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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미친 그들

세상을 바꾸는 미친 그들

박근형 (지은이)
  |  
프로방스
2014-09-19
  |  
1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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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미친 그들

책 정보

· 제목 : 세상을 바꾸는 미친 그들 
· 분류 : 국내도서 > 자기계발 > 성공 > 성공학
· ISBN : 9788989239901
· 쪽수 : 292쪽

책 소개

저자가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쓴 치유서이자 처세서이며 역사서다. 295쪽에 17개 나라 30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대부분 일반적인 한국인이 잘 모르는 인물이면서 자기 인생을 주체적으로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이다.

목차

머리말 | 적극적인 당신의 자세가 인생을 바꿉니다

제1장 아름다운 여인의 향기
1. 자유를 추구하는 여자 알렉산드라 다비드 넬(프랑스)
2.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다면 오드리 헵번(영국)
3. 가냘픈 여인의 고독한 투쟁 박병선(한국)
4. 지구는 학교 인생은 교실 오프라 윈프리(미국)
5. 신세타령 그만하고 일어나서 돌진하라 오히라 미쓰요(일본)

제2장 거대한 세력에 맞서 싸운 사람들
1. 용기와 지략으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영웅 진흥도(베트남)
2. 매춘부를 보호하는 마음으로 자와할랄 네루(인도)
3. 따뜻함이 강함을 이긴다 빌리 브란트(독일)
4. 공장노동자가 대통령이 되 루이스 룰라(브라질)
5. 남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어라 조영래(한국)
6. 하늘은 영웅을 시련으로 단련시킨다 김근태(한국)

제3장 진실을 추구하는 우직한 코뿔소
1. 500년을 앞서간 급진주의자 이탁오(중국)
2. 명예는 집요한 강물처럼 산도르 초마(헝가리)
3.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버트란드 러셀(영국)
4.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 이극로(한국)
5. 초라하지만 가치 있는 삶 임종국(한국)
6. 나는 이방인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미국)

제4장 피와 땀이 어우러진 문인들
1. 비난 받고 싶지 않으면 비난하지 말라 데일 카네기(미국)
2.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한 용 하인리히 하러(오스트리아)
3. 불굴의 의지와 불꽃같은 투혼 니꼴라이 오스뜨로프스끼(우크라이나)
4. 잊지 않으면서 보복하지 말라 백양(중국)
5. 너는 안 했지만 나는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일본)

제5장 과학자와 발명가
1. 진리의 불꽃으로 타오르다 조르다노 브루노(이탈리아)
2. 바벨탑에 도전한 안과의사 라자로 자멘호프(폴란드)
3. 과학자도 양심이 있어야 한다 안드레이 사하로프(러시아)
4. 실패를 즐겨라 다나카 고이치(일본)

제6장 돈은 좋은 것이다
1. 위기는 기회다 사량재(중국)
2. 폐허에서 일어선 사나이 최종건(한국)
3. 한국인은 어떻게 돈을 버는가 김영식(한국)
4. 한국인은 강하게 키우는 것을 좋아한 닉쿤(태국)

저자소개

박근형 (옮긴이)    정보 더보기
1974년 서울 출생. 성균관대학교 야간학부 중문과 졸업. 시민단체전문주간지 《시민의신문》 기자. 중국 사천대학(四川大學) 사학과 석·박사 졸업. 『티베트비밀역사』 저자. 2015년 11월 방영 <EBS세계테마기행> 4부작「간쑤(甘肅)」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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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머리말 _ 적극적인 당신의 자세가 인생을 바꿉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남자화장실 소변기 앞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한 걸음 더 앞으로.’
지극히 당연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 문구 바로 밑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적극적인 당신의 자세가 인생을 바꿉니다.’
불교를 좋아하는 사람은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겠지.”라는 말을 잘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열심히 뛰지 않으면 인연이
생기지 않습니다. 적극적인 사람이 많은 인연을 만들 수 있고, 자신을 다스리며 남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성공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지식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너무나 살고 싶어 했던 내일입니다. 강인
한 정신력으로 치열하게 살아야 합니다.
저는 바로 이런 이야기를 젊은 벗들에게 하고 싶었습니다. 이 책에 17개 나라 30명이 나옵니다. 이들은 일반적인 한국인이
잘 모르는 사람이거나 이름만 알고 구체적인 인생행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저는 중요하거나 재미있는 일화를 중심으로 이들의 인생을 소개하겠습니다.
우리 인생은 자기가 생각하는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이제 용기를 내어 돌격하십시오.
2014년 8월 20일 박근형


100년 전만 해도 50살은 노인 대접을 받았다. 이탁오는 노인이 되어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오늘날로 비유하면 학자라기보다 저널리스트, 즉 사회평론가다. 55살이었던 1581년부터 61살이었던 1587년까지 호북성(湖北省) 천와서원(天窩書院)에서 학문에 열중했고, 1588년 지불원(芝佛院)이라는 법당에 정착해서 머리를 스님처럼 완전히 밀어버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필봉을 휘둘렀다. 이 사람 저서는 30권이 넘는다. 그 중 대표작이 3권인데, 처음으로 명성을 떨친 작품이 각종 에세이와 시를 모은 <초담집(初潭集)>. 이탁오의 날 카로운 붓은 이런 문장에서 폭소를 터트린다.
사람의 욕을 먹는 개야말로 성품이 의(義)로워 집주인을 지켜주고, 쫓아도 가지 않고, 먹을 것을 주지 않아도 짖지 않으며, 스스로 더러운 똥이나 오줌을 먹고 삽니다. 그리고 개는 집안이 가난해도 근심하지 않습니다. 그러하니 ‘개’란 말로 사람을 욕하는 것은 옳지 않으므
로, 반대로 ‘사람’으로 개를 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분서(焚書)>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겉으로 말도 못하고 속으로 이탁오 주장에 동조하는 지식인이 많았던 것이다.
이탁오는 시대를 뛰어넘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다. 특히 그는 제도권 지식인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만행을 저질렀다. 이탁오는 지불원에서 여자에게 글을 가르쳤고, 여자와 학문을 토론했다.
“이 여인들의 도덕과 문장은 앞선 현인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산에 살거나 들에 있는 사슴과 돼지들도 서로 짝을 찾아 즐기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탁오의 여성관은 500년을 앞섰다. 그는 여성의 결혼자유를 인정했고, 자유연애를 긍정적으로 봤으며, 여자에게 남자와 같은 교육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신념을 그대로 실천했다.
- 이탁오 이야기에서

결국 16명이 함흥형무소에 들어갔다. 이극로는 가장 무거운 형량인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이 출소한 것은 광복 직후인 1945년 8월 17일이었다.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기쁘면서도 착잡했다. 이극로도 마찬가지였다. 12년 동안 공들인 그 원고를 빼앗겼고,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경찰이 불온문서로 처리해서 불태웠다는 소문만 있었다. 그래도 이극로는 좌절하지 않았다. 당시 사건 관계자들을 만나 열심히 추적했더니 놀라운 증언이 나왔다. 일본경찰은 조선어사전에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불태우지 않고 그냥 서울역 어느 창고에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서울역을 다 뒤졌다. 1945년 9월, 대한통운의 전신인 철도화물전용운송회사 마루보시(丸星) 소속 한 창고에서 먼지가 수북이 쌓인 그 원고를 발견했다.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눈물을 흘렸다.
이제 출간해야 한다. 출판사 세 곳을 갔는데 받아주지 않았다. 돈도 없고 종이도 귀한 시절이었다. 우리나라 최초 한국어대사전에 관심을 가질 리 없었다. 이극로와 이희승(李熙昇)이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을유문화사(乙酉文化社). 이 출판사 정진숙(鄭鎭肅) 사장도 거절
했다. 그러자 이극로가 굽실거리며 애원하기는커녕 오히려 원고뭉치를 책상에 내던졌다.
“누구 하나 <큰사전>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우리나라가 광복된 의의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 원고를 갖고 일본 놈들한테 가서 사정해야 한단 말인가!”
정진숙 사장이 감동했다. 우여곡절 끝에 미군정의 도움을 받아 록펠러재단의 도움으로 1947년부터 1957년까지 6권을 완간했다. 한국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정신력으로 이루어낸 놀라운 업적이다.…… 이극로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말했다.
“자기 앞에 있는 어떤 난관도 헤쳐 나가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지!”
- 이극로 이야기에서

데일 카네기는 뉴욕에서 참담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트럭 세일즈맨이었지만 트럭의 기계구조를 몰랐고, 알고 싶은 욕구도 없었다.
“내 일이 경멸스러웠다.”
데일 카네기는 뉴욕에서 외로웠다. 그가 사는 방은 바퀴벌레가 우글거리고 있었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자기 인생에 희망찬 미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훗날 자신의 비참한 시절을 이렇게 압축했다.
“나는 욕실이나 수도가 없는 집에서 20년 동안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안다. 온도가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가는 침실에서 잠을 자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안다. 1니켈의 차비를 아끼기 위해 몇 마일씩이나 걸어 다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안다. 바닥에 구멍이 뚫린 신발을 신고
엉덩이에 구멍이 난 바지를 입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안다. 음식점에서 가장 싼 음식을 시켜 먹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안다. 바지를 다릴 돈이 없어서 침대 매트리스 밑에 깔고 자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안다. 하지만 그런 시절에도 나는 대개 한 두 푼씩 저축을 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 데일 카네기 이야기에서

1978년 그는 일본 프로야구를 보다가 갑자기 신들렸다. 그는 만년필과 원고지를 사 와서 탁자에 앉았다. 그리고 쓰기 시작했다. 자료조사와 취재도 전혀 없이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것은 어느덧 자기 경험담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 되었다. 이것이 처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그는 기대하지 않고 1979년 군조신인상(群像新人償)에 응모했는데, 이것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한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은 혹평도 많이 받았다. 글이 너무 가볍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런 소설은 나도 쓸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훗날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누구나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한 사람 어느 누구도 소설을 쓰지 않았다. 써야 할 필연성도 없었으리라. 필연성이 없으면 아무도 소설 따위를 쓰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썼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서점에 가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책이 많다. 해결책은 이미 나와 있다. 그럼에도 우리 주위에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많다.
왜 그럴까?
실천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천력 부족한 사람이 남을 비웃기 좋아한다.
실천력이 강한 사람은 남을 비웃지 않고 그냥 실천한다.
그렇다. 당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하지 않았고, 나는 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이야기에서
“국제어를 창제하겠다는 생각은 어릴 때부터 있었습니다. 나는 그 생각을 잠시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태어난 폴란드 비얄리스톡이 내게 미래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비얄리스톡의 주민은 러시아인, 폴란드인, 게르만인, 유태인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으며,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습니다. 그 언어의 다양성이 인간 가족을 분리시키고 그들을 적대적인 관계로 나누는 유일한, 적어도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믿게 할 때가 많았습니다.”
“국제어가 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은 지금 살고 있는 민족 중에 어느 민족에도 속하지 않는 어떤 중립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언어를 창안한다는 것은 한 인간의 힘을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대학을 마치고 의사로 개업했습니다. 이제 나는 내 일의 공개발표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준비한 원고를 출판해 줄 사람을 2년 동안 찾았으나 헛된 일이었습니다.”
“나는 루비콘 강가에 서 있음을 느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엉뚱한 일’에 자신을 바치는 사람, 환상에 빠진 사람으로 본다면, 바로 그들에 의해 생활이 좌우되는 내게 어떤 운명이 닥칠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내 가족의 미래와 안정과 생존 자체를 카드 한 장 위에 던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 머리와 피 속에 들어와 있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나는 루비콘 강을 건넜던 것입니다.”
- 라자로 자멘호프 이야기에서

“저는 보통 사람들과 조금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고, 이따금 괴짜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제 전공이 화학과 아무 관계없는 분야였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도저히 무리라고 여기는 일도 전혀 새로운 발상으로 기존 사고에 얽매이지 않고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2002년 12월 10일 다나카 고이치는 노벨상을 받았다. 그는 여러 강연 요청을 받았고, 한 번은 이런 질문을 받았다.
“상식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독창성입니다.”
다나카 고이치는 모든 강연에서 주로 실패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실패를 특이하게 말했다.
“먼저 표면분석을 하려고 했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도 말이지요.”
다행히 실패했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그리고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저도 수없는 실패를 겪었고, 그럴 때마다 의기소침해져서 이제 더 이상 쳐다보기도 싫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왜 실패했는지 밝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끝까지 알아내지 않으면 같은 실패를 반복하고 맙니다.”
- 다나카 고이치 이야기에서

1953년 3월, 최종건은 공장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공장은 없었다. 그냥 잿더미로 변한 폐허였다. 폐허가 밑천이란 말인가! 최종건은 망연자실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다시 강인한 의지를 불태웠다.
‘내가 반드시 공장을 다시 일으켜 세우리라!’
그는 혼자 열심히 삽질하며 잿더미를 걷어냈다. 그것은 우공이산(愚公移山)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기적이 벌어졌다.
어릴 때 부하들이 하나씩 모였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도 모였다. 어느덧 군중이 되었다. 이들이 열심히 잿더미를 청소했다. 최종건은 이들에게 역할을 분담시켰다. 쇠조각이 나오면 소중히 한 곳에 모았다. 쓸 수 있는 벽돌도 따로 모았다. 다시 공장 건물과 기숙사를 세우기 시작했고, 최종건이 직접 불에 탄 부속품들을 수작업으로 두드리고 손질하며 직기(織機) 한 대를 완성했다. 더 이상 쓸 수 없는 쇠조각은 녹여서 볼트와 너트를 만들었다. 두 달이 지나자 폐허가 사라지고 직기 4대를 오직 사람 손으로 완성했다.
최종건은 이렇게 폐허에서 일어섰다.
- 최종건 이야기에서

“나는 가진 것 없이 시작했다. 하지만 꿈이 있다.”
김영식은 몸 전체가 뚝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직접 열심히 뛰어다니며 팔았다.
“학벌과 가문이 인격을 보증해 주지 않는다. 체면을 따지면 아무 일도 못한다. 험한 일, 밑바닥 일을 피하면 별 볼일 없는 인생이 된다.”
……
1997년 12월 국가경제가 파산했다. 국고가 텅 비었고, 은행이 무너졌으며, 수많은 회사가 줄줄이 망하고, 거리에 실업자가 넘쳤다. 천호식품도 철퇴를 맞았다. 김영식이 운영한 모든 사업이 망했다. 하청업체들에게 발행한 어음이 만기가 되어 무더기로 돌아왔고, 은행은 김영식의 회사 자산과 집까지 경매에 넘겼다. 200명이었던 직원이 모두 떠났고, 부산에 있는 공장만 4명이 남았다.
김영식은 알거지가 되었다.
훗날 이 사람은 그때 자기가 어떻게 살았는지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 서초동 그 넓은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잠은 역삼동 뒷골목 허름한 여관에서 잤습니다. 갚아야 할 빚이 20억 원이었고, 한 끼 밥값 5000원이 없어서 울었습니다. 저는 소주 한 병과 600원짜리 소시지 하나로 허기를 달랬습니다.”
이것은 죽음보다 비참한 상황이다. 그는 사무실에서도 소주를 마셨다. 그래서 자살을 결심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때 세무서 직원이 협박전화를 했다.
“체납된 국세 이번에도 안 내면……”
“이봐요. 나 세금 떼먹으려는 거 아니오. 계속 그렇게 사업 못하게 다그치면 여기 9층에서 뛰어내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자살할 생각이었소.”
그러자 세무서 직원은 냉정하게 말했다.
“뛰어내리는 건 그쪽 사정인데, 세무서 전화 받고 뛰어내렸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인간사회란 이런 것이다. 너무 슬퍼서 눈물도 안 나는 상황이었다. 결국 김영식은 자살하지 못했고, 1998년 설날 고향에 내려갔다. 세배를 하자 아버지가 선물을 줬다. 건넌방에서 포장을 뜯어보니 오뚝이가 있었다.
“오뚝이를 끌어안고 한참을 생각했다. 겪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무한 책임을 짊어진 가장이 한없이 추락했을 때 그 처참한 심정을. 내 신세에 대한 자괴감이 드는 한편, 아버지의 가르침에 대한 한없이 고마움이 솟아올랐다. 나는 오뚝이를 가슴에 품고 다짐했다. 아버지!
영식이는 기필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 김영식 이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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