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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독서에세이
· ISBN : 9788993814453
· 쪽수 : 356쪽
· 출판일 : 2016-08-20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004
2011년 009
낡은 책상에 앉아•011
2012년 015
광장과 동굴•017 어른이 된다는 것•020
조숙의 의미와 한계•022 텅 빈 비둘기집•033
영원한 아내•043 기술과 미술•045
내걸 수 있는 글•057 변명은 이제 그만•061
출구 없는 지식인의 비애•066 인연의 수맥•068
아름다운 우정의 조건•074 그림 밖의 그림•077
책의 주인과 노예•082 약자의 질투•090
비겁의 진실•094 노시인의 충고•097
재능의 다른 이름•100
2013년 103
독서의 힘•105 가정처방•109
국어대사전과 외할머니•112 예민했던 일본 여행•114
자발적 유배•128 햇빛 쏟아지는 벌판•132
하고 싶은 일•134 병의 신비화•137
해석의 충동과 해방•142 내 안의 프랑켄슈타인•146
의미하지 않을 자유•149 책 안의 책과 책 밖의 책•152
문학사의 숨은 꽃•154 추억의 독서열차•158
죽음을 거부하는 죽음•166 마음껏 해 보라•168
잘 넘겨지지 않는 책•170 내 안의 삼대•174
의식적인 노력•176 가난한 사람들•181
지하 서재에서•183 우물 안 개구리•185
마음의 문신•187 모방과 발명•189
과거와 현재의 사람•192 자기완성의 길•196
2014년 197
오늘의 날씨•199 황홀한 고독•201
만선의 주인공•203 붉은광장과 아크로폴리스•208
일탈을 향한 도발•232 증오의 대물림•235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237 살아 있음의 기적•240
답 없는 답•244 마음의 감옥•246
변소, 화장실, 해우소•255 낡은 성윤리의 껍질•260
발상의 전환과 용기•263 장서가의 행복한 고민•269
사실과 상상의 안팎•274 자, 일하러 가시죠•278
2015년 283
어느 환자의 궤변•285 비움의 계절•291
위대한 유산•293 진통의 의미•297
책갈피의 낡은 신문기사 •301 빈둥거림의 미학•307
자유방임형 인간의 외출•313 여자, 여자, 여자•320
입 없는 아이•327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334
찾아보기•339
참고도서•349
저자소개
책속에서
낡은 책상에 앉아
학교에서 돌아오면 현관에서 신발을 벗자마자 쪼르르 달려 들어와, 오늘 두 문제 틀려 속상하다고 울상 짓던 아이……. 그 아이는 오늘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퇴근할 시간이구나. 혹시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러 오다가, 아차 하고 돌아섰던 것은 아닐까 .
“그래? 그러면 내일부터 몽땅 만점 맞으면 되겠구나!” 통통한 볼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이렇게 말해 주면, 두 눈을 반짝거리며 “아! 정말?” 하고는 내 무릎에 폴짝 올라와 반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종알종알 들려주던 큰딸아이의 결혼식은 잘 끝났다. 그러나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 아이가 중3 올라가던 해 그 애에게 물려주었던 책상에 앉아 본다. 문득 엠마 보바리를 시집보내고 회상에 젖었던 루오 영감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혼례식이 있은 지 이틀 뒤 부부는 떠났다. 샤를르는 환자들 때문에 더 이상 오래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루오 영감이 자기 마차에 두 사람을 태우고 바송빌까지 따라왔다. 거기서 그는 딸에게 마지막으로 키스를 하고 마차에서 내려 되돌아갔다. 한 백 보쯤 걷다가 그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마차가 저만큼 멀어져 가면서 먼지 속에서 바퀴가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는 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기가 결혼하던 때의 일, 흘러간 지난 시절, 아내의 임신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 역시 아내를 장인댁에서 자기집으로 처음 데려오던 날은 어지간히도 즐거웠었다. 크리스마스 무렵이어서 들판이 흰 눈에 뒤덮여 있었으므로 아내를 말잔등에 태우고서 눈 속을 터벅거리며 왔었다. 그녀는 한쪽 팔로 그를 붙잡고 다른 팔에는 바구니를 걸쳐들고 있었다. 코 지방 특유의 머리 두건에 달린 긴 레이스가 바람에 하늘거리면서 때로는 그녀의 입술 위에 닿곤 했고 그가 고개를 돌려보면 바로 가까이 어깨 위에 그녀의 발그레한 작은 얼굴이 보닛 모자의 금박 장식 아래에서 말없이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시린 손을 녹이기 위해서 그녀는 이따금씩 그의 가슴에 손을 찔러 넣었다. 그 모두가 얼마나 아득한 옛날인가! 그때 낳은 아들이 살아 있었다면 서른 살이 되었을 것이다! 그때 그는 뒤를 돌아보았지만 길 위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빈집처럼 쓸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 김화영 옮김, 『마담 보바리』 (민음사, 2000), p.50.
잘 살아라. 빨간머리 앤처럼 언제나 씩씩했던 우리 큰딸은 지금 신혼집 현관문을 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