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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3866247
· 쪽수 : 368쪽
· 출판일 : 2011-01-14
책 소개
목차
마이 프린세스
작가의 말
드라마 주연배우 컬러 화보집
리뷰
책속에서
설은 사진 촬영을 마치고 그 복장 그대로 스텔라를 궁 밖까지 배웅했다. 리무진에 오르기 전 스텔라는 설과 포옹하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것이 이제야 진짜 사람이다 싶었다. 감격에 젖어 있는데, 뒤에서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그녀를 깨웠다.
“수고했어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공짜로 한 것도 아니고요. 그럼 계산은….”
남자는 지갑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다가 멈칫거렸다. 설마 하니 돈을 떼먹으려는 수작은 아니겠지, 설은 미심쩍은 눈으로 지켜보다가 한마디 했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나랏일 하시는 분이 화장실 들어갈 때 나올 때 마음이 달라지면 안 되죠.”
“이거 100만 원짜린데?”
‘뭐야, 이 사람. 지금 돈 자랑?’
설이는 냉정하게 말했다.
“장난하세요? 현금 주시면 되잖아요.”
“현금 없는데, 거슬러줄래요? 카드는 안 될 테고.”
“저 음식 갖고 장난치는 사람이랑 돈 갖고 장난치는 사람 진짜 싫어하거든요? 빨리 주시죠.”
“계좌번호 문자로 보내요. 바로 부쳐줄게요.”
“와,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이런 건 현장에서 바로 계산하는 거라고요.”
남자는 설이에게 명함 한 장을 던지듯 건네주며, 잡을 겨를도 없이 차를 타고 가버렸다. 설이는 멀어져가는 차 뒤꽁무니를 쳐다보다가 문득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시청 한복판에서 공주 옷을 입고 시련당한 여자처럼 처연히 서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활옷을 말아 쥐고 궁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녀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자신에게 명함 하나를 던져주고 간 이 남자와의 인연이 어떻게 이어질지….
펜션에서 10분 정도 차를 끌고 나오자 소소한 상점들이 약한 불을 밝히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득 저녁식사 전 그녀가 그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편의점이나 식당을 찾으려면 한 시간 반 정도를 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진짜 동생이라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길가에 차를 주차해놓고 슈퍼라고 하기엔 작고 구멍가게라고 하기엔 어중간한 가게에 들어갔다. 설은 선반에 진열된 물건들을 이것저것 꺼내어 계산대에 올려놓고는 뭐하냐는 듯 해영을 바라보았다. 해영이 계산 안 하고 뭐하냐는 무언의 눈짓을 보내자, 그녀 역시 눈짓으로 계산대 위에 올린 물건들을 가리켰다. 설명이 부족하다 싶었는지 빈손이라는 듯 두 손을 탈탈 털어 보이기까지 했다. 계산을 하라는 뜻이었다. 저 막무가내 정신이야말로 할아버지의 핏줄임을 증명하는 듯했다. 해영은 카드를 긁으면서 그녀가 자신의 고모가 틀림없을 거라고 단정 지었다. 그러자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웬 한숨? 돈 좀 썼다고 또 이런다.”
“너 대체 그동안 어떻게 산 거야? 커서 뭐가 되려고 이러냐?”
“내가 뭐 어때서요. 다들 예쁘게 잘 컸다고 난리구만.”
“너 장래 꿈이 뭐야?”
“돈 많은 백수요.”
“너 제일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야?”
“돈 많은데 일하는 사람. 진짜 존경스럽죠.”
“너 살면서 가장 감동 깊게 읽은 책은 뭐야?”
“금도끼 은도끼?”
“후… 너 정말 대학생 맞아?”
“와, 사람을 뭘로 보고. 왜요? 내가 누구처럼 학력위조 할까 봐서요?”
그는 그녀를 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한숨이 나왔다. 그녀가 말이 맞았다. 지금 가장 힘들어할 사람은 그가 아니라 바로 그녀였다. 그가 하는 행동은 마치 고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져놓고 왜 파문이 일어나냐고 호수에 대고 화내는 것과 같았다. 저만큼 성큼성큼 걸어가던 그녀가 무슨 일인지 다시 되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유학 갈게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할아버지 서재에 우리 아빠 사진이 있어요. 믿고 싶지 않지만, 그분이 날 버린 아빠가 맞는 거 같아요. 그 사진을 가져다줘요.”
“어, 알았어.”
“그리고 또 있어요.”
“말해.”
“나 건드리지 말아요. 함부로 대하지도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