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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목회일반
· ISBN : 9788992467827
· 쪽수 : 504쪽
· 출판일 : 2014-03-18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제1부 예배의 하이퍼 리얼리티
프롤로그
제1장 의례의 뿌리 : 리좀, 웹, 말씀, 그리고 세상
포스트모던의 상황
나무 vs. 잡초: 포스트모던 문화 속에서 예전 다시 그려보기
상호 연관적인 차이의 문화: 구조주의를 넘어서
문화: 여러 방면으로 상호 작용하는 고원 | 말하기, 쓰기, 그리고 의미하기
응용 리좀학
말씀, 세상, 웹 | 웹으로서의 말씀 | 폴리포니로서의 말씀, “노마드 공간” | 말씀, 의식, 그
리고 몸의 담론 | 기도의 규칙, 신앙의 규칙, 삶의 규칙 | 회심에로 부르심
제2장 의례의 역할과 위험성: 상징이 의미하는 방법
의례의 역할들
슬롯머신, 꽃, 인형, 젓가락 그리고 하이쿠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인가? | 의례의 위험성
의례: 믿음에서 만남으로
제3장 의례의 규칙: 하나님 나라를 리허설하기
의례에 대한 예수의 응답
예수, 유대교 평신도 | 예수의 기도: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다
의례의 기억
두 번 생각하게 하다: 문화 비평가로서의 예수 | 가정생활에서의 의례에 대한 예수의 비
평 | 한 분처럼 역사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의례들
제4장 의례의 영역: 다시 그려본 세상
전주
의례
손으로 그린 이야기들| 그림으로 그린 기도들
의례를 위한 준비: 마음 비우기 능력
의례와 비유
비유 듣기 | 예수, “하나님 나라의 비유자” | 현대 비유들
계시로서의 의례
계시와 하나님의 신비
의례가 드러내는 것
제2부 폴리포니: 예전 언어들
제5장 몸
초기 그리스도교의 몸에 대한 성찰
신학의 장으로서의 몸, 그리고 그 몸의 근대적 복원
그리스도교 인간학, 그리고 예전과의 연관
체현된 실존 | 몸의 운명 | 누가 몸의 주인인가? | 몸의 고유한 언어(vernacular)를 예배로 가져오기 | 몸의 고유한 언어와 예배 공간 | 몸과 역사
변모된 몸, 변모된 세상
경쟁의 자리로서의 몸
몸의 폴리포니 | 내러티브로서의 몸
제6장 의례적 말하기와 메타포의 논리
예전이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
태초에 메타포가 있었다
인간의 메타포
메타포가 신비를 만나다
송영에 의해서 정의되다
예전: 송영인가 상품인가?
예전과 “소비자 종교”
하나님을 여러 이름으로 부르기
예전 고유의 말하기를 재발견하기
제7장 부분들과 참여: 사역, 회중, 그리고 성례전
종 된 교회에서의 봉사
식탁을 위한 새로운 지형도 | 사역을 위한 새로운 지형도 | 안수받은 사역자를 위한 제2
차 바티칸 공의회의 새로운 지형도 | 미(未)해결의 과제들 | 안수받은 성직자들의 예전에
서의 역할 | 하나님 현존 가운데 봉사하기에 합당한 존재 | 불에 닿은 것처럼: 예배 회
중이 되기
회중에서 성례전으로
다른 세계로 들어가기: 스스로를 변화에 내맡기기 | 성례전 다시 쓰기 | 아퀴나스: “실재
하는” 그리고 “말할 수 있는 것”으로서의 인간과 세계 | 데이비드 존스: 이것을 다른 것으
로 만들기 | 장뤼크 마리옹: 성례전적 선물
에필로그
책속에서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아바, 곧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치셨으나, 모든 유대인들이 알고 있었듯이 ‘아바’라는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적합한 히브리어 이름은 아니었다. “아바”는 하나님을 부르는 공식적인 이름이 아니었다. 그분의 이름은 너무나 거룩해 공중 기도에서 소리 내어 부를 수조차 없었다. 아바는 모든 가족들 사이에서, 혹은 집안에서 친밀하게 사용되던 아람어 단어였다. 그런데 예수께서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주시라고 부탁드렸던 대상이 바로 이 “친숙한 하나님”이었다.
예수의 비유를 들었던 청중들은 스캔들에 휩싸이기가 쉬웠다. 예수는 《성서》를 우스갯거리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의례적 정결을 관장하는 율법을 소홀히 하거나 무시했다. 결국 청중들은 다음과 같은 근심에 쌓이게 된다. “하나님의 통치가 정말로 해로운 것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겨자씨처럼 보잘것없는 식물 같다는 말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정말 좋은 작물을 말라 죽게 하는 골치 아픈 잡초와 같다는 말인가?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행하심이 그와 같다는 말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찰리 브라운의 비참한 크리스마스트리, 앙상한 몸통에 헐벗은 나뭇가지에서 축 늘어진 금실 조각 두 개만이 덜렁 걸려 있는 트리 같다는 말인가?
기원후 1세기의 지중해 문화 속에서는, 누가 무엇을 누구와 그리고 어떤 순서로 먹느냐에 따라 많은 일들이 달라졌다.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예수께서는 이런 관습들에 도전하시고, 식사의 지도들을 다시 그리셨다. 실제로 예수는 아무 때나, 아무한테나, 아무하고나 함께, 아무것이나 먹자고 하신 듯 보인다. 요컨대, 예수는 누구나 환영받는 식탁, 그리고 그 누구도 성별, 인종, 사회 경제적 지위 혹은 “도덕적 조건”에 근거해 배제당하지 않는 그런 식탁 교제를 퍼뜨리셨다. 예수는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실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