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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중국소설
· ISBN : 9788991508545
· 쪽수 : 208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사천四川에서 호남湖南으로 가는 길에 관가에서 닦은 도로 하나가 동쪽으로 나 있다. 이 길을 따라 가노라면 호남 서쪽 경계 부근에 다동茶?이라 불리는 작은 산성이 나타난다. 거기에 작은 강이 하나 흘러 지나가는데 강가에는 작은 흰 탑이 세워져 있고 그 탑 밑으로 외딴 인가가 한 채 보인다. 이 집에 한 노인과 여자애 그리고 누렁 개 한 마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본문 15쪽.
바람과 햇빛 속에서 취취는 커갔다. 볕에 그을은 피부는 가무잡잡하고 푸른 산과 푸른 물만을 보아온 두 눈은 수정처럼 맑았다. 자연이 길러내고 가르쳤는지라 그녀는 순진하고 발랄하며 작고 귀여운 들짐승같았다. 마냥 착하기만 해서 산마루에 서 있는 아기 사슴처럼 세상 잔인한 일들은 생각조차 해본 적 없고, 근심을 해본 적도, 화를 내본 적도 없었다. 종종 나룻배에서 낯선 사람이 자기를 바라보기라도 할 양이면 맑은 눈망울로 그를 빤히 쳐다보다 금방이라도 깊은 산 속으로 도망갈 듯한 자세를 취하곤 했다. 그러다 손님에게 별다른 나쁜 마음이 없다는 걸 알고 나면 다시 태연히 물가에서 장난치며 놀았다. ―본문 19~20쪽.
아버지는 두 아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큰아들은 모든 면에서 자기와 닮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랑은 둘째에게 점점 더 갔다. 이런 은근한 속마음 때문에 그는 맏이를 천보天保라 이름짓고 둘째를 나송儺送이라 이름지었다. 그 뜻으로 말하면, 하늘이 보호하는 사람은 인간사에 있어서 때로 안 맞아 삐걱거릴 수도 있지만, 이곳 풍속에 따라 나신儺神이 보낸 사람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나송은 매우 수려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다동의 뱃사람들은 그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악운岳云’이라는 별명을 달아주었다. 비록 누구도 제 눈으로 직접 악운을 본적은 없지만 대개 연극에 나오는 청년 악운과 비슷한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본문 37~38쪽.
“둘째 도련님이 어찌하여 제가 여기 강가에 있는 걸 아셔요?”
취취가 묻자 그 사나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강에서 오리를 잡아가지고 와서 알리던데. 부두에서 보았다면서. 그리고 호의로 집에 와서 할아버지를 기다리라 했다가 되레 욕까지 먹었다고 하던데.”
취취는 놀란 소리로 물었다.
“그 둘째 도련님이 누구예요?”
사나이가 놀라 도로 물었다.
“둘째 도련님도 모르니? 강가 거리의 나송 도련님 말이야, 바로 악운이라는 사람이지. 그분이 나더러 너를 집으로 데려다주라고 했는데!” ―본문 56쪽.
취취는 하루하루 몰라보게 커가고 있었다. 무의식중에 뭘 말하고서는 얼굴까지 빨갛게 물들었다. 시간은 그녀를 자라게 할 뿐 아니라 얼른 크라고 재촉하는 듯했다. 마치 다른 어떤 일에 책임을 지게 하려는 듯. 취취는 얼굴에 분을 바른 새색시를 보는 것이 즐겁고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 들꽃을 꺾어 머리에 꽂거나 노래를 듣는 것이 기분 좋았다. 다동 사람들의 노래 속 애절한 부분의 의미도 이제 알게 되었다. 그녀는 가끔 외로운 듯 바위 위에 홀로 앉아 구름이나 별을 바라보곤 했다. ―본문 74~75쪽.
취취는 이 낯선 사람의 호의가 뭔지 잘 알 수 없었다. 왜 꼭 자기 집에 가서 구경하라 하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나룻배를 돌렸다. 집 쪽 기슭에 배를 댄 후 문득 보니 그 사람이 강 건너 작은 산에서 누굴 기다리듯 떠나지 않고 있었다. 취취는 집으로 돌아와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본문 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