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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버리기

곽노현 버리기

(보수의 공격, 진영의 배반, 외로운 투쟁)

함세웅 (지은이)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2012-07-02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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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버리기

책 정보

· 제목 : 곽노현 버리기 (보수의 공격, 진영의 배반, 외로운 투쟁)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정치비평/칼럼
· ISBN : 9788993854459
· 쪽수 : 288쪽

책 소개

서울시장 보궐선거 승리라는 정치적 계산 아래 벌어진 ‘죽이기’와 ‘버리기’ 사이에 ‘곽노현의 진실’은 숨 쉴 틈조차 없었다. 이 책은 ‘곽노현의 진실’에 관한 기록이자 진보진영의 성찰을 촉구하는 죽비소리이다.

목차

여는 글 시대를 위한 성찰과 기도 _함세웅
프롤로그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 _박동천

제1장 외면당한 진실, 진영의 배반
‘곽노현 버리기’에 관한 기록 _신동진
‘진보’의 진정한 가치를 묻는다 _엄기호
‘착한 사마리아인’을 처벌하려는 부도덕 _박동천
‘진중권의 곽노현 비판’에 묻는다 _한상희
나는 곽노현과 함께 돌을 맞겠다 _박재동

제2장 사건의 재구성
‘곽노현 사건’ 수사·재판 일지
‘부러진 화살’ 검찰기소장 _신동진
이 사건은 ‘강경선 사건’이다 _남경국
‘심리는 무죄, 판결은 유죄’ 이율배반의 법정 _손성조
선입견 깨트린 공판중심주의 _김남주
3인의 바보들 _조남규
“피고인과 자리를 바꿔 앉아야 할 검찰” _강기석

제3장 수구세력의 표적 공세, 곽노현 죽이기
질질 흘리는 검찰, 소설 쓰는 언론 _김칠준
MB정권, 정치검찰의 전성시대 _이재화
교육 모리배들의 집단 린치 _아이엠피터
이주호, 곽노현 죽이거나 따라하거나 _권재원
MB정권의 ‘진보교육감 사냥’ 잔혹사 _주요한

제4장 남겨진 문제들, 무엇을 할 것인가
진실을 질식시키는 ‘나쁜 언론’의 메커니즘 _강기석
시민주권 위협하는 정치의 사법화 _최재천               
진영논리 너머 ‘인애’의 공동체의식 _한면희
교과부의 낡은 의식과 관행을 해체하라 _김승환

제5장 곽노현을 말한다
곽노현과 강경선, 오랜 지기이자 고결한 동지 _천정배
내게도 이런 친구 하나 있으면 _이수호
상식에 맞지 않는 진실도 있다 _조희연

에필로그 곽노현의 질문 “우리는 어떤 사회를 갈망하는가” _김민웅
편집후기

저자소개

함세웅 (지은이)    정보 더보기
백과사전은 그를 대한민국의 교육자, 작가, 사회운동가, 로마 가톨릭교회 신부라고 정의한다. 그는 이제 붓글씨를 하느님께 봉헌해 성스럽게 한 ‘축성祝聖의 사제’, 축성의 서예가’이다. 하지만 그는 몇 개의 단어로 정의되지 않는다. 함세웅은 그냥 함세웅이다. 그는 윤형중 신부와 지학순 주교의 충실한 제자이며, 교우들에게는 소박하게 봉사하는 사제이다. 청년 학생들에겐 정의란 깃발을 함께 든, 국가폭력 희생자들에겐 함께 아파하고 함께 통곡한, 사회적 약자에겐 고난의 현장을 함께 버텨주는 동지이다. 반면 불의한 권력자들에겐 거북한 말씀의 몽치이고, 배신자들에게는 가을 서리보다 엄한 호통이다. 그는 순수하고 성실하며 열정적이다. 하지 못하는 일은 타협이고 멈추지 못하는 일은 불의에 눈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늘 사람들이 외면하거나 망각하는 곳에 먼저 가 있고, 아무도 말하지 않을 때 목소리를 낸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와 민족문제연구소, 인권의학연구소의 이사장을 맡아 활동하고, 민주화운동으로 돌아가시거나 고통받은 분들을 기리고 복권하는 일에 앞장서며, 남북의 일치와 평화공존을 위해 애쓰는 것 또한 그런 맥락에서다. 용산구 원효로에서 태어난 그는 아홉 살 때 특별한 체험을 한다. 6.25 전쟁통에 북한군의 포격을 피해 용산신학교 내 성모병원에 몸을 피했다가, 피 흘리는 사람들에게서 전쟁의 참상과 삶의 허무를 느낀다. 그 길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가톨릭신학교를 졸업한 후에 로마 유학길에 올라 신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는다. 귀국 후, 그의 삶은 1974년을 기점으로 격변한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지학순 주교가 구속되자 동료 사제들과 함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결성해 본격적인 인권회복과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맥아더 장군을 존경하던 소년은 어느새 투사가 되었다. 독재정권에서 수없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고 두 번의 감옥생활을 겪었지만 이를 통해 영적으로 더 단단해졌다고 고백한다. 사제가 세속의 일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을 깨고, 교단 안팎의 우려와 비판을 넘어, 그는 오랜 세월 사제의 길과 투사의 길을 나란히 걸었다. 2012년 은퇴 후, 그의 활동은 오히려 범위가 더 넓어졌다. 그것이 하느님께 부여받은 자신의 소명이라 여기는 한, 우리는 앞으로도 여전히 여기저기서 그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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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우리의 무대는 인간이 도덕적 딜레마에 처할 때 그 문제를 해결하거나 조정하는 ‘제도’다. (……) 진보가 진보이기 위해서는 프레임을 도덕의 문제에서 제도의 문제로 가져가서 보다 더 공세적인 입장을 취해야 함에도 여전히 '도덕' 타령을 하며 한 사람의 정의의 가능성을 지키는 데도, 제도적 전망을 내는 것에도 지나치게 무력하다. 오히려 진보야말로 이것이 도덕의 문제가 아닌 제도의 문제라고 공세적으로 치고나가면서 주도권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진보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부딪치는 인간이 도덕적 딜레마에 처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냄으로서 도덕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지 어느 도덕이 우위의 도덕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현행 선거법에서는 좌파든 우파든 언제나 단일화라는 과정에서 그런 딜레마를 통과의례처럼 겪지 않을 수 없다. 곽노현이 처한 도덕적 딜레마는 그 개인의 딜레마가 아니라 현행 선거제도에서는 출마하는 모두가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가 있을 수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함에도 좌파건 우파건 모두 다 마치 이게 자신들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개인 도덕의 문제인 것처럼 위장하고 있다.


양재원은 이보훈과 동서지간으로 박명기 후보의 회계책임자다. 그동안 얼핏 듣기로는 이 두 동서가 술자리에서 합의를 했다는 건데, 이게 무슨 효력이 있는 합의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후 신문에 나기를 그 자리에 최갑수 교수도 있었다고 하니, 점점 ‘합의가 있긴 있었구나, 우리 쪽도 자꾸 말을 바꾸면 안 되는데, 점점 불리해지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진실이 또 한 편의 코미디다. 웃을 수만은 없는 코미디. 결론부터 말하면 양재원은 박명기의 회계책임자인데, 마음은 곽노현 편이었다. 개인적으로 곽노현을 지지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곽노현으로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양재원이야말로 단일화의 숨은 주역이었던 것. 그런데 욕만 졸라 먹었다는 것. 그래서 억울해 죽겠다는 것이다. 후보 단일화의 시점은 2010년 5월 19일이다. 전날인 5월 18일에 단일화 합의를 보기로 했는데, 이 자리에서 돈 문제가 나와 결국 결렬된 상태. 합의가 안 되는 이유는 곽노현은 돈을 매개로 한 합의는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이 너무 분명하고, 박명기는 돈을 준다는 약속이 없으면 후보 사퇴를 할 수 없다는 것. 이 양립 불가능한 두 후보의 요구 사이에서 양재원이 움직인 것이다.


어려운 처지에 빠졌을 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게 되는가? 나의 절박한 상황을 외면하는 사회를 바라는가, 아니면 누군가 나서서 도움을 주는 사회인가? 자신이 불리해질 수도 있는데 도와주는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는가? 결국 곽노현 사건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갈망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때 그 결론이 나온다. 그건 단지 곽노현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우리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문제다. 자신의 삶을 버리려고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곽노현을 결코 버릴 수 없다. 진정으로 좋은 사회는 법이 윤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가 법을 이끄는 사회다. 우리는 지금 어떤 사회에 살고자 하는가? 답은 바로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오해의 가능성이 있다는 정황을 내세워 윤리적 선을 행할 수 있는 권리가 법으로 부정되는 사회는 선과 결별하는 습관을 기르게 된다. 그런 곳에서는 누군가 곤경에 처해도 상황에 따라 혹여 오해를 살 두려움으로 그를 구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 “그”가 다름 아닌 당신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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