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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3208375
· 쪽수 : 469쪽
· 출판일 : 2009-05-20
책 소개
목차
1. 집 나온 건 맞는데 가출은 아니에요
2. 영감님이 오셨다
3. 나폴리를 보고 죽는다고?
4. 이제부터 쇼타임
5. 데 나다
6. 왜 문을 열어 놨어?
7. 하쿠나 마타타
8. 나히
저자 후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에게 세상은 차가운 곳이 아니라 추운 곳이야. 차가움은 만져야만 느낄 수 있지만, 추위는 가만히 있어도 느낄 수 있거든. 바람이 불어 콧속으로 들어올 때처럼 추울 수밖에 없는 그런 느낌. 아, 나는 점점 의식의 폭포수를 오르듯이 내 삶의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어. 그곳이 어딘지는 나도 몰라. 그래서 이렇게 과도기의 세상을 헤매고 다녀. 나를 받아줄 곳이 어디일지 몰라서 항상 밖으로 나돌았던 거야. 아버지의 빛과 그림자 뒤를 헤매면서. 결국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겠지만 아직까지 나는 아버지의 세계 안에 머물러 있어.”
“어느 세계에 속하는 것은 그 세계에 지는 일과 같은 거야. 그 세계에 내 세계를 빼앗기게 되니까. 가족, 네가 말하는 아버지, 그런 것들은 아마도 네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속한 것들이겠지. 나는 그런 것에서 벗어나려고 엄청나게 애썼어. 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자는 분노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 - 291쪽 중에서
인간은 누구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과 충돌한다. 유석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막 한 명의 예술가이자 인간으로서 성장하려는 이 과도기의 순간에 하필 그는 깊은 자기 회의에 빠지고 말았다. 유석은 아직도 <눈 오는 아프리카>를 아버지의 아틀리에에서 봤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그의 손에서 사라지고 나자 그 작품은 머릿속에 전설처럼 남아 있었다. 그는 <눈 오는 아프리카>가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작품이며, 그것을 마지막으로 남긴 아버지야말로 정말 위대한 예술가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눈 오는 아프리카>를 뛰어넘을 자신이 없어졌다. 매일 밤 유석은 하얀 캔버스가 점점 넓어져서 마침내 운동장만 한 크기로 변하는 것을 목격했다. - 334쪽 중에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눈 오는 아프리카요.”
“아프리카에 눈이 온다? 하하하.”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얼룩진 세상 위에 눈이 내리면 어떨까 하는 것이죠. 남들은 척박하다고 하는 땅 위에 언젠가 눈이 내려 세상을 포근하게 감싸 주면 좀더 평화로운 세상이 될 거예요.” - 406쪽 중에서
유석은 예술이란 현실에서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환상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구현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 환상의 세계란 아이의 세계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은 나이가 들면서 훼손된다. 아이들이 비닐봉지를 쓰고 돌아다니면 귀여운 장난이고 젊은이가 그러면 치기로 불리지만, 늙은이가 그런 짓을 하면 변태로 낙인찍힌다. 하지만 장난과 치기와 변태성은 모두 다 훌륭한 예술적 요소이다. 선입견에 대한 저항이 없었더라면 예술이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알고 보면 모든 예술가들은 어린아이가 되려고 예술을 하는 것이다. - 456쪽 중에서
재스민이 가게 밖으로 사라졌을 때 유석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사물의 색이 흑과 백으로 바뀌는 것 같았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재스민이 문을 닫은 그 순간부터 문 주변을 시작으로 모든 사물이 도미노처럼 원래의 색을 잃어갔다. 식탁 위를 장식했던 보랏빛 보자기도, 쇼타가 입은 파란 재킷도 모두 검게 변했다. “검은 색은 색이 아니야.” 유석은 늘 이렇게 주장했던 아버지의 말을 떠올렸다. 정신을 차렸을 땐 세상이 온통 흑과 백으로 나뉘어 있었다. - 154쪽 중에서
“요즘 유럽에서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 한쪽에서 불어로 얘기하면 다른 한쪽에서 독어로 얘기하는데 둘의 대화가 잘 통한다는 거야. 우리도 한번 해보자.”
호르헤의 제안에 따라 네 사람은 그때부터 스페인어와 한국어로 각자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무런 제약 없이 서로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완벽한 마법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다만 이들은 이것이 공통의 혼에서 나온 작은 기적이라고 믿었다. 그 공통의 혼이란 말할 것도 없이 예술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들은 언어 없이도 자유로웠고 행복했다. - 257쪽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