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88901217635
· 쪽수 : 360쪽
· 출판일 : 2017-06-30
책 소개
목차
제1부
1. 가면의 세자, 이선(李?)
2. 백정의 아들, 이선(異線)
3. 대목의 손녀, 화군
4. 왕의 역린
5. 처음 사귄 동무
6. 가면의 진실
7. 왕자와 거지
8. 진격을 결심하다
9. 충신의 딸, 가은
10. 나는 조선의 세자, 이선이다
11. 외사랑
12. 죽음의 문턱
제2부
13. 인연(因緣)
14. 보부상 두령
15. 화군의 고백
16. 온실에서 만난 왕
17. 비출 수 없는 마음 一
18. 꼭두각시
19. 비출 수 없는 마음 二
20. 경갑 목걸이
21. 독살된 아이
22. 몽중인
23. 슬픈 뒷모습
24. 대편수
25. 궁녀
작가의 말
리뷰
책속에서
“이제는 제발! 말씀을 해주시옵소서. 아바마마. 소자가 가면을 써야 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입니까? 더는 병 때문이라 하지 마십시오. 이제 거짓은 듣고 싶지 않사옵니다.”
급기야 세자의 손이 가면을 붙잡았다. 조용히 뒤따르던 궁인들이 기겁해서 바닥에 엎드렸다. 그들은 코를 바닥에 딱 붙인 것으로도 모자라 두 눈까지 질끈 감았다. 결코 세자의 맨얼굴을 보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였다. 그런 반면, 언제나 임금의 뒤를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는 금군별장 범우는 챙 소리를 내며 칼을 뽑아들고 두 눈을 시퍼렇게 뜬 채 궁인들을 노려보았다. 세자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누르며 비통하게 물었다.
“이 가면을 벗으면…… 또 사람이 죽습니까?”
백 번도 넘게 한 질문이었다. 듣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환멸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백 번도 넘는 질문에 아바마마는 백 번도 넘는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어찌하여 소자의 얼굴을 본 자들을 전부 죽이시는 겁니까?”
“너에겐 병이 있다 하지 않았느냐? 그 병이 다 나으면, 그때, 가면을 벗게 해줄 것이야.”
“그 옥패가 누구의 것이냐?”
“저하의 것입니다.”
잔뜩 긴장한 태호가 옥패를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그대의 논리대로라면, 그대 손에 옥패가 있으니, 그대의 것이 아닌가?”
“그게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소인이 어찌 감히 저하의 옥패를 소유하겠습니까?”
“왕세자는 하늘이 내리기에, 옥패를 쥐고 있다 한들 그대가 세자가 되지 않는다. 물도 하늘이 내린 것. 어디에 있든 하늘이 백성에게 내렸기에 온전히 양수청 것이라 할 수 없음이야. 내 말이 틀렸는가?”
“그것이…….”
태호가 쩔쩔매며 대답하지 못하자 구경꾼들이 킥킥거리기 시작했다.
“판윤(判尹)은 백성을 지키고 보호하는 자리! 양수청 안에 있는 백성은 조선의 백성이 아닌 것이오?”
세자의 화살이 이번에는 판윤에게 겨눠졌다.
“하지만 저하. 주상전하께서 만드신 법에 따르면……”
“법? 그 법으로 백성을 지킬 생각부터 해야지, 벌할 생각부터 하는가? 지금 당장 저 물지게꾼을 풀어 주거라!”
여기저기에서 ‘지화자’가 터져 나왔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어깨를 덩실덩실 흔들며 춤을 추었다. 세자는 자신을 향해 환호성을 던지는 백성들을 둘러보았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그를 문둥병 세자라고 놀리던 사람들이었다.
“글 배운다고 구박하더니. 스승님 댁 물통은 왜 채워드린 거야?”
“돈이 없어 그런 거지. 뭘 물어? 계속 배우고 싶으냐?”
이선의 아비는 아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덧붙였다.
“대신 만날 맞고 다니면 안 된다. 백정 아들이 무슨 글이냐고 때리면, 우리 아버지 이제 백정 아니고 물지게꾼이다! 그래. 알았어?”
백정의 아들이라고 놀림당하는 모습을 본 모양이었다. 주먹질 하지 말고, 분란 만들지 말고, 사람들 앞에서 무조건 고개부터 숙이라고 가르치던 아버지였다. 아버지에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선은 답답하고 참담했었다. 잘못도 없는데 왜 고개를 숙여야 하며, 왜 맞아야 하는가. 가슴을 치며 울분을 터트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그런 그의 마음을 벌써부터 헤아리고 있었던 것일까. 마음이 짠해졌다.
“새벽부터 일하고 저녁에 공부할게.”
이선은 시큰해진 코를 손으로 쓱 닦아내며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중략)
이선이 눈을 뜬 곳은 당산나무 아래였다. 얼마나 지난 걸까.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려는데 뒤통수가 뻐근하고 어지러워 일어날 수가 없었다. 손으로 뒷머리를 만져 보니 핏물이 묻어났다. ‘아버지!’ 갑자기 이선의 뒷머리가 쭈뼛 서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버지…… 아버지……!”
이선은 아픈 머리를 문지르며 힘겹게 일어났다. 그리고 보았다. 당산나무에 매달린 아버지의 주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