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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3525267
· 쪽수 : 528쪽
· 출판일 : 2015-08-15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8
제1부 남경대학살 --- 27
■ 목 베기 시합
■ 세 통의 필름
■ 남경대학병원: 그곳은 지옥이었다
■ 중국인들의 은인 존 라베
■ 일본군 수뇌부의 고민
■ 위안부를 보급하라
■ 중국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제2부, 나라 잃은 백성들의 수난 --- 163
■ 중국소녀 왕링과 화란처녀 안나 밤베르그
■ 오산면의 두 소녀
■ 간호보국대가 위안부였네
■ 나는 돈 벌러 탄광으로 간다
■ 나물 캐다 끌려간 소녀들
■ 오빠는 가미카제 특공대로 떠나고
■ 순임이를 흑룡강변에 묻고
■ 출장위안: 하루 100명을 받다
제3부 나는 조선의 처녀다 --- 331
■ 사이판으로 가는 멀고도 험난한 여정
■ 죽음의 섬 사이판
■ 나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 7일간의 지옥탈출기
■ 미군포로수용소
■ 조선인 가미카제, 나고야 하늘에 지다
■ 현해탄에 묻힌 귀국의 꿈, 우키시마마루 사건
에필로그: 제인 에반스 교수의 고별강연 --- 507
책을 마치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두 번째 날 저녁에 병사들이 들어와서는 저녁을 먹고 나자 동굴 속에 빙 둘러 앉아서 노래를 하며 놀았다. 아마도 밖에서 좋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석유등잔불을 있는 대로 다 켜 놓아서 매캐한 석유냄새가 동굴 안에 가득했다. 한 참 흥이 무르익었을 때 왕링을 부르더니 발가벗겨서 가운데에 세워 놓았다. 그리고는 그들 앞을 빙빙 돌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연신 손뼉을 치면서 떠들어 댔다. 왕링이 울면서 저항하자 대장이 싸리 회초리를 들고 다가서더니 휙! 소리도 요란하게 왕링을 때렸다. 왕링은 울면서 한참을 빙빙 돌았다. 아직 다 성숙하지도 않은 열네 살의 조그마한 소녀가 발가벗은 채로 뒤뚱거리며 돌아다니는 게 그들에게는 모처럼의 즐거운 오락이었던 것이다.
- 중국 소녀 왕링과 화란 처녀 안나 밤베르그 중에서
변소에서 목욕을 할 때 깔고 앉던 작은 의자가 있었다. 무릎의 절반 높이에도 못 오는 앉은뱅이 의자였다. 순임이는 그 위에 올라섰다. 만감이 교차했다. 하나 밖에 없는 귀한 딸로 자라서 오산을 통틀어서 단 세 명밖에 없는 서울 명문고녀의 학생이 되었다. 통학하는 기차에서건 내려서 집에 올 때건 모두들 부러워하는 눈길로 바라보던 소녀였다. 현모양처(賢母良妻)가 꿈이었다. 상필 오빠와 결혼하면 정말 행복하게 살 자신이 있었다. 수희와도 사이좋게 지내면서 세상에 보란 듯이 좋은 시누이와 올케의 관계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되지 못할 하등의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단 하루 만에 자신의 인생은 송두리째 박살났다. 벌써 석 달 동안 자기 몸을 짓밟고 간 일본 놈들이 어림잡아 1천명도 넘는다. 이제는 뱃속에서 누구의 씨인지도 모르는 아이까지 자라고 있다. 비록 일본 놈의 자식일망정 잘 낳아서 키워 볼 생각도 한 해 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디서 살 것인가? 이 세상 자기의 몸을 숨길 곳이 어디란 말인가? 게다가 날마다 끝없이 밀어닥치는 군인들, 배는 점점 불러오고. 순임이는 마음을 정리했다. 그래, 죽는 거야. 내가 세상을 잘 못 만난 거라고 생각해야지. 저 세상에는 이런 일이 없겠지. 미련 없이 떠나자. 그래도 엄마가 보고 싶어, 엄마, 엄마, 미안해. 나 먼저 가.
눈물이 너무 흘러내려 밧줄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더듬거리며 올가미를 잡았다. 발 뒤꿈치를 들고 목에 걸었다. 있는 힘껏 줄에 매달려서 발로 의자를 찼다. 순간 순임이는 새가 되었다. 까마귀인지 까치인지 모를 까만 새. 집의 장독대가 보였다. 엄마가 그 앞에 서 있다. 물을 떠 놓고 손바닥을 비비면서 뭐라고 하신다. 장독대 나무에 앉아야지. 그러나 아무리 앉으려 해도 발이 나무에 닿지 않았다. 엄마가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본다. 그러면서 연신 팔을 휘둘러 무언가를 쫓아버리려고 한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훠이~ 훠이~
- ‘순임이를 흑룡강변에 묻고’ 중에서
처녀들은 물이 차오를 때까지 기다리면서 뒷산에 올라가서 노래를 했다. 딱히 산이라고 할 수도 없는 야트막한 둔덕이 우물 뒤에 있었다. 그저 50m나 될까? 물론 풀과 나무도 없었다. 그저 돌과 붉은 흙무더기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거기가 위안소 근처에서는 제일 멀리까지 내려다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아이들이 물 당번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때만큼은 우찌다가 간섭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산에 올라가면 해가 중천에 떠올라 있었다. 그런데 조선 방향은 해가 막 넘어가려고 하는 쪽이라고 했다. 모두 그쪽 방향을 바라보면서 노래를 했다. 평안도와 함경도 언니들은 ‘눈물젖은 두만강’을 불렀고, 전라도 언니들은 ‘목포의 눈물’을 불렀다. 경성과 경기도 인근에서 온 아이들은 ‘사의 찬미’나 ‘울밑에선 봉선화’를 불렀다. 모두가 합창을 할 때는 ‘아리랑’을 불렀다. 그때는 너 나 가릴 것 없이 모두 눈물바다가 되어 통곡을 하곤 했다.
- ‘출장위안: 하루 100명을 받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