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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2243568
· 쪽수 : 616쪽
· 출판일 : 2015-03-20
책 소개
목차
제1회(2006년)
고병옥·공사장 사람들 18
구 활·산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싶어 22
김애자·입춘대길(立春大吉) 25
류창희·아버지의 방 28
이난호·글 쏟아질라 31
이방헌·초보인 친구에게 34
이혜숙·난 은하수로 춤추러 간다 38
정성화·미얀마 선원 42
조정은·색동풍선 46
채 환·뱀 꿈 54
최민자·달빛과 나비 59
제2회(2007년)
김윤재·가지치기 64
김미정·나비는 날아오르고 68
김병기·잠재 73
김서령·그에게 열광하다 78
김애자·털신 한 켤레의 정물 88
유경환·달항아리 92
이민혜·회초리 보자기 95
이향아·꿀단지 102
이화련·떠돌이에게 보내는 북소리 106
조정은·그건 소나기 때문이었다 109
최민자·나비 118
제3회(2008년)
강병기·사람아, 사람 잡는 사람아 122
김미정·니체를 떠나보내며 131
김서령·무익지 135
박태선·안해 140
송혜영·그 여자의 말뚝 145
이귀복·삼십 년 묵은 김치 149
이민혜·마지막 컷 157
이수태·달리기 162
이혜숙·태양초 170
정혜옥·강물을 만지다 181
최 운·공원 비둘기 185
제4회(2009년)
강병기·어머니는 아직도 꿈만 꾸신다 190
권창오·너와 나 사이 말이 있어 아름답다 199
김서령·약산은 없다 203
김인숙·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213
류영하·어떤 동행 218
송혜영·울지 마라 225
안정혜·간격 229
이민혜·마로니에 233
이수태·안양천 240
전해주·피아노 249
허원주·대물(大物) 256
제5회(2010년)
김종길·속죄 262
문혜영·보너스로 받는 시간 268
박경주·밥상 272
변애선·아듀, 아니시모프 274
유남희·바람아 불어라 279
이귀복·아버지의 난닝구 284
이명선·유점마을 일기 292
이수태·에스더와 미국 298
최민자·하느님의 손도장 307
제6회(2011년)
강철수·그해 여름의 어느 날 312
김기철·비 317
김베로니카·낙동강변 사람들 323
김현정·앙코르의 어리석음 330
조광현·헬렌의 회심 334
조병옥·나는 북이다
조정은·껍데기 340
차하연·항상 떠나는 당신 348
최미아·수주 아내의 항변 352
허원주·눈웃음이 닮았다 356
제7회(2012년)
김인숙·모르니까 산다 362
김지영·왕뚜껑전 366
김향남·☆을 훔치다 371
송재국·달님 달님 조각달님 어디로 가나 375
오정옥·길고긴 기다림 392
임은진·옥희 402
정태헌·상쾌한 덫 407
조광현·애기 아빠 됐어요 411
최정임·풍진이 420
현정원·엄마의 날개옷 424
제8회(2013년)
김은주·찰(察) 434
김채영·사인용 식탁 438
배혜숙·구빙담 커피 442
변애선·데킬라를 마시는 저녁 446
이영민·감은사지 451
이찬웅·나는 학생이다 455
전이순·백년의 침묵 459
정승윤·각주구검(刻舟求劍) 외 464
조광현·나는 오늘도 이발관에 간다 470
현정원·만화경 속에서 475
제9회(2014년)
강병기·기우뚱한 균형 482
김종길·싸이, 동그라미 488
김현숙·호비새를 아시나요 492
민 혜·마늘 까던 남자 495
박석구·중년(中年) 500
윤성근·불펜캐처 504
정성화·언플러그드(unplugged) 풍경 508
정승윤·매화 한 가지 외 511
정아경·커피를 마신다 515
정진희·캐서린, 당신 지금 행복한가요? 519
최태준·애도의 밤 526
제10회(2015년)
김병기·초속 8과 1/3 532
김현숙·갯내 537
민 혜·향기, 사라지다 541
민소연·키다리아저씨 되기 549
박재완·텅 빈 운동장 553
변애선·시리아에 바치는 장미 556
유기웅·민타카와 남십자성 562
유병숙·그분이라면 생각해볼게요 569
이춘희·한오백년, 야광염주 573
정승윤·영주산의 소 587
홍성담·잠입-1 592
저자소개
책속에서
우리 마을에선 젊은 농사꾼치고 소를 키우지 않는 사람은 없다. 모두 사료비를 줄일 요량으로 사료용 옥수수나 수단그라스를 심고 매일 낫으로 벤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같은 일을 반복했고, 그 일 때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일에 대해서 불평하는 이가 없다. 그게 이상하다. 나는 진력이 나서 죽겠는데 모두들 당연한 듯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농부들이 갖는 인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모두들 땅과 하나가 됐다. 민이 엄마도 나처럼 매일 풀을 벤다. 여자가 풀을 베는 것은 우리 마을에서 민이 엄마와 나뿐이다. 그녀는 남편이 모기 물릴까봐 풀을 벤단다. 그쪽 밭엔 암모기만 있는 모양이라고 실없는 소릴 했다. 농담만큼 우릴 유쾌하게 하는 것은 없다. 유쾌하게 웃다보면 어느덧 서로 훨씬 친밀해져 있다. 하여튼 그녀의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 처음엔 불만을 터뜨리는 듯한데 언제나 중간쯤에서 전복되어 자기 처지에 대한 흡족함으로 말을 마친다. 오죽하면 우리가 그녀의 별명을 ‘좋아 죽겠어요’로 지었을까. 마디마디 남편에 대한 사랑이 툭툭 떨어진다.
“그 사람은 모기만 물리고 풀도 못 베요.”
“그러니까 모기에 물리면 덧나고 가렵다는 거죠?”
“아니라. 모기 물릴까봐 내가 비는 기라.”
김베로니카의 「베고 또 베고」
수술 말미, 이식된 심장이 새 주인의 가슴속에서 새 삶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제발 힘차게 박동해다오. 그러나 여의치 않았다. 몇 번 꾸무럭거리다가 이내 멈춰버리기를 반복했다. 제발, 제발! 제세동기를 수십 번 갖다대며 나는 하얗게 질려갔다. 인공심폐기를 6시간이나 돌렸지만 심장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모두들 고개를 푹 숙였다. 더없이 허탈했다. 나는 이미 초주검이 됐다. 이내 가족들의 격렬한 항의에 직면했다.
“우리 은희 살려내라, 살려내!”
고인의 이모는 오열하며 실신했다.
사건이 마무리될 즈음 나는 몸져누웠다. 커다란 바위에라도 부딪친 듯 온몸이 욱신욱신 쑤셨다. 최선을 다했으니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은 나에게 조금도 위로가 되지 못했다. 수술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의 생명을 최대한 연장시켰어야 했다. 은근히 공명심에 놀아난 자신이 부끄럽고 초라했다.
“은미야, 미안하다. 나는 정말 형편없는 의사다!”
자괴감에 짓눌려 잠도 오지 않았다. 참다못해 수면제를 털어 넣고 깜빡 잠이 들면 온갖 악몽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에너지가 완전 소진된 낡은 목선처럼, 나는 그렇게 표류했고 그리고 침몰했다.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외과의사라고 하지만 언제나 나의 이정표는 흔들렸다. 이제 어떻게 하지? 불면의 밤은 길고 고뇌의 강은 깊었다. 며칠이 지나고 드디어 절망이 마음 바닥을 칠 때 나는 가까스로 일어났다.
낙동강 하구언 을숙도로 달려갔다. 이것은 오래된 나의 버릇이다. 겨울 철새 도래지, 갈대숲 우거진 을숙도는 유별난 나의 피난처다. 청춘의 날, 꿈을 좇던 시절부터 나는 내 인생의 무게에 무던히 좌절했고 그 짐을 얼마간 을숙도에 풀어 놓곤 했다. 그리하여 다시 일어서기도 했다.
조광현 「그 겨울의 강」
영주산에선 뭐든지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있었다. 나는 능선 위에 서 있었고 바람은 능선 위로 불었고 매는 능선 위에 떠 있었다. 그 매는 바람을 타고 있었다. 매는 끈 없는 연 같았다. 끈 없이도 당길 수 있는 연처럼 떠 있었다. 영주산 능선과 하늘 사이에는 구름이 있었다. 때로는 아무 것도 없이 구름만 있었다. 구름이 얼마나 가까운지 능선 위에 사람이 서 있으면 사람이 더 아득하게 보였다. 구름 속에 매가 떠 있으면 오히려 매가 더 아득하게 보였다.
영주산 능선에는 소떼들이 있었다. 소떼들이 느릿느릿 풀을 뜯고 있었다. 영주산 소떼들은 맷돌처럼 풀을 씹었다. 영주산 오르는 길에는 여기저기 소똥이 흩어져 있었다. 맷돌짝만한 소똥들이 흩어져 있었다. 소똥들은 잘 말라 다시 흙이 되었다. 잘 마른 소똥 위에서 민들레꽃이 피어났다. 좀 덜 마른 소똥 위에선 버섯도 피어났다. 소똥은 흙이 되고 흙은 다시 풀이 되었다.
영주산 동편 어느 평평한 기슭에 물웅덩이가 있었다. 때로는 소떼들이 그 주변에서 물을 마시거나 휴식을 취했다. 그 소 중에 한 마리의 뿔이 안으로 굽어져 있었다. 그는 관을 쓴 현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곧 제단에 오를 신성한 제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봉우리로 오르는 나무 계단을 밟고 있었다. 그 봉우리에 오르면 하늘도 손에 닿을 것 같았다. 영주산에선 뭐든지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다. 그 나무 계단 위에 소똥이 놓여 있었다. 정결한 제물처럼 소똥이 놓여 있었다. 소는 보이지 않고 소똥만 바람에 마르고 있었다. 영주산의 소들은 사실은 인간에 의해서 방목된 소들이었다. 그러나 영주산에선 계단 위에 놓인 소똥이 인간의 황금보다 더 귀했다. 영주산에선 뭐든지 가장 고귀한 것들은 흙이 되었다.
정승윤 「영주산의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