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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타키투스의 역사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서양사 > 로마사
· ISBN : 9788935679058
· 쪽수 : 460쪽
· 출판일 : 2025-08-28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서양사 > 로마사
· ISBN : 9788935679058
· 쪽수 : 460쪽
· 출판일 : 2025-08-28
책 소개
내전과 동시에 바타비족과 유다이아인의 반란, 갈리아의 동요, 브리타니아의 저항이 이어졌다.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파괴되었고 로마는 네로 대화재 이후 다시 불탔다. 타키투스는 이런 격동을 냉정하면서도 서정적으로 엮어낸다.
로마 내부의 분열과 외부의 도전, 제국을 흔든 내전
군중의 천박함과 권력자의 오만을 꿰뚫는 타키투스의 기록
고대 로마의 역사가이자 웅변가, 정치가였던 타키투스는 예리한 분석과 깊은 통찰로 시대를 기록한 위대한 문필가다.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그의 글은 시대상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권력자와 민중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로마 제정기의 혼돈을 기록한 타키투스의 대표작 『타키투스의 역사』(이하 『역사』)가 한길그레이트북스 시리즈로 출간된다.
타키투스의 대표작 『역사』는 원래 14권으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제1권부터 제5권의 첫머리까지만 남아 있다. 이 짧은 분량으로 『역사』는 로마 내전기의 비극과 제국 전역을 뒤흔든 격변을 담아냈다.
타키투스가 기록한 것은 69년과 70년, 이른바 ‘네 황제의 해’라 불린 내전기다. 네로의 자살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가 끝난 뒤, 갈바-오토-비텔리우스-베스파시아누스가 차례로 로마를 점령하고 황제 자리에 올랐다. 그 과정에서 로마제국 전역은 피로 물들었다. 내전과 동시에 바타비족과 유다이아인의 반란, 갈리아의 동요, 브리타니아의 저항이 이어졌다.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파괴되었고 로마는 네로 대화재 이후 다시 불탔다. 타키투스는 이런 격동을 냉정하면서도 서정적으로 엮어낸다.
세 번의 내전, 그 이상의 외환이 일어난 ‘네 황제의 해’
자결한 네로의 뒤를 이어 갈바가 권좌에 올랐다. 히스파니아 총독인 갈바는 원로원과 군대 모두의 지지를 등에 업고 집권했지만 지나친 인색함으로 민심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각지의 군단은 충성 맹세를 거부했다. 결국 권력을 갈구하던 오토의 반란으로 갈바는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갈바를 제거한 오토는 민심을 수습해 황제로 등극했으나, 그의 군대는 비텔리우스가 이끄는 게르마니아 군단에게 패한다. 오토는 더 이상의 내전을 막겠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타키투스는 오토가 ‘가장 수치스러운 행동과 또 다른 영예로운 행동으로 불명예만큼이나 큰 명성을 얻었다’고 서술했다.
뒤이어 로마에 입성한 비텔리우스는 네로를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비텔리우스는 오토의 편에 선 이들을 잔혹하게 숙청하고, 네로보다 더한 향락에 빠져 국정을 파탄시켰다. 그러나 동방 속주에서 유다이아 전쟁에 몰두하던 베스파시아누스가 로마로 행군하면서 비텔리우스의 시대는 끝났다. 로마가 점령되고 병사들은 궁전에 홀로 숨어 있던 비텔리우스를 끌어내 로마 거리에서 조리돌리고 처형했다.
마지막으로 베스파시아누스가 권력을 잡고 왕조를 세웠다. 『역사』는 그의 군대가 비텔리우스군과 충돌한 베드리아쿰 전투를 상세하게 묘사한다. 전투에서 패배한 비텔리우스군은 북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대도시 크레모나로 피신해 농성했으며, 성을 함락한 베스파시아누스파 군대는 이 도시를 불태우고 주민을 학살했다. 내전의 참혹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변방으로 번진 제국의 균열
“옛날 옛적에 갈리아인이 로마시를 점령했지만, 유피테르의 거처는 무사했고 제국은 존속했다. 하지만 이 숙명적인 화재는 하늘이 분노한 증표요, 인간 세계의 통치를 알프스산맥 너머의 주민에게 넘겨준다는 표시다.”
_제4권, 379쪽
로마의 내전에 용기를 얻은 바타비족 군대가 로마 군단을 이탈해 반란을 꾀했다. 바타비족은 게르마니아계 부족으로, 오랫동안 로마제국 군대에서 복무하며 신뢰를 쌓아 왔다. 바타비족의 지도자인 키빌리스는 로마군의 군사적 약점을 간파했고, 주변 게르마니아인과 갈리아인을 충동해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다. 바타비족 반란은 단순한 소요가 아니었다. 로마군을 여러 차례 무너뜨리고 제국 서방 국경선을 사실상 붕괴시킨 사건이었다. 로마군 내부에서도 변절과 배반이 속출했으며, 로마는 내전에 몰두하느라 즉각 대응하지 못했다.
66년부터 이어진 유다이아 전쟁은 동방 속주에서 가장 치열한 반란이었다. 유다이아인은 로마 총독의 억압을 불씨로 봉기를 일으켰고, 로마는 이를 토벌하기 위해 베스파시아누스를 파견했다. 그가 황제로 추대되어 로마로 향한 뒤에는 그의 아들 티투스가 전쟁을 이어갔다. 타키투스는 『역사』에서 유다이아인의 역사와 독특한 종교적 전례, 예루살렘 성곽의 방비까지 세밀하게 묘사했다.
정치와 권력, 역사의 본질을 묻는 정치 드라마
“군중은 싸우는 병사들 옆에 구경꾼으로 서 있었고, 경기장에서 게임이 벌어질 때처럼 함성과 갈채로 이편저편을 격려하곤 했다. 어느 한편이 무너져 병사들이 가게들로 숨거나 어떤 집으로 도주할 경우 군중은 그들을 끌어내 살해할 것을 요구했다.”
_제3권, 314쪽
타키투스는 역사가라면 권력에 대한 아첨이나 반항심을 버려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이 베스파시아누스의 은혜로 공직에 진출했다고 고백하면서도, 내전의 승리자조차 예리한 비판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권력자의 오만함과 민중의 천박함, 권력투쟁의 민낯이 날카로운 문체 속에 숨김없이 드러난다.
『역사』는 단순한 전쟁 기록이 아니라 권력의 부침과 인간 군상의 어두운 단면, 제국의 중심과 변방이 얽혀 빚어낸 정치적 드라마를 담았다. 타키투스는 네르바와 트라야누스 치세를 “드물게 복된 시절”이라고 부르면서도 인간과 권력에 대한 비관을 숨기지 않았다.
『역사』는 고대 로마의 한 시기를 넘어 권력과 군중, 제국의 운명을 동시에 생각하게 한다. 속주 군단들이 황제를 만드는 새로운 정치 지형, 변방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반란, 로마 내부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은 오늘날 세계사의 다양한 정치적 혼란과 겹쳐 읽힌다. 제국의 내부와 외부가 동시에 약화되는 모습은 세계의 변방이 그저 조용한 주변부가 아님을 드러낸다. 강대국의 번영은 내부의 분열 혹은 외부의 도전으로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타키투스는 시대의 증인이자 불편부당한 역사가로서 정치와 권력, 역사의 본질을 묻는다.
군중의 천박함과 권력자의 오만을 꿰뚫는 타키투스의 기록
고대 로마의 역사가이자 웅변가, 정치가였던 타키투스는 예리한 분석과 깊은 통찰로 시대를 기록한 위대한 문필가다.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그의 글은 시대상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권력자와 민중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로마 제정기의 혼돈을 기록한 타키투스의 대표작 『타키투스의 역사』(이하 『역사』)가 한길그레이트북스 시리즈로 출간된다.
타키투스의 대표작 『역사』는 원래 14권으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제1권부터 제5권의 첫머리까지만 남아 있다. 이 짧은 분량으로 『역사』는 로마 내전기의 비극과 제국 전역을 뒤흔든 격변을 담아냈다.
타키투스가 기록한 것은 69년과 70년, 이른바 ‘네 황제의 해’라 불린 내전기다. 네로의 자살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가 끝난 뒤, 갈바-오토-비텔리우스-베스파시아누스가 차례로 로마를 점령하고 황제 자리에 올랐다. 그 과정에서 로마제국 전역은 피로 물들었다. 내전과 동시에 바타비족과 유다이아인의 반란, 갈리아의 동요, 브리타니아의 저항이 이어졌다.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파괴되었고 로마는 네로 대화재 이후 다시 불탔다. 타키투스는 이런 격동을 냉정하면서도 서정적으로 엮어낸다.
세 번의 내전, 그 이상의 외환이 일어난 ‘네 황제의 해’
자결한 네로의 뒤를 이어 갈바가 권좌에 올랐다. 히스파니아 총독인 갈바는 원로원과 군대 모두의 지지를 등에 업고 집권했지만 지나친 인색함으로 민심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각지의 군단은 충성 맹세를 거부했다. 결국 권력을 갈구하던 오토의 반란으로 갈바는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갈바를 제거한 오토는 민심을 수습해 황제로 등극했으나, 그의 군대는 비텔리우스가 이끄는 게르마니아 군단에게 패한다. 오토는 더 이상의 내전을 막겠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타키투스는 오토가 ‘가장 수치스러운 행동과 또 다른 영예로운 행동으로 불명예만큼이나 큰 명성을 얻었다’고 서술했다.
뒤이어 로마에 입성한 비텔리우스는 네로를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비텔리우스는 오토의 편에 선 이들을 잔혹하게 숙청하고, 네로보다 더한 향락에 빠져 국정을 파탄시켰다. 그러나 동방 속주에서 유다이아 전쟁에 몰두하던 베스파시아누스가 로마로 행군하면서 비텔리우스의 시대는 끝났다. 로마가 점령되고 병사들은 궁전에 홀로 숨어 있던 비텔리우스를 끌어내 로마 거리에서 조리돌리고 처형했다.
마지막으로 베스파시아누스가 권력을 잡고 왕조를 세웠다. 『역사』는 그의 군대가 비텔리우스군과 충돌한 베드리아쿰 전투를 상세하게 묘사한다. 전투에서 패배한 비텔리우스군은 북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대도시 크레모나로 피신해 농성했으며, 성을 함락한 베스파시아누스파 군대는 이 도시를 불태우고 주민을 학살했다. 내전의 참혹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변방으로 번진 제국의 균열
“옛날 옛적에 갈리아인이 로마시를 점령했지만, 유피테르의 거처는 무사했고 제국은 존속했다. 하지만 이 숙명적인 화재는 하늘이 분노한 증표요, 인간 세계의 통치를 알프스산맥 너머의 주민에게 넘겨준다는 표시다.”
_제4권, 379쪽
로마의 내전에 용기를 얻은 바타비족 군대가 로마 군단을 이탈해 반란을 꾀했다. 바타비족은 게르마니아계 부족으로, 오랫동안 로마제국 군대에서 복무하며 신뢰를 쌓아 왔다. 바타비족의 지도자인 키빌리스는 로마군의 군사적 약점을 간파했고, 주변 게르마니아인과 갈리아인을 충동해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다. 바타비족 반란은 단순한 소요가 아니었다. 로마군을 여러 차례 무너뜨리고 제국 서방 국경선을 사실상 붕괴시킨 사건이었다. 로마군 내부에서도 변절과 배반이 속출했으며, 로마는 내전에 몰두하느라 즉각 대응하지 못했다.
66년부터 이어진 유다이아 전쟁은 동방 속주에서 가장 치열한 반란이었다. 유다이아인은 로마 총독의 억압을 불씨로 봉기를 일으켰고, 로마는 이를 토벌하기 위해 베스파시아누스를 파견했다. 그가 황제로 추대되어 로마로 향한 뒤에는 그의 아들 티투스가 전쟁을 이어갔다. 타키투스는 『역사』에서 유다이아인의 역사와 독특한 종교적 전례, 예루살렘 성곽의 방비까지 세밀하게 묘사했다.
정치와 권력, 역사의 본질을 묻는 정치 드라마
“군중은 싸우는 병사들 옆에 구경꾼으로 서 있었고, 경기장에서 게임이 벌어질 때처럼 함성과 갈채로 이편저편을 격려하곤 했다. 어느 한편이 무너져 병사들이 가게들로 숨거나 어떤 집으로 도주할 경우 군중은 그들을 끌어내 살해할 것을 요구했다.”
_제3권, 314쪽
타키투스는 역사가라면 권력에 대한 아첨이나 반항심을 버려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이 베스파시아누스의 은혜로 공직에 진출했다고 고백하면서도, 내전의 승리자조차 예리한 비판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권력자의 오만함과 민중의 천박함, 권력투쟁의 민낯이 날카로운 문체 속에 숨김없이 드러난다.
『역사』는 단순한 전쟁 기록이 아니라 권력의 부침과 인간 군상의 어두운 단면, 제국의 중심과 변방이 얽혀 빚어낸 정치적 드라마를 담았다. 타키투스는 네르바와 트라야누스 치세를 “드물게 복된 시절”이라고 부르면서도 인간과 권력에 대한 비관을 숨기지 않았다.
『역사』는 고대 로마의 한 시기를 넘어 권력과 군중, 제국의 운명을 동시에 생각하게 한다. 속주 군단들이 황제를 만드는 새로운 정치 지형, 변방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반란, 로마 내부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은 오늘날 세계사의 다양한 정치적 혼란과 겹쳐 읽힌다. 제국의 내부와 외부가 동시에 약화되는 모습은 세계의 변방이 그저 조용한 주변부가 아님을 드러낸다. 강대국의 번영은 내부의 분열 혹은 외부의 도전으로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타키투스는 시대의 증인이자 불편부당한 역사가로서 정치와 권력, 역사의 본질을 묻는다.
책속에서
내가 여기서 다루려는 것은 재난이 많았고, 전란으로 참혹했으며, 내전으로 반목하고, 평화 속에서도 공포가 만연했던 시절의 역사다. 네 명의 원수가 칼로 목숨을 잃었으며, 세 번의 내전을 치렀고, 외적과 싸운 것은 더 여러 차례였다.
“전우들이여, 제가 어떤 자격으로 여러분 앞에 나서는지는 말할 수 없군요. 여러분이 저를 황제로 지명했으니 민간인 신분이라 할 수도 없고, 한편 다른 사람이 황제로 군림하고 있으니 황제라 할 수도 없습니다. 군영에 있는 제가 로마 인민의 황제인지 아니면 인민의 적인지가 분명치 않은 한, 여러분의 처지도 불확실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저들은 나와 여러분을 함께 처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지요?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합니다.”
갈바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그를 증오한 사람, 찬양한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로 전해진다. 어떤 설에 따르면, 갈바는 목숨을 구걸하면서 “대체 내가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이러는가?”라 묻고, “살려주면 며칠 후 사례를 하겠다며 애원했다”고 한다. 한편 대다수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스스로 자객에 목을 들이대며 이렇게 말했다 한다.
“자, 내리쳐라. 그것이 국가를 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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