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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근세사(원~ 아편전쟁)
· ISBN : 9788991274440
· 쪽수 : 464쪽
책 소개
목차
개정판 서문
총서
서론
ㆍ청 왕조의 흥기
- 자금성의 주인이 되기까지
ㆍ네덜란드 세력을 축출하다
- 정성공, 대만을 수복하다
ㆍ뛰어난 재능과 원대한 계략
- 포부가 컸던 강희제
ㆍ변경의 경영과 정책
- 국경지역에 대한 청 왕조 전기의 조치
ㆍ봉건정치의 사상탄압
- 문자옥과 『사고전서四庫全書』
ㆍ학술연구에 공헌한 건가학파
- 고증학의 득과 실
ㆍ건륭 시대 태평성대의 배후
- 전성기에서 쇠퇴기로 전환
ㆍ화신은 쓰러지고, 가경제는 포식하다
- 청 왕조 중기의 탐관오리
ㆍ팔기병
- 늘 이기는 군대가 기생충으로 전락하다
ㆍ우민화의 도구로 전락
- 팔고문 중심의 과거제
ㆍ우물 안 개구리가 되다
- 쇄국정책의 부작용
ㆍ홍양길의 우려
- 인구문제와 사회갈등
ㆍ궁하면 개혁을 부른다
- 가경·도광 시대의 경세파
ㆍ눈을 떠 세계를 보라
- 위원의 『해국도지海國圖志』
ㆍ서양을 배우자
- 부국강병을 위한 시도
ㆍ중체서용中體西用
- 조기개량파의 개혁방향
ㆍ신학문의 발전과정
- 명청 시대의 ‘서학동점기’
ㆍ구국의 물결
- 무술변법과 계몽운동
ㆍ서양을 타산지석으로 삼다
- 엄복과 『천연론天演論』
ㆍ신세기를 향하여
- 간난의 역정
역사 연대표
책속에서
대만성에서 고군분투하던 코예트는 성의 한구석만 남더라도 그것에 의지해 끝까지 저항하고 싶었다. 그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동인도회사의 본부인 자바의 바타비아에 주둔하고 있던 네덜란드 군대에 지원군 급파를 요청하는 한편, 정성공의 군대에 대표단을 보내 투항협상을 벌이면서 지원군이 올 시간을 벌기로 했다. 그는 정성공에게 매년 약 2만 냥의 세금 및 이에 해당하는 토산물의 상납을 퇴각조건으로 제시했으며, 철군 시 군사 위로금으로 은 10만 냥을 추가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정성공은 이런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코예트는 대만성만은 네덜란드가 통치하고 네덜란드인들의 출입 자유를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이 또한 정성공은 거절했다.
청 정부 입장에서 보면 쇄국정책은 청나라 현실정치의 필요에 따른 것이다. 소위 현실정치의 필요란 실제 아주 간단하다. 왜냐하면 청 왕조는 소수민족이 대민족을 통치한 하나의 정권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계급압박 이외에도 노골적으로 민족을 압박하는 경향이 있었다. 청대 초기의 ‘해내 이동 명령’에서 시작하여 이후 ‘항해에 관한 금령’에 이르기까지 모든 쇄국정책은 발생 가능한 한족의 반청투쟁을 방비하기 위함이었다. 한족의 인구가 대단히 많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방비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한족이 외래의 이색 세력과 접촉한다면 반정부 세력이 되고, 새로운 소요가 야기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1892년, 손중산은 우수한 성적으로 홍콩의 퀸 메리 병원 부설 서양의학학교인 서의서원西醫書院(홍콩대학교 의학부의 전신)을 졸업했다. 졸업 후 마카오와 광주에서 의료업에 종사했다. 그러나 그는 국가와 백성의 운명을 걱정하는 열혈남아였기에 날로 쇠약해져 서구열강들에게 짓밟히는 중국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그의 청년기는 바로 유신사상이 성행한 자산계급개량파의 활약기였다. 손중산 역시 유신개량사상을 선뜻 받아들였다. 그는 청 정부 내에도 선각자들이 나와 위로부터의 개량을 실시하여 일본의 메이지유신처럼 서양의 법제 등을 본받아 실시하여 자강을 강구하길 희망했다. 1894년 1월 손중산은 천진으로 올라가 이홍장에게 서신을 올려 “사람은 그 재능을 다 발휘할 수 있어야 하고, 토지는 그 이익을 다 창출할 수 있어야 하며, 물건은 그 유용성을 다 발휘할 수 있어야 하고, 재화는 그 유통이 막힘없어야 한다.”는 네 개 조항의 개혁안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