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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88994353395
· 쪽수 : 676쪽
· 출판일 : 2014-06-16
책 소개
목차
낯선 아버지의 일기를 읽다_ 임정진
두 친구
홍경애
이튿날
하숙집
너만 괴로우냐
새 누이동생
추억
제1 충돌
제2 충돌
제3 충돌
재회
봉욕
새 번민
순진? 야심?
외투
밀담
편지
바깥애
김의경
매당
세 여성
중상과 모략
활동
답장
전보
열쇠 꾸러미
변한 병화
금고
단서
일대의 영결
새 출발
진창
장훈이
소녀의 애수
부모들
애련
소문
검거 선풍
겉늙은이 망령
피 묻은 입술
부친의 사건
백방
작가 연보
책속에서
“글쎄, 아버니께서는 망령이 나셔서 그리시든 옛날 시절만 생각하고 그리시든 형님으로서는 되레 그러지 못하시게 말려야 할 것이 아닌가요?”
“자네가 못하는 일을 내가 어떻게 말리나? 자네가 못하시게 하지 못하기나 내가 여쭈어 안 들으시기나 매한가지가 아닌가?”
“못하시게 하기는 고사하고 그렇게 하시도록 충동이고 다니는 사람은 누구게요.”
“글쎄 이 사람아, 딱한 소리도 하네그려. 그래 아저씨께서 누구 말은 들으시던가? 내가 다니면서 일을 꾸며놓은 것같이 생각을 하지만 자네 어쩌자고 그런 소리를 하나?”
“어쨌든 이 전황한 판에 무슨 정성이 뻗혔다고 별안간 십 대조니 십 몇대조니 하는 조상의 산소치레를 하고 있단 말씀이요?”
상훈이는 문제의 산소가 몇 대조의 산소인지도 모른다.
“아버니께 여쭈어보게그려!”
상훈이의 재종형 창훈이는 핏대를 올리고 소리를 높인다.
제삿날이라 열 시가 넘으니까 당내가 꾸역꾸역 모여들어서 사랑 건넌방 안은 뿌듯하고 담배 연기가 자옥하다. 상훈이는 제사 참례는 아니하여도 으레 제삿날이면 사랑에 와서 앉았다가 음복까지 끝나야 가는 것이었다.
영감님은 모든 분별을 하느라고 안방에 들어가 앉았고 사랑 큰방에는 윗항렬 노인들과 제삿밥 기다리는 노인 축이 점령하고 떠든다. 덕기도 아까 여덟 시가 넘어서 들어와서 제삿날 나다닌다고 조부에게 한바탕 꾸중을 듣고 안에서 제물 올리는 시중을 들고 있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어동육서니 조율이시니 하는 절차부터 가르치기 위하여 꼭 손자를 시키는 것이다. 영감으로서 생각하면 죽은 뒤에 아들의 손으로 제사 받기는 틀렸으니까 장손에도 외손자인 덕기 하나를 믿는 것이었다.
영감의 병은 차차 눈에 안 띄게 침중하여 들어갔다. 따라서 지 주사, 창훈이, 최 참봉 들 사랑사람은 밤중까지 안방에 들어와 살다시피 되었다. 그러나 영감은 병이 더하여 갈수록 아들과는 점점 더 대면도 하기를 싫어하였다. 상훈이는 인사를 차려서라도 아침부터 와서 밤에나 자러 가지마는, 사랑에서 빙빙 돌 뿐이다. 영감이 요새로 부쩍 더 그러는 데는 이유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돌아갈 때가 가까워서 그런지 덕기를 보고 싶다고 몇 번이나 편지를 띄우고 전보를 치게 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회답이 없어서, 영감은 가뜩이나 손자놈을 못마땅하게 생각은 하면서도 날마다 아침저녁 차 시간만 되면 기다리는 터인데, 상훈이는 그런 줄은 모르고 시키지 않게 한다는 소리가,
“아버니 병환이 그렇게 침중하신 터도 아니요, 그 애는 졸업시험이 며칠 안 남았으니 아직 그대로 내버려두시지요.” 하고,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듯이 말리었다. 물론 그것은 앓는 부친이 자기 병에 겁을 내는 듯하여 안심을 시키느라고 한 말이요, 또 사실 덕기를 그렇게 시급히 불러낼 필요가 없어서 그렇게 한 말이나 부친의 불호령이 당장 떨어졌다. 전보를 치고 편지를 해도 답장조차 없는 것은 아비놈이 중간에서오지 못하 도록 가로막기 때문이라고 야단을 하는 것이다.
영감이 덕기를 어서 불러다 보려는 것은 귀여운 생각에 애정으로도 그렇지마는, 한 가지 중대한 것은 재산처리를 손자를 앞에 앉히고 하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들을 쏙 빼놓고 하려는 것은 아니나 어쨌든 손자까지 앞에 앉히고서 유언을 하자는 생각이다.
부친의 첩치가는 끝났으나 또 급한 것이 수원집 처치다. 어린애를 데리고 본가로 갑네 하고 나가 앉았으니, 트집은 트집이요 하여간 집이 급하다. 태평통 집을 급히 내게 하고 들어앉게 하여놓으니까, 수원집은 이사할 분별은 꿈도 안 꾸고 손부터 내민다. 자기 몫을 어서 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의 몫은 삼년상이 끝날 때까지 맡아두라는 것이 조부의 유언이다.
“지금 아니 가져가시기루 축이 나겠으니 걱정이슈? 삼 년 받드는 동안 내가 시량 범절을 아니 댈 테니 돈 쓸 일이 있어 그러슈? 할아버니 유언을 어쩌면 달이 가시기두 전에 거역한단 말씀요.”
“삼년상 안 받들고 내가 딴 맘 먹을까 봐 그런 유언을 하셨는지 모르지마는, 그래 나를 그렇게 못 믿더란 말인가?”
“못 믿기로 말하면야 나를 못 믿어 그러시는 거 아니겠소?”
“그야 내 칼두 남의 칼집에 들어가면 찾기 어렵지 않은가. 재물이란 조화가 붙은 것이라 앞일을 뉘 알리!”
이 모양으로 이틀을 두고 실랑이를 한 끝에 수원집이 아주 집을 든다는 날 부친이 와서 금고 문을 열라는 엄명에 열고 말았다.
“줄 건 어서 주어버리지 잔뜩 붙들고 있으면 무얼 하니. 가겠으면 가구 제 정성 있으면 삼 년이라두 붙어 있는 거요.”
부친의 의견대로 수원집 모녀 몫을 내주는 길에 부친의 삼백 석도 가져갔다. 나눌 것을 다 주고 나니 덕기는 한시름 잊었다. 지 주사만은 오백 원을 주니까, 도리어 맡아두라 한다. 나 죽거든 장비 쓰고 남는 걸랑은 단 하나 남은 딸에게 주어달라는 것이다. 장비야 염려 말고 쓰고 싶은 대로 쓰든지 딸을 갖다 주라니까, 쓸데도 없거니와 딸이 굶을 지경은 아니니 하여간 그대로 두라는 것이다. 부친의 첩치가에 과용을 하였느니 큰마누라를 내몰았느니, 수원집의 하는 소위가 가증하다느니 말은 많았어도 모친을 모시게 되고 부친이나 수원집도 소원대로 자리를 잡고 나니 일이 모두 제 자국에 들어선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