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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액션/스릴러소설 > 외국 액션/스릴러소설
· ISBN : 9788994040103
· 쪽수 : 360쪽
· 출판일 : 2010-11-25
책 소개
책속에서
그는 휘갈겨 쓴 문서의 첫 번째 줄에 손전등을 가까이 가져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첫 번째 행의 끝에서 두 번째 단어는 몇 번씩이나 지운 다음 고쳐 쓴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입술을 움직여 낮은 목소리로 그 행을 읊조리는 순간, 그는 고쳐 쓴 그 단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Nel mezzo del cammin di nostra vita
우리네 삶의 여정의 절반을 지나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금방이라도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 지금까지 이런 기적을 경험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작가가 되고 싶어 했을까? 진정한 해답, 적어도 내가 진정한 해답이라고 믿을 수 있는 답이 떠오른 건 여러 해가 지나서였다. 나는 나 자신을 터프 가이라고 여겼다. 그런 측면에서 글쓰기는 그럴듯하고 멋진 일로 보였다. 헤밍웨이나 그와 비슷한 작가들 덕분이었다. 실제로 어떻든 글을 쓰는 건 남자다운 일로 보였다. 1940년대 후반의 W. H. 오든은 예외였다. 그에게는 ‘지배적인 동성애적 특성’이 있었다.
남자다운 일. 나는 작가가 된 이후에야 비로소 그것이 새빨간 거짓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소심함과 두려움을 느끼며 글을 썼다.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내 감정을 전달해야 했고 그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전에 살던 마을에서는 솔직하게 속내를 드러내면 곧 그곳으로부터 추방당하는 걸 의미했다. 게다가 그건 나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누군가의 눈빛을 마주 보며 가슴에서 우러나는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나와 맞지 않았다. 따라서 글을 쓰는 건 누군가의 눈빛을 쳐다보지 않고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이었다. 그것은 남자다운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겁쟁이가 할 일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둘은 똑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 진짜를 보고 싶나?”
“물론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친필 원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테가 직접 손으로 쓴 친필 원고는 단 한 조각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단 한 조각도.”
“만약 존재하면 그 가치가 얼마나 될 것 같나?”
“값으로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할 겁니다. 저 그림 값의 천 배에 달할 겁니다.”
나는 렘브란트의 그림을 가리켰다.
“단테의 친필 원고가 있다면 역사상 가장 귀중한 문학 자료가 될 겁니다. 친필 원고에 값을 매기는 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에 값을 매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우린 그걸 손에 넣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