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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경제경영 > 기업 경영 > 경영 일반
· ISBN : 9788992162241
· 쪽수 : 492쪽
· 출판일 : 2010-05-20
책 소개
목차
Prologue
01 철학Medical Philosophy
의사는 환자의 희망이다
에피소드
환자의 희망을 앗아가는 말은 절대로 해서 안 된다
잘되는 병원보다 가치 있는 잘사는 인생
개업의에게 있어서의 사계절
버려야 성공한다?
-성공을 위해 버려야 할 7가지
부자 의사 가난한 의사
병원에는 아픈 사람이 온다
기본기에 충실하라
CEO 원장이 가져야 할 성공덕목
02 전략Medical Strategy
10년을 준비하는 전략의 틀을 짜자
에피소드
의사들이여, 10년 후를 대비하라
1등과 2등만이 존재하는 세상, 지역의 강자로 살아남자
성공하는 병원의 8가지 습관
위기의 의료업, 비상구 찾기
불확실한 미래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병원도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블루 오션 전략, 어떻게 의료산업에 적용할 것인가?
전략적 병원경영 어떻게 할 것인가?
03 재무Medical Finance
짱짱하고 탄탄한 재무구조를 만들자
에피소드
의사에게 적합한 재테크
원가에 기초한 경영
수익이 되는 프로젝트를 어떻게 판별할 것인가?
내 병원의 가치 내가 올바로 평가하자
얼어붙는 의료환경에 대처하는 4가지 원칙
병원이 망하는 5가지 이유
집 샀으면 주식 하지 마라
돈의 심리학
04 정책Medical Policy
의료정책을 뒤집어 똑바로 보자
에피소드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10가지 오해
누구를 위한 영리병원인가?
노예계약인 당연지정제 폐지하자
영리병원 활성화를 결정하는 중요 변수
특진비, 상급병실료, 촌지 그리고 의료 암시장
병원경영 지원회사에 대한 전망
해외환자 유치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
경기가 좋아지면 병원도 저절로 잘될까
05 마케팅Medical Marketing
의료 마케팅에 새로운 사고를 적용하자
에피소드
마케팅할 때 고려할 8가지
마케팅,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나에게 맞는 입지를 잡아라
탄탄한 마케팅 피라미드를 구축하자
병원 어떻게 홍보할 것인가?
-인터넷 홍보와 방송홍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법
진료비를 정할 때 고려할 8가지
실버 소비자를 잡기 위한 8가지 마케팅 법칙
병원도 영업이다
06 의료서비스Medical Service
환자를 감동시키는 의료시스템을 만들자
에피소드
환자를 덜 지겹게 하는 방법: 기다림의 심리학
어떻게 병원 서비스의 질을 높여 진정 고객을 만족시킬 것인가?
서비스 수익 사슬에서 바라본 의료경영
환자는 환자고 고객은 고객이다
의료서비스의 8가지 특성과 어려움
서비스 수요와 공급을 맞추는 방법
어떻게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인가?
의료서비스 클레임에 대처하는 요령
07 인력관리Human Resources Management
관리보다 열정을 키워주는 CEO가 되자
에피소드
인센티브 제도 시행 때 고려할 10가지
직원들이 열의를 가지고 일하는 의료기관을 만드는 원칙
직원을 채용할 때 고려해야 10가지
인센티브의 구성과 운영
현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병원 인사관리 원칙 10가지
급여 운영의 세 병원 사례
의료기관 내에서의 전문경영인의 역할
공동개원을 할 때 고려해야 할 것들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환자의 희망을 앗아가는 말은 절대로 해서 안 된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 시절에 최고의 브레인이었던 맥나마라 장관을 다룬 〈포그 오브 워〉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내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 대사가 있다. 그는 정치가로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Never say never”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아니다.”, “안 된다”는 극단적인 표현은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의사는 환자의 희망을 앗아가는 말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예전에 유명한 외과 계열 교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분은 환자와 그 가족이 혹시 수술을 안 하고 조금 기다리면 안 될까 물어보면 다소 극단적으로 반응하는 버릇이 있었다. 교수는 환자에게 “수술 안 하면 죽어”라고 너무나 단호하고 무심하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환자와 가족이 울기라도 하면 여전히 무표정하게, “울 필요 없어. 수술하면 살 수 있다니까”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그 교수의 판단은 옳을 것이다. 의사의 입장에서 그 수술을 하면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 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수술하면 되는데 어떻게 수술을 하지 않고 나을 수 있을까 하는 환자와 가족의 비현실적인 기대가 잘못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환자와 그 가족은 대수술을 한다는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없고, 가급적 수술하지 않고 잘 지냈으면 하고 바랐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환자는 먹고 싶은 것도 참고, 운동도 하면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외과 교수는 그러한 그들의 노력과 기대를 “수술 안 하면 죽어”라는 한마디로 무자비하게 무너뜨려야 했을까?
일단은 환자와 부인이 병을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대해 공감해 주고, 수술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극단적인 말을 하기 전에, 수술을 안 했을 때의 생존율과 수술했을 때의 생존율을 비교해서 수술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그리고 수술의 위험성을 고려하더라도 수술을 하는 것이 매우 유리하다고 설명하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이러한 자세한 설명은 레지던트의 몫이기 때문에 교수는 그냥 “수술 안 하면 죽어”라고 말한 것일까? 사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으니까 수술을 해도 죽는 것이고, 수술을 안 해도 죽는 것이 아닌가?
이 세상에서 환자가 100% 확실하게 일정 기간 안에 죽는 경우는 없다. 췌장암같이 사망률이 높은 암도 5년 생존율이 0%는 아니다. 폐암 말기 환자의 5년 생존율도 0%는 아니다. 기적이 아니더라도 운이 좋은 경우도 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란 예상할 수 없다. 만약에 5년 생존율이 10%인 말기암에 걸렸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그 환자가 한 달 후에 암과 상관없는 다른 사고로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살 확률이 희박합니다”고 의사에게 이야기들은 환자는 하루하루 죽을 날만 기다린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고로 죽게 된다. 의사에게 “10%의 확률이 있습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맙시다”고 이야기를 들은 환자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가족과 함께 노력하다가 죽는다. 두 죽음은 같은 죽음일 수도 있지만 또한 다른 죽음일 수도 있다.
환자들이 오랜 암 투병 끝에 사망한 후 우울증에 걸려 가족들이 내게 오는 경우가 간간이 있다. 그분들이 가장 마음 아팠던 순간은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드릴 것이 없습니다. 집으로 가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라고 한다. 의사들은 말기암 환자들이 굿을 하거나 신비의 명약을 찾아 헤매거나 입증되지 않는 식이요법을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이라도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다.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서는 단계와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까지는 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게 된다. 그런 환자와 가족들의 마음을 의사가 아닌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의사의 입장에서는 암조직을 완전히 제거해야 치유라고 생각한다. 의사의 입장에서는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된 환자가 완전히 걷게 되어야 치유라고 생각한다. 단지 고통만 덜어주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고통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의사가 앞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이 진통제를 주는 것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설령 그런 순간이 오더라도 의사들이 어떻게 환자를 대하느냐는 여전히 중요하다. 의사들은 진통제는 누구나 다 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누가 주거나 똑같다고 여긴다. 하지만 같은 진통제라도 어떤 태도로 의사가 진찰을 하고 처방을 하느냐에 따라서 더 잘 들을 수도 있고 더 안 들을 수도 있다. 진통제라도 처방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도 의사로서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같은 진통제라도 의사가 생각하는 진통제와 환자가 받아들이는 진통제는 그 의미가 천지차이로 다르다. 의사에게는 통증을 줄여주는 화학물질에 불과하지만 환자에게는 고통을 줄여주는 약인 것이다. 전문의로서 도울 수 없으면, 의사로서 환자를 돕고, 의사로서 환자를 도울 수 없을 때에는 한 인간으로서 환자를 도울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가 이러한 마음으로 환자를 돕는다면 말기암 환자가 굿을 하거나 신비의 명약을 찾거나 입증되지 않는 식이요법을 하는 대신, 의사에게 올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포기하지 않아야지, 그들도 다른 곳을 찾지 않는다.
요새 의료소송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의사들은 환자에게 무조건 최악의 상황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치료가 잘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가 만약에 안 좋은 상황이 생기면 환자들이 소송을 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악의 상황만 이야기하면 나름대로 설명의무를 다했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실제 사례들을 보면 꼭 그것만도 아닌 것 같다. 공감과 따뜻함이 결여된 상태에서 최악의 상황을 얘기하면 그것은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큰 상처가 된다. 환자와 그 가족들은 의사가 치료는 해볼 생각도 않고 환자를 이미 포기했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런 경우 안 좋은 결과가 생기면 가족들은 역으로 최악의 상태인데 최선의 진료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단지 냉정하게 최악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으로는 의료사고를 막지 못한다. 설명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시술의 위험성, 필요성, 예후를 객관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하지만 환자로부터 희망을 앗아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가 남에게 하는 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스스로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정상인도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리 내어 혼잣말을 하게 된다. 평상시에도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언어의 형태건, 감정의 형태건, 사고의 형태건 메시지를 보낸다. 마음속으로 말을 건다. 따라서 스스로에게도 희망을 앗아가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이제 끝장이다.”, “이제 망했다.”, “끝이 안 보여.”, “지겨워 죽겠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이런 메시지를 자기 자신에게 계속 보내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길 리 없다. 그런 사람은 타인에게도 희망을 앗아가는 말을 하게 된다. 우리 자신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계속 주는 것이 행운의 시작이다. 내가 치료를 하면 환자가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치료를 해야 환자의 상태가 호전될 것이다. 환자가 좋아져야 병원도 잘되는 것이다.
잘되는 병원보다
가치 있는 잘사는 인생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의사하기 힘들다는 한탄뿐이다. 보험과를 하는 선생님들은 수가는 오르지 않고 삭감은 점점 많다. 게다가 시도때도없이 현지확인이다, 현지조사다 해서 병원을 수사하듯이 뒤져간다. 아무 일 없을 것처럼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니 몇 달 뒤에는 떡하니 영업정지다, 의사면허정지다, 행정조처가 날아온다. 그렇다고 비급여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니다. 청구를 하지 않으니까 공단, 심평원 눈치 볼 일은 없지만 가격을 올려본 것이 까마득한 옛날이라고 한다. 나름대로 가격을 정해놓지만 실제는 환자 개인별로 할인을 하는 것이 기본이다. 고소득 개인사업자를 조사한다면서 어느 정도 매출이 되는 비급여의료기관은 정기적인 세무조사는 기본으로 각오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금 의사는 너무 힘들어. 옛날 선생님들이 좋았어” 하는 푸념이 저절로 나온다.
그런데 지금보다 여건이 좋았던 옛날에 병원을 했던 의사들이라고 다 여유 있는 것도 아니다. 병원이 잘된다고 꼭 잘사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주위를 보면 병원이 크게 잘되는 것은 아닌데 잘사는 선생이 있는가 하면, 병원은 잘되는데 항상 돈에 쪼들려 사는 분들도 있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우선 많이 버는 만큼 많이 쓰게 마련이다. 병원이 잘되면 병원이 계속 돈을 잡아먹는다. 그러다 병원이 기울기 시작하면 투자금을 회수하기가 요원하다. 병원을 할수록 이것저것 재테크 차원에서 투자를 하면서 막상 현찰이 없어서 궁색해진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 잘되는 병원 못지않게 잘사는 인생이 중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레지던트 때에는 ‘전문의가 되어 봉직의만 되면 평생 돈 걱정 안 할 것’ 같다. 봉직의들은 잘되는 병원을 운영하는 개원의를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든다. 개업해서 자리만 잡으면 평생 돈 걱정 안 할 것 같다. 개업 초기에 환자가 없어 괴로울 때에는 이미 기반을 잡은 개업선배들이 부럽다. 환자들이 알아서 계속 찾아와 환자수가 늘어나는 병원 하나쯤 있으면 돈 걱정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많이 버는 사람이 돈 걱정도 많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는 스타일은 남을 많이 따라가는 스타일이다. 돈을 많이 벌어도 외제차 몰고, 비싼 집을 사고, 좋은 데서 골프를 치다 보면 그다지 여유가 없다. 그리고 사치처럼 인간을 옥죄는 것도 없다. 한번 사치에 물들기 시작하면 인생이 피곤해진다. 돈이 없어서 사치를 부릴 수 없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사치를 중단하면 사람들이 자신이 돈이 없다는 것을 눈치챌까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여유자금이 생기게 되면 재테크라는 명분으로 뭉텅이로 사치를 하게 된다. 필요 이상으로 넓은 집에 살면서 이자로 상당한 돈을 낭비한다. 하지만 집값이 오른다는 명목 아래 합리화한다. 그러나 그 집을 사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재테크가 아니라 이렇게 나는 큰집에 산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돈을 벌어도 빚은 갚지 않는다. 집을 살 때 대출 받은 돈을 갚는 대신 골프장 회원권을 사고 호텔 헬스 회원권을 산다. 나중에는 값이 오를 거라고 자신의 마음을 합리화한다. 그러다 매출이라도 감소하기 시작하면 불필요한 자산을 매각하고 아끼는 대신 주식이나 펀드 같은 위험자산에 투자한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사람에게는 뭔가 남아도는 것이 있으면 써버리고 싶은 본능이 있다. 불안한 것이다. 더군다나 저금리 시대는 투자의 시대라고 하면서 금융사들이 부추긴다.
잘되는 병원의 원장들은 심리적으로 정상에서 밀려날까 두려워 계속적으로 투자를 하게 된다. 해당 진료분야가 막 성장할 때에는 과감한 투자가 이익으로 회수된다. 하지만 성장이 주춤하게 되면서 환자가 줄기 시작하는 시점에는 아무리 투자를 해도 그것이 이익으로 회수되지 않는다. 과거 몇 년간 병원이 잘 나갈 때 번 돈을 가지고 빠져나가는 환자를 잡아보려고 계속 병원에 재투자하게 된다. 결국 병원이 돈 먹는 하마 꼴이 된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최신 의료기기도 사고 직원에게도 투자한다. 하지만 이미 기울기 시작하면 아무리 애를 써도 회복이 안 된다. 욱일승천의 기세가 있는 반면, 떨어지는 것은 날개가 없는 시점이 있는 것이다. 감을 잘 잡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노후대책을 겸해서 덜커덕 건물이라도 올렸다 일이 꼬이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다. 병원에 투자하느라 모아놓은 현찰은 하나도 없다. 잘되는 병원장보다 그 밑에서 일하는 봉직의가 호주머니가 더 두둑한 경우도 있다. 나중에 노년에 이르게 되면 잘되는 병원장이나 평생 봉직의로 일하다 은퇴한 의사나 큰 차이 없는 수도 있다. 지금은 세계경기가 혼동 속에 있고 대한민국의 고령화까지 겹치게 되는 언젠가는 모든 자산가치가 곤두박질치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돈보다 소중한 것이 점점 눈에 띄게 된다. 인생에는 병원을 해서 돈을 잘 버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들이 많다. 우선 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면 돈 많이 버는 의사들의 목소리는 작아지고 공부 잘하는 자식을 둔 의사들의 목소리가 커진다. 주위에서 자식을 의대에 보낸 이라도 있으면 그것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선 부자 부모들의 또 다른 사치인 고액과외가 기승을 부린다. 초등학교 아이에게 영어를 익히게 하려고 조기유학을 보낸다. 중고등학교 때도 과외에 엄청난 돈을 쓴다. 몇몇 극성인 사람들은 멀쩡한 집 놔두고 전세를 얻어서 대치동으로 이사도 간다. 하지만 조기유학을 해서 영어를 잘하게 되는 것이 대학입시에 얼마나 이득이 되는지는 객관적으로 쓰여진 논문은 거의 없다. 고액과외와 성적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무작위비교 이중맹검법randomized controlled double blind study’이 이루어진 예는 단 한 번도 없다. 외고나 과학고에 가야 좋은 대학에 간다고 믿는다. 하지만 중학교 졸업할 때 동일한 학력을 가진 학생들을 가지고 특목고에 진학을 했을 때와 일반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을 때 어느 쪽이 더 좋은 수능성적을 받는지에 대한 ‘무작위비교 이중맹검법’도 전무하다. 검증되지 않는 것에 돈을 퍼부으면서 사는 것이다. 게다가 공부 잘한 아이가 꼭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공부 잘해서 의대에 갔더라도 결혼을 하고 나서 매일 사네 안 사네 하면서 싸운다면 부모의 입장에서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자식이 잘 풀린다고 꼭 부모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개업의들이 병원이 잘되는 것과 상관없이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가 골프다. 골프에 맛을 들이면 적어도 골프장에서는 돈 많이 버는 의사보다 골프 잘 치는 의사가 대접을 받는다. 인생에서는 져도 좋다. 골프장에서 이기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요새는 꼭 의사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의 연봉을 받는 직장인들도 웬만하면 골프를 친다. 그러다 보니 유명한 골프장에 가서 치고 싶고, 골프채도 좋은 것을 가지고 싶다. 투자와 사치의 결합으로 골프장 회원권도 산다. 하지만 아무리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이라지만 나이 70세, 80세에 골프를 치며 살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검소하게 아등바등 저축해서 빚을 갚으면 그것이 남는 것일까? 하지만 빚을 줄이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10억짜리 집을 샀는데 5억 원을 대출받았다. 만약에 그 집의 가치가 앞으로도 계속 10억 원으로 보존된다면 5억의 빚을 갚은 것이 의미가 있다. 하지만 빚을 다 갚고 나니 그 집의 가치가 5억으로 떨어진다면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누군가의 말마따나 고령화의 여파로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찾아온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파산자가 속출해서 국민 대부분이 신용불량자의 나락에 빠질 위기에 처하면 나라가 구제해 줄 수밖에 없다. 열심히 저축해서 빚을 갚아놓은 사람이 바보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나라가 빚을 탕감해 줘서 빚을 진 사람이 빚 갚은 사람보다 더 이득을 볼지도 모른다. 따라서 평생 일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소득이 계속된다면 어지간한 손실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우리 시대에는 아무리 병원이 잘되어도 의사에게 있어서 은퇴란 없다. 은퇴하지 않는 것이 살아남는 것이다. 그런데 의사는 나이가 들면 생산성이 떨어진다. 레지던트, 전임의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대신해 주는 대학병원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진료하고 시술해야 하는 노동강도가 센 진료과목 봉직의 중 나이 드신 분은 거의 없다. 개업은 어떤 의미에서 내가 나를 고용하는 형태의 평생직장을 만드는 것이다. 개업을 함으로써 종신고용이 이루어진다. 종신보험을 드는 대신 종신고용을 계획해야 한다. 앉아서 환자 진료하고 주로 처방전 발행하는 보험과를 하다가 금전적인 수입이 너무 적다고 생각을 해서 시술이 많은 비급여로 가는 분이 있다. 손이 많이 가고 시술이 많은 비급여는 젊어서 몇 년은 괜찮다. 하지만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될수록 육체적으로 힘에 부친다. 길게 보면 환자들 이야기 잘 듣고 그에 맞춰서 처방전 발행하는 의료인은 60세, 70세까지는 너끈히 일할 수 있다. 건강하기만 하고 시력, 청력에 이상이 없으면 80세까지도 할 수 있다. 환자도 점점 쌓여간다. 지금 돈 많이 버는 것 같은 성형외과, 피부과, 치과 의사들은 나이가 들수록 힘들다. 환자들도 젊고 피부도 탱탱하고 아직 머리도 안 벗겨진 젊은 의사들을 선호한다. 피부미용과 같은 비급여 과목은 의사의 나이가 들수록 환자가 떨어져 나간다. 그렇다고 나이 들어 다시 보험과로 전환하기도 쉽지 않다. 고령화 진입에 의한 대한민국 경제의 극도의 불확실성과 저축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이른바 선진경제구조를 고려할 때 의사에게도 이제 은퇴란 없다. 인생을 길게 보면 보험과가 더 유리할 수도 있다. 보험과건 비보험과건 상관없이 가장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나이가 들수록 환자 보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 자신이 얼마나 사랑하는가?”라는 명제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중요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함께 일하는 직원들로부터 존경받는다는 것, 가족으로부터 존중받는다는 것, 지역사회에서 가치 있는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존중과 존경은 자녀가 잘나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골프를 잘 친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이 많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순간의 선택이 쌓여서 받게 되는 소중한 보답인 것이다. 그 무엇보다 환자들에게 훌륭한 의사 선생으로 존경받으면서 함께 늙어가는 것처럼 좋은 것이 없다. 부부 사이가 좋아서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면서 늙어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의사에게는 환자와의 좋은 관계처럼 소중한 것이 없다. 이 고령화 시대에 함께 늙고 병들고 약해지는 과정을 감당할 환자가 있다는 것이 의사에게는 축복이다. 나이 80대인 의사들이 죽는 날까지 진료를 하고 싶다면서 의료봉사를 하는 데는 그 나이가 아니면 깨달을 수 없는 귀중한 교훈이 있다. 나이가 90세, 100세 가까이 되면 걷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인생의 승자다. 내 친구들 다 늙어 죽었는데 나 혼자만 멀쩡한 정신으로 살아남으면 그것이 최고의 승자다. 돈 많이 벌어도 소용없다. 행복이 장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