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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93541557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18-11-15
책 소개
목차
1부
더덕꽃│모란이 환했나!│오월은 상중(喪中)이다│3월 축산항│잔치국수│초경(初經)│봄날│봄, 한나절을 두고 왔다│숙면(熟眠)이 먹고 싶다│구탄봉에 안경을 묻다│스테고사우루스를 보다│나팔꽃 문신│이팝나무│야래향 그 여자│여냇골 도화│유월 그믐 무렵│둥글다는 것
2부
강 건너는 북창│현무암│그해 여름│그 여자│수의(壽衣)를 말리며│팔월 오후│폭우│이명(耳鳴)│빈집 저 대추나무│소리 박물관│복날│돌은 제 몸에 문신을 새기지 않는다│가뭄│63병동에서│밤꽃, 만발하다│장마
3부
처서(處暑)│전어(錢魚)│공항│상강│손금을 보다│백정은 죽을 때도 버들잎을 물고간다지│면경(面鏡)│돌부처│나를 벗어보다│소주 한 상자 스무 병│저, 벌거숭이│매직 파마│벌초하러 간다│연이 할머이 술 석 잔│나도 안다고요│냄새│가을
4부
누에의 잠│머리를 풀었다│농부가(農夫歌) 마지막 추임새처럼, 정월 열나흘│폐경│오래된 냉장고│임종│낙과(落果)│폭설│가자미│붉은 문장으로 흐르다│그런 시절│치통│북 치는 남자│팔봉산│장마, 지하실이 잠겼다│일주문 밖 삼겹살 몸 뒤집던 시간│이별 연습
해설
안녕 금례 씨 ─ 홍천, 그 오래된 고원_우대식 115
저자소개
책속에서
│해설│
박지원의 호는 연암(燕巖)이다. 연암은 선대의 고향인 황해도 금천 골짜기의 이름이다. 교산 허균의 교산(蛟山)은 그가 태어난 강릉 사천의 외가 뒷산 이름이다. 원고를 읽으면서 나는 김영희 시인의 필명이나 호를 홍천으로 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보기도 좋고 듣기도 좋지만 더 의미 있는 것은 그가 홍천의 산천과 그곳 사람들을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여 존중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의 시에는 그곳의 마을과 전답 이웃 사람들 속에 대를 이어 살아 숨 쉬는 전통정서를 오늘의 감각으로 되살리는 서사성과 힘이 있다. 짧고 간결한 시편들도 돋보이지만 산문형식의 작품들도 상당한 긴장과 절도를 유지하고 있어 깊이 따라 들어가는 묘미가 있다. <연이 할머이 술 석 잔>의 능청과 해학의 입말 서사는 판소리 사설처럼 웃음 속에서 아픔을 자아내게 한다. <농부가 마지막 추임새처럼, 정월 열나흘>에서 보여주는 세시풍속의 재현은 마치 가사문학의 백미인 농가월령가를 방불케 하고 묵은 말로 풀어내는 시절 노래의 정취와 가락은 시인의 역량을 짐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백석과 이용악은 북쪽의 말로 북쪽의 정서를 노래했고 정지용은 남쪽의 말로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사철 발 벗은’아내를 노래했다. 홍천은 국토의 내륙 중심에 있는 맑은 고장이다. 김영희 시인은 시의 고향을 가지고 있어 행복한 시인이다.
─ 이상국(시인)
사람이 살아가는 근원은 당연히 인간과 인간의 관계일 것이다. 이 자아와 타자의 다양한 관계의 양태를 우리는 삶이라 부른다. 김영희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도 사람과 사람의 핍진한 관계에서 비롯되는 삶의 뜨거운 애환을 느낄 수 있었다. 김영희 시인의 시편들은 어렵지 않게 이 푸 투안이 말한 토포필리아(Topophilia-장소애)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했다. 이 푸 투안에 따르면 신체적 지각, 개체적 독특함이 인간 주변의 세계를 지각하는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에 기반한 지각이 인간의 환경에 대한 선호와 이상향, 더 나아가서는 공간을 조직하는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김영희 시인이 의식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집은 홍천이라고 하는 공간과 그 주변 공간의 인간사에 대한 회고적 기록이 주를 이루고 있다.
─ 우대식(시인)
봄날
벚꽃 지고 영산홍 붉던 날?
가리산 막국시집 앵두나무 가지마다 꽃 비늘 어지러웠지
푸줏간 불빛 같은 선홍빛?관광버스?
막국시집 앞을 가로막더니
벌건?아가리?젊지도 늙지도 않은 한 무리의
남녀를 쏟아놓았지
시곗바늘이 정오를 지나간다
가는?이보다?오는 이가 더 많던? 막국시 집 그 시간
앵두나무 꽃그늘 찾아든?사내와 여자
불그레한 얼굴에?끈적한 눈빛 주고받으며
분가루?날리는?주름진 얼굴을 비비며
요리조리?몸을 바꾸며 폰으로 셀프 샷을 하고 있다
벌들이 잉잉거리는 앵두꽃 바라보다
주문한 국시를 기다리다
메밀국시발 같은 그들의 나이를 가늠하다
칙칙한 수다에 붉은 양념을 버무리며
들큼하고 시큼한 한나절?뒤섞어 목구멍에 밀어 넣던
나른한?한낮 ?
미지근한 육수에 간장 한 방울 떨구며?
저것은 불륜일까 꽃일까
관광버스 떠나고 꽃그늘 남녀도 떠나고
앵두꽃만 하얗게 흐드러졌지
팔월 오후
마당 한구석 늙은 헛개나무 긴 그림자가 누워있다
햇살 쭈그려 앉은 빛바랜 플라스틱 의자 위
밀잠자리 오래오래 졸고 있다
검버섯 숭숭한 명아주 지팡이 그 곁을 지키고 있다
붉은 무늬 나비 외진 담장 아래 낙화한 꽃잎처럼 누워 있다
허우적거리며 지붕 위 기어오르던 호박넝쿨,
동기간 부고를 들은 노인처럼 까무룩 하다
날마다 담장 밖 기웃거리던 능소화 얼굴이 붉다
때 묻은 털이불 지고 다니던 길냥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