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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서양사 > 서양중세사
· ISBN : 9788991221611
· 쪽수 : 672쪽
책 소개
목차
1장 초강대국들
2장 “아랍인들이 오고 있다!”
3장 지하드!
4장 칼리프들의 권력 투쟁과 비틀거리는 지하드
5장 711년
6장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의 유럽
7장 푸아티에 전투의 신화
8장 우마이야 왕조의 흥망성쇠
9장 교황 구출
10장 무력과 신앙의 제국
11장 카롤링거 왕조의 지하드: 론세스바예스와 삭소니
12장 대모스크
13장 최초의 유럽 문화
14장 절묘하고 위험스러운 균형
15장 불균형, 펠라요의 복수
16장 전파된 지식, 거부당한 합리주의: 이븐 루슈드와 무사 이븐 마이문
리뷰
책속에서
푸아티에 승리에 대한 서로 다른 역사 해석
대부분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하지만 푸아티에 전투에서의 ‘승리’는 진정한 의미의 승리라고 볼 수 있을지 망설여진다. 왜냐하면 푸아티에에서의 패배가 다른 측면에서의 승리를 가져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유럽이 당시 무슬림 세계 제국에 편입되었더라면, 유럽인들이 13세기에 가서야 겨우 달성했던 경제적, 과학적, 문화적 수준을 3세기나 앞당길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역사 해석은 정반대의 입장을 취해왔다. 두 세계 질서의 경쟁에서 만약 이슬람이 승리했을 경우,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에 대해 에드워드 기번이 한 유명한 발언은 후대 역사가들의 가치 판단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 “아마도 지금쯤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코란의 해석을 강의하고 있을 것이고, 대학 예배당의 제단은 할례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호메트 계시의 신성함과 진리를 증명할 것이다.”
유럽의 문이 아랍인들에게 열린 진짜 이유
아랍인과 스페인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전설에 따르면 이슬람에게 유럽의 문을 열어준 계기는 지정학적 사정이 아니었다. 서고트 왕국의 찬탈자인 깡패 로데리크에게 능욕당한 어린 딸의 복수를 염원하는 귀족 아버지의 원한이 그 문을 열었다. 이 전설적 자료들은 이렇게 말한다. 세우타 지사는 그의 딸 플로린다를 서고트 왕국의 궁정 숙녀로 교육시키기 위해 톨레도로 보냈다. 그러나 그녀가 궁정에 도착한 직후 늙은 위티자 왕은 사망했고 이 처녀는 왕위 찬탈자 로데리크의 눈에 들게 되었다. 성공적인 바스크족 정벌에서 막 돌아온 로데리크는 자부심과 정력이 넘쳐흘렀고, 그리하여 플로린다를 강간하여 임신시켰다.……복수심에 불타는 세우타 지사는 아킬라 대공(위티자 왕의 맏아들), 탕헤르 지사 타리크 등과 연합하여 반역을 계획하게 되었다. 이베리아 정복을 가장 이른 시기에 기록한 아랍 연대기 작가 이븐 아브드 알-하캄은 훌리안 백작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이 무도한 자를 복수하고 징벌하려면 이 자에게 아랍 군대를 보내는 수밖에 없다.”
종교적 관용을 표방하는 무슬림 사회
베르베르인의 인내심이 점점 고갈되어가는 동안 알-안달루스의 통치자들은 시민 다원화의 정책을 추구했다. 아우구스투스의 로마 시대 이후에 서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관습, 신앙, 제도의 자유를 허용했다. 이 다원화 정책이 성공하려면 먼저 아랍인 귀족들이 단결해야 하고, 베르베르인과 그 밖에 열등 가문의 무슬림들이 아랍 귀족들에게 복종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했다. 위대한 예멘 부족이 그 땅에서 안전하다고 느끼고 코란에 공식적으로 도전하지만 않는다면 딤미들은 마음대로 행동할 수가 있었다. 딤미의 종교와 사회제도는 존중되었다. 대다수 가톨릭 신자들은 개종의 압력을 받지 않았고, 대부분의 신자들은 무슬림 군대에 정복당한 이후 몇 십 년 동안 교회에 충실하게 다녔다. 하지만 히스파니아 문화와 아랍의 영향을 받은 언어 등은 이른바 ‘모즈아랍의 특징’을 띠기 시작했다. 정복 직후 여러 해 동안 정복자와 피정복자가 로망스어로 말했지만 곧 아랍어가 공용어로 등장했다. 일단의 무슬림 이맘들은 상업, 정부, 법률, 학문의 언어로서 아랍어를 강제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