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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91508736
· 쪽수 : 176쪽
· 출판일 : 2010-11-26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본디부터 선량한 이 축제일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우선 ‘진짜’ 크리스마스를 경험해봐야 한다. 그러고 나면 크리스마스는 예사로운 휴일이나 흥청망청하는 쇼핑 시즌 그 이상의 것이 된다. 이날은 여러분의 일부, 그리고 타인의 행복을 내 행복보다 앞서 챙기려는 하나의 열망이 된다. 한마디로, 종이봉투paper bag다.
종이봉투라고? 그렇다. 하지만 아무 종이봉투나 다 갖다붙일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자. 오래 부대끼고, 주름지고, 손때 묻은 종이봉투만 가능하다. 그 역사를 모른다면 어제 나온 쓰레기와 함께 내다버리고 말 종이봉투 말이다. 너무 더럽고 초라해서 사용할 용도가 딱 하나밖에 남지 않은, 그러니까 우리가 성탄을 축하해야 할 이유를 오랫동안 되새기게 해줄 대체 불가능한 기념물로서만 기능할 종이봉투.
진짜 산타가 아닐지라도 내가 이뤄놓은 훌륭한 성취물을 그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되어 기뻤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나는 모든 줄을 다 채워넣었던 것이다. 그도 내 역작을 높이 평가할 거라고 생각했다. 산타는 종이를 가져가더니 몇 번이고 앞뒤를 뒤집어보았다.
“이런 세상에.” 그의 목소리에 슬픈 기색이 묻어났다. 반짝이던 눈빛이 눈에 띄게 흐려졌다. “이것 참. 이걸로는 절대 안 돼.” 처음엔 그의 말을 똑바로 알아들은 건지 내 귀를 의심했다. 다리 없는 스코틀랜드 출신 가짜 산타가 내 크리스마스 목록을 비판하고 있는 건가? 내가 그렇게 오랜 시간 공들인 것을? 세상에나, 어린이가 갖고 싶어할 만한 모든 것을 담은 이 포괄적인 목록에 대해 그가 어떻게 감히 흠을 잡을 수 있단 말인가?
“있잖아… 그러니까… 내가 뭔가를 가져왔어, 카트리나.” 내 손이 문지방을 넘어가자 나는 그렇게 말했다. 다섯손가락으로는 빨강과 하양 줄무늬의 화해 선물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다. “다른 사탕보다 훨씬 커…….” 내 말이 중간에서 뚝 잘렸다. 그리고 발도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지난번에 서 있던 그 자리에 벽을 등지고 선 카트리나가 보였다. 두루마리 휴지로 잠옷바지를 둘둘 감진 않았지만 머리에는 여전히 하얀 종이봉투를 뒤집어쓴 채였다.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