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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3690583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18-11-27
책 소개
목차
다방집 소년 7
작가의 말 301
저자소개
책속에서
엄마는 내가 갓 열두 살이 되었을 무렵 신도심 개발 초기에 수도다방이라는 간판을 달고 다방을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우리 다방집 옆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 주변에 다른 다방들이 우후죽순 생긴 것이 문제였다.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에서 읽은 바로는, 경상북도만 해도 1982년부터 지금까지 한 해에 250개씩 다방이 새로 생겼다고 하는데 경상남도 D시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여름방학 동안 나는 레지 아가씨 한 명 없이 장사를 하게 된 다방집 도련님이 된지라 어쩔 도리 없이 틈만 나면 “조군아!” 하고 나를 부르는 손님들의 담배 심부름을 했고, 커피 잔이 쌓이면 열심히 설거지를 했다. 양손에 주부습진까지 생겨 상당히 우울했지만, 그렇다고 다방집 도련님 주제에 이런저런 사정을 어디다 대놓고 얘기할 형편은 아니었다.
불을 모두 끄면 지하실이라 완전히 깜깜해질 것 같지만 비상구를 알리는 비상등은 항상 켜져 있었다. 그 덕에 홀 천장 네 군데에 조악하지만 그래도 나름 구라파의 위엄이 묻어나는 샹들리에 조명등이 빛났다. 그런 샹들리에를 바라보며 혼자 잠을 청하노라면 유럽 귀족 부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마침내 다방집 내실에서 엄마의 코 고는 소리가 얌전히 들려오면 나는 주방 옆 내실 쪽 벽에 달려 있는 삼성 이코노 컬러 TV를 조심스럽게 켰다. 다방집에서 사는 것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비디오나 컬러 TV, 전자오락기와 같은 신문물을 남보다 빨리 접하게 되는 장점도 있었다. 그 시간에는 AFKN을 주로 본다. 〈투나잇 쇼〉나 〈데이비드 레터맨 쇼〉 같은 건 전혀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었다. 또 내가 좋아하는 마돈나나 그녀의 라이벌인 신디 로퍼, 그리고 데이비드 보위, 유리스믹스의 뮤직비디오 클립을 보는 것도 좋아했다.
마돈나를 닮은 미스 나 누나가 처음 우리 다방집 내실에서 짐을 풀고 엄마와 같이 자며 숙식까지 해결하기로 했을 때, 설레어서 그랬는지 비몽사몽간에 몽정까지 했다. 꿈속에서 나는 평소처럼 내실 쪽방의 내 책상 백열등 스탠드 아래에서 수학 공부를 하다가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끝나자 다방집 1층 현관문 셔터를 내리려고 내실을 거쳐 다방 주방으로 나왔다. 당연히 홀에 있어야 할 엄마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마돈나의 “라이크 어 버진”이 흐르고 마돈나의 공연 복장을 연상시키는 검은 망사로 된 아주 섹시한 옷을 입은 미스 나 누나가 주방 앞 테이블에 다리를 꼬고 앉아 고혹적인 모습으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