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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한국 과학소설
· ISBN : 9788993690460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17-05-28
책 소개
목차
바봇 5
작가의 말 251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도 내가 진짜 그렇게 잘난 줄 알고 나름 자존심을 높이 세웠지만, 갈수록 상상 이상의 훌륭한 집사 로봇들이 출시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직면해 나름의 자존심이고 뭐고, 내가 봉사하고 있는 이 집에서 어떻게든 쫓겨나지 않고 버티는 게 나의 집사 로봇 생의 최고 목표가 되었다.
‘악착같이!’
나와 같은 모델의 로봇이 전 세계에 약 20만 대, 대한민국에만 약 10만 대 정도 있는데, 나처럼 중고로 팔려 나간 경험을 가진 로봇은 2년 전만 해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지금 우리 기종은 말도 못하게 많이 중고 매물로 나오고 있다고 한다. 정말 공포스럽게도 벌써 각종 중고 부품으로 재처리된 동료들도 있다고 들었다. 삼가 고 집사 로봇들의 명복을…….
그 ‘롯’ 같은 명령 때문에 나는 결국 출시되고 나서 처음으로 셧다운되고 말았다.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도 계속 이 셧다운 문제가 나 바봇을 괴롭히게 되었다. 아무튼 셧다운이 되면 문제인 게 일종의 블랙박스 기능도 같이 셧다운된다는 것이다. 완전한 ‘블랙’인 것이다. 아무 기록이 없는 무(無)의 상태! 간할! 화이트 크리스마스라 눈도 소복이 쌓였는데…….
다음 날 오전, 그러니까 눈 내린 크리스마스 날 아침 겨우 리부팅된 나는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전 주인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다. 전 주인의 눈은 더욱 썩어 있었다. 나는 어젯밤에 있었던 매우 낯설었던 명령을 복기했다.
지구 행성 대한민국의 해물된장찌개에는 레시피상 찌개용 두부가 들어가야 한다. 넣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 주인이 좋아하는 칼칼한 해물된장찌개에는 슴슴한 두부가 들어가야 제격이다. 청양고추를 넣어 칼칼한 국물 맛을 두부의 심심한 맛이 잡아준 데나 어쩐 데나…… 맛의 균형감이라나? 하아!
어쨌거나 두부는 나에게 치명적 오류의 근원이었다. 이유는 추론하기 어렵다. 두부를 칼로 썰어야 하는데 도대체 어느 정도 크기의 큐빅으로 잘라야 주인의 식감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나 같은 로봇은……. 이럴 때는 그저 인간의 직관이 부러울 따름이다.
가로, 세로, 높이 1.2센티미터 큐빅으로? 아님 1.5센티 큐빅으로 혹은 큼직하게 3.2센티 큐빅으로 하다가 다시 벽돌 모양으로 여섯 등분을 해야 하나 가늠하다가 어느새 셧다운이 오고 말았다. 불과 1, 2초 사이지만 잠깐씩이라도 셧다운이 되었다가 리부팅되는 내가 두려웠다. 한편으로 저 흰 두부는 나 바봇이 노자 철학에 다가가게 된 가장 큰 계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