다. 또한 럭크만 박사는 <킹제임스성경>이 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권위 있게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는 독보적인 학자로 일했다. 특히 그의 저서 <필사본 증거>, <알렉산드리아의 이단들>, <신약교회사>,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 등에서 그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다. 그는 주석서와 성경 교리에 관한 160여 권이 넘는 책의 저자이며, 세계 전역에 있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존경받는 스승이다.
펼치기
이혜선 (지은이)    정보 더보기
경남 함안 출생. 1981년 《시문학》 추천완료. 동국대 국문학과, 세종대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시집 『흘린 술이 반이다』 『운문호일雲門好日』 『새소리 택배』 『神 한 마리』 『바람 한 분 만나시거든』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이』. 저서 『이혜선의 시가 있는 저녁』 『문학과 꿈의 변용』 『이혜선의 명시산책』. 윤동주문학상, 한국 현대시인상, 동국문학상, 문학비평가협회상(평론), 한국시문학상 등 수상. 세종 우수도서 선정 (2016). 현재 한국 문인협회 부이사장. 국제 펜 한국본부 이사.
펼치기

책속에서

제 8 장 불타는 가시덤불에 계속되는 박해

최초의 “게토”(유대인 격리 거주지역)는 1266년에 브레스로우의 카톨릭 공회의 허락으로 폴란드에서 시작되었다. 게토는 도시의 일부분과 나머지 부분을 벽과 도랑으로 (또는 벽과 울타리로) 구분지은 것으로, 게토 거민들의 자치 단체를 “카할”이라 하는데, 이것은 선출된 유대인 재판관들과 장로들, 랍비들에 의해 운영되었다. 이 게토는 1939년부터 1945년 사이에 6백만 유대인을 멸절시키기 위한 아돌프 히틀러의 계략의 원형이 되었는데, 히틀러의 경우 유대인들은 게토에서 집단 처형장으로 곧장 이송되었다. 히틀러의 “기술자들”(스타이너의 <트레블링카>를 볼 것, 1966)은 유대인 심리학, 특히 논리 게임, 지적 퍼즐에 관한 전문가들이었다. 탈무드를 오랫 동안 연구한 사람이라면 유대인의 특성을 간파하고 있을 것이다. 가상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추측과 사고와 논리로써 풀어 보려는, ‘정신 운동’에 대한 그들의 고정 관념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철학은 유대인들을 집단 처형장으로 몰아갔다.

히틀러는 게토마다 “쥬든랏”(Judenrat, 유대인 평의회)을 둠으로써 유대인이 다른 유대인들을 총살 구덩이로 쓰러넘어뜨리고 가스실로 몰아넣게 만들었다. 집단 처형장에서조차 수감된 유대인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은 유대인들이었으며, 그들은 굶주림, 질병, 독극물 주사, 과로, 독가스, 총살 등으로 죽어갔다.

폴란드의 모든 로마카톨릭 신자들이 유대인들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갖고 있음을 인지한 히틀러는 지혜롭게도 미래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고향을 처형 장소로 이용했다. 그는 여섯 개의 대형 집단 처형장을 세웠는데, 교황 피오 12세와 맺은 그의 정교 조약(교황 요한 바오로는 이를 “승인”했다.)으로 그는 즉시 성공할 수가 있었다.

이 두 교황(피오 12세와 요한 바오로 2세)의 극악무도한 범죄의 진상을 은폐하려는 뉴스 미디어의 모든 시도는 허사였다. 1933년에서 1945년까지는 둘 다 유대인 박해에 대해서 철저히 입을 다물었으며, 요한 바오로 2세는 폴란드의 집단 처형장에 로마카톨릭 수녀들을 위한 기념비를 세우고자 했을 때 그 자리에서 죽은 단 한 명의 유대인도 거론하지 않았었다.

요한 23세,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2세를 거치면서 언론은 홀로코스트의 책임을 마틴 루터에게 돌리고자 했다. 정작 마틴 루터가 로마카톨릭 신자로 교육받았던 사실은 간과하고 말이다. 또한 그들은 다음과 같은 역사의 진실을 편리하게도 간과해 버렸다.

1. 교황 바오로 4세는 로마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이 “게토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1555년에 있었던 일인데 루터는 1546년에 죽었다. 따라서 바오로 4세는 루터의 추종자가 아니라 그저 로마카톨릭 교황이었을 뿐이다.
2. 교황 그레고리 6세(1045-그는 루터보다 490년이나 앞섰다.)는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을 위해서 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3. 로마카톨릭의 제4차 라턴 공회(루터보다 300년 앞섰던) 때 모든 유대인들은 “다윗의 별”을 달고 다녀야 한다고 결정되었다.
4. 교황 그레고리 9세(루터보다 350년이나 앞선)는 탈무드를 모조리 압수하고, 거부하는 자는 처형하도록 명령했다.
5. 나치와 피오 11세의 협약은 로마를 히틀러 손에 넘겨 주려는 추기경 유진 파셀리[베를린에 있던 히틀러의 추기경]의 13년에 걸친 노력의 결과였다. 후에 추기경 파셀리는 교황 피오 12세가 되었으며 피오 11세가 서명한 정교조약을 강화시켰다.

나치의 행위에 대해서 교황 피오 11세, 교황 피오 12세, 요한 바오로 2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요한 바오로(2000년)는 모든 사람을 향한 막연한 사과를 했는데, 그 사과란 것조차도 자신의 양떼 - 유일하고 참되며 “거룩하고” 사도적 가르침을 받드는 교회 등등 - 가 일부의 사람들을 잘못 대한 점에 대해 막연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결국 진정한 “호기”를 얻는데, 독립 전쟁(1948) 때의 이 승리는 하나님께서 1,900년 만에 처음으로 허락하신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카톨릭 추기경들은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가 “운전석”에 앉아 카톨릭 공산주의 담화를 나누게 만들었고, 그때 이탈리아 출신의 교황은 저격당하고(물론 사고였다!), 폴란드에서 히틀러가 세운 여섯 개의 집단 처형장 사이에서 자라난 사람은 교황 자리에 앉게 되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반 유대주의적 배경은 지구상에 어느 유대인 증오자 못지않게 “인종차별주의”적이다. 그의 “고향땅”에 집단 처형장이 세워진 곳은 소비보르, 벨제크, 아우슈비츠, 트리블링카, 테레인스타트, 마즈데나크였다.

마틴 루터가 태어난 때로부터 90년 내지 100년 전에 코라코우의 한 카톨릭 사제는(1407) 카톨릭 신자들로 구성된 폭도들을 이끌고 게토로 들어가 카톨릭 사제에게 물뿌림을 받기를 거부한 유대인 남자, 여자, 어린아이들을 모조리 죽였다. 그들은 535년 뒤에 유고슬라비아에서 일어난 것과 아주 똑같은 일을 했던 것이다. 루터가 평생 동안 쓰거나 설교한 그 어떤 것도 들어 보지 못한 상태에서 말이다. (<20세기의 바티칸 제국주의>를 볼 것, 아브로 맨하탄 저, 1965).

폴란드 왕 카시미르 4세는 1447년에 유대인들에게 소정의 특권을 제공했지만, 그런 일이 있자 폴란드 내의 모든 카톨릭 교회 사제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에 왕은 즉시 그 특권을 보장하는 특허장을 무효화시켰는데, 이때 마틴 루터는 태어나지도 않았다(1447). 1939년에 발행되었던 “특허장”(교황 피오 12세 당시에)은 인종 말살을 실행하는 집단 처형장으로 대체되었던 것이다(1940-1945).

그때 피오 12세는 입 한 번 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루터의 추종자가 아니었다.

자, 여기 계속해서 불타는 가시덤불이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신 그 장소를 기억하는가? 그것은 B.C. 1500년의 일이었는데, 지금 종교개혁으로 이어지는 암흑 시대의 중간에 가시덤불은 계속해서 타고 있다. 그것 참 대단한 덤불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왜 가시덤불이 불타 없어지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덤불이 이렇게 대답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냥 나의 의지력을 행사할 뿐이다. 나는 유례없이 똑똑한 덤불이고 살아남으려는 강한 의지를 지녔다. 나는 하루 24시간 계속해서 이 불을 최대한 이용하려 한다. 그러니까 B.C. 1500년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출 3-15장). 나 참 똑똑하지?”

그런데 말라키(B.C. 389)의 생각은 달랐다.

『나는 주이므로 변경하지 아니하노라. 그러므로 너희 야곱의 아들들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말 3:6).

1648년 우크라이나의 코사크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는데,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던 중 그들의 지도자 헤트만 보단 크밀니키가 폭풍의 눈처럼 그 지역을 뒤집어 엎었다. 유대인 남자, 여자, 아이들은 산 채로 불태워지거나 매장당하거나 우물에 처박혀 죽었다. 1년 반이라는 기간 동안 갈리카와 우크라이나에 사는 유대인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죽었다. 그런데 마틴 루터는 이 일과 아무 상관도 없었으며, 살인자들은 야만족 혹은 그리스 정교도들이었다.

러시아의 그리스 정교회(이는 로마카톨릭 교회의 동방 지교회이다)는 1504년에 모든 유대교 “이단자들”은 화형대에서 불태워야 한다고 선언했다. 1526년에 로마 교황에게 파견된 모스크바 대사는 교황에게 모스크바 시민들은 유대인들을 자기네 국경으로 넘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짜르 이반 4세(“폭군”)는 유대인들이 러시아 내로 물품을 반입하는 것조차 금지했다. 러시아가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를 합병했을 때 그 나라들에는 이미 유대인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리투아니아도 마찬가지였다.

짜리나(女帝) 예카테리나는 표트르 대제의 본을 따라 러시아에서 모든 유대인을 즉각적으로 추방하도록 명령했으며(1727), 1753년까지 짜리나 엘리자베타 표트르프나는 유대인 35,000명을 축출했다.

이방인들이 본 유일한 “빛”은 불타는 가시덤불이 내는 빛이었다.

35,000명의 유대인들은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 남자, 여자, 아이들 중 단 한 사람도 “하나님은 온 인류의 아버지시요 인류는 형제”라는 사상으로 개종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미쉬나, 토라, 제2 토라, 구전 율법, 게마라, 탈무드, 미드라쉬가 이 모든 일에 무슨 영향을 끼쳤는가? 1700년 동안 이스라엘이 이룩한 종교적 업적은 아무것도 없었다.

프랑스에서는 샤를마뉴의 자손들이 죽고 난 뒤(1096-1200) 교황들이 국내의 유대인들을 남김없이 죽이려 들었다. 교황 그레고리 9세는 유대인들이 탈무드를 광신적으로 신봉하기 때문에 물뿌림을 받으려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프랑스 국왕 루이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갖고 있는 탈무드를 전부 시 당국에 넘겨주도록 명령했고, 이에 반항하는 자는 처형하도록 했다. 그런데 모든 프랑스 군인들은 로마카톨릭 신자들이었지, “루터 추종자”들이 결코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1306년에 북부 프랑스에서 쫓겨났으며, 프랑스 혁명(1791-1795) 때까지 어떤 자유도 누리지 못했다. 그들은 400년을 더 “불타고” 있기만 했던 것이다. 프랑스 내에서 전통을 따르는 유대인들은 “트로이스의 라쉬”(“성경 주석의 왕자,” 1040-1105)라는 인물을 추종했는데, 그의 제자들은 우리가 앞서 언급한 “토사피스트”들이었으며(본서 6장 참조), 그들은 구약을 문자적으로 해석했다. 한편 프랑스에서 이성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유대인 철학가들은 레위 벤 게르손(Levi Ben Gerson, 1288-1344)이라는 사람을 따랐다. 역사가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중세 시대에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들 중 하나”였다. 다른 말로 하면 “그는 거듭나지 못하고 말만 거창한 멍청이”였다는 뜻이다.

B.C. 3000년부터 A.D. 2000년 사이에 있었던 “독창적인 사상가”들이란 그저 “자기 시대보다 앞서” 생각할 줄 알고, 그럼으로써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법을 어기는 기술을 미리 만들어 냈던 죄인들을 지칭할 뿐이다. 그들 뒤에는 미리 예언된 그의 타락성을 따라잡는 죄인들이 있게 마련이어서, 그 죄인들은 그 인물이 ‘자기’ 시대와 나이에 있어서 “독창적인 사상가”였음을 증명하게 된다. 그런 자들의 급진적이고 거듭나지 못한 타락성(역[逆]다윈주의)에 대한 무수한 예들은 음악가들, 작가들, 철학가들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바르톡, 쇼엔버그, 힌드미스, 쇼스타코비치, 라벨, 볼레즈, 피카소, 미로, 브라크, 몬드리안, 폴록, 워홀, 터너, 고갱, 제임스 조이스, “랩” 브라운, 칼 마르크스, 존 듀이, 버트란트 러셀, 마오 쩌뚱 등이다.

이 거듭나지 못한 타락성이 작용하는 방법이란 간단하다. 타락성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인간의 모든 행위에 대한 지침으로서 다윈주의를 채택하는 것이다. 이 말은 낙태율, 이혼율, 살인율의 증가와, 포르노그래피나 성 도착의 만연 등 한 국가가 정글의 법칙에 호소하게 만드는 모든 현상들을 “진보”라 부르는 데 동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가장 좋은 예는 오스트레일리아이다. 이 나라는 법을 지키며 사는 시민들의 손에서 총기를 몰수했는데(1999년에서 2000년 사이) 그로부터 한 해 동안 살인사건이 300퍼센트나 증가했다.

머리에 두뇌가 안 들어 있는 다윈주의 원숭이나 그것을 “진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로마카톨릭 교황들은 늘상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유일하고 참되며 거룩한 사도적 교회”의 정신을 “수행”한다고 말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1215년에 교황은 모든 유대인들은 날 때부터 로마카톨릭 신자들의 종이며, 로마카톨릭 왕들의 “노예”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두뇌를 가지고 따지자면, 토마스 아퀴나스와 비교할 때 레위 벤 게르손은 천재로 보일 지경이다. 이 카톨릭 성경 무식자들은 지성에서 부족한 것을 무지를 가지고 대체했으니 말이다.

“로마와 카톨릭교회 지배 하의 모든 도시에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과 전적으로 분리되어 살 것이며”(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다. - 요 18:12. 성경은 유대인들이 지은 죄의 대가를 1,200년 후에도 치르게 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출구와 입구가 하나뿐인 거리에서 살아야 한다.”(요 10:9) “유대인들은 한 개의 회당을 세울 수 있으며, 어떤 땅도 소유할 수 없다.”

그렇게 해서 1215년 이후에 유대인들은 발목까지 잠기는 물 속에 서서 가시 면류관을 머리에 쓰고 자기가 있는 지역의 로마카톨릭 귀족들의 “노예”가 될 것을 맹세해야 했다. 슐레지엔에서 유대인들은 세 발 달린 흔들거리는 의자 위에 서서 그 맹세를 해야 했으며, 또 머리에 기도 수건까지 쓰고서 그 저질스런 로마카톨릭 의식을 치러야 했다. 유대인에게서는 수입의 절반을 세금으로 뜯어갔던 색스니에서는 돼지 가죽을 걸치고 그 맹세를 하게 했으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유일하고 참된 교회”의 전형적인 절차인 것이었다. 루터는 그로부터 300년 뒤에 태어난 색슨인이었다.

참으로 불타지만 소멸되지 않는 가시덤불인 것이다.

정복자 윌리엄은 영국을 침공했을 때(1066) 유대인들을 루앙에서 데려왔으며, 그들은 런던, 베리, 성 에드몬드, 노르위치, 엑스터, 요크 등에 공동체를 형성했다. 영국에서 (그리고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서) 그들은 왕이 국가들 간의 전쟁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환전상과 대금업자의 일을 하도록 요구받았다. 그들은 네델란드에서는 이러한 은행업을 통해 부유해지기까지 했는데, 유대인 역사가들은 이런 돈 놀이를 통해 그들 중 일부가 상당한 부를 축적하게 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유대 민족을 일반 백성의 시기의 대상으로 만들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이 “일반 백성”은 언제나 로마카톨릭 사제들의 감독 아래 있는 로마카톨릭 신자들이었던지라 그로 인해 상당한 문제가 야기되었으며, 카톨릭 신자들은 유대인은 무슨 이유로도, 그들이 얼마나 근면했는지 정직했는지에 관계없이, 부자가 될 권리가 없다고 믿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샤일록”은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스페인에서 수천 명의 유대인들을 고문하고 죽인 뒤 종교 재판소의 교리성성(敎理聖省)[신앙․도덕 문제를 다루는 교황청의 기관-역자주]은 남은 유대인들을 모조리 죽이고자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옮겼다(1531). 유대인들은 네델란드로 도망했는데 이는 유트레이트 연맹이 1579년에 네델란드를 스페인의 영향력으로부터 분리시켰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9년 후(1588) 하나님께서는 스페인 무적 함대를 프랑스, 영국, 스코틀랜드, 네델란드 연안에서 침몰시키셨는데, 그 함대에는 스페인 군사들만이 아니라 종교 재판소의 간부들이 고문 도구들을 가지고 타고 있었다. 영국 개신교도들을 고문하기 위함이었다.

하도 많은 유대인들이 네델란드로 도망쳤기 때문에 암스테르담은 유럽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새 예루살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이란 말을 쓰려면 그들은 자기들이 멸시한 그 책, 바로 신약성경에서 바울 서신을 표절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 용어는 갈라디아서 4장과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온다(후자는 사도 요한의 글에서 나온다). 다시 한번 주목할 것은, 성경은 성경을 멸시하는 죄인들의 지성과 사고를 통제한다는 사실이다. 비록 그들이 자기들이 하는 말이 어디에 나오는지 찾기 위해 성경을 읽어 보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