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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파산 : 염상섭 대표작품집

두 파산 : 염상섭 대표작품집

염상섭 (지은이), 임정진 (추천)
애플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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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파산 : 염상섭 대표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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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두 파산 : 염상섭 대표작품집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88994353555
· 쪽수 : 500쪽
· 출판일 : 2014-09-22

책 소개

'한국문학을 권하다' 11권은 염상섭 대표작품집이다. 159편에 이르는 작가의 중단편소설 중에서 '만세전'을 포함해 '표본실의 청개구리', 'E 선생', '숙박기', '해방의 아들', '양과자갑', '임종', '두 파산', '굴레', '절곡' 등 빼어난 작품들만을 엄선해 수록했다.

목차

낯선 아버지의 일기를 읽다_ 임정진

만세전
표본실의 청개구리
E 선생
숙박기
해방의 아들
양과자갑
임종
두 파산
굴레
절곡

저자소개

염상섭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7년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서 태어난다. 중인 계층의 서울 토박이라는 계층적 특징은 염상섭 문학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그의 소설에서는 풍부한 서울말의 흔적과 근대적 삶에 대한 예민한 현실 감각을 찾아볼 수 있다. 관립 사범 학교를 중퇴하고 보성학교 중학 과정을 수학하던 중 1912년 염상섭은 일본 유학을 떠난다. 일본군 육군 중위였던 맏형의 도움으로 교토(京都)부립 제2중학을 마치고 이후 게이오의숙대학(慶應義塾大學) 예과 1학기를 다니다 자퇴한다. 그러던 중 조선에서 발생한 3·1 운동의 소식을 듣게 되고, 이에 3월 19일 오사카 덴노지(天王寺) 공원에서 단독적으로 독립 선언을 주재했으나 거사 직전 검거된다. 약 3개월간의 수감 후에는 요코하마의 복음(福音)인쇄소에 취직해 직공 노릇을 한다. 이 시기 경험한 양가적 경험, 즉 ‘근대 그 자체로서의 일본(문학)에 대한 의식’과 ‘제국 일본과 식민지 조선의 문제’는 이후 염상섭 문학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구체화된다. 1920년 1월 ≪동아일보≫ 기자로 임명된 염상섭은 귀국해서 정경부 기자로서 활동하다 1920년 7월 사직한다. 염상섭은 ≪폐허≫ 창간호 동인으로 활동하는 한편, 1920년 하반기부터 1921년 봄까지 오산학교에서 교직 생활에 몸담기도 한다. 1921년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하고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1924년 ≪시대일보≫에 발표된 ≪만세전≫은 염상섭 문학의 전환점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러한 문학적 성취는 1926년에서 1928년 사이에 이뤄진 두 번째 일본 유학과 결부되어 보다 심화된 문제의식으로 나아간다. 일본 유학 중에도 염상섭은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으며 일본인과 조선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의 문제(혈통, 혼혈)를 밀도 있게 다룬다. 1928년 2월 귀국해서 ≪이심≫, ≪광분≫ 등을 연재하는 것에 이어 마침내 1931년 ≪삼대≫를 발표한다. 1920∼1930년대 발표된 염상섭의 작품들은 식민지 근대의 문제를 탐구하며, 식민지 조선의 정치·경제·사회·문화·사상에 관한 사유를 전개하고 있다. 역사와 사회·현실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며 이를 깊이 있는 문제의식으로 구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리얼리즘적 성격을 나타낸다. ≪삼대≫ 이후 염상섭은 ≪백구≫, ≪모란꽃 필 때≫, ≪불연속선≫ 등의 장편 소설을 발표하지만, 이들 작품은 앞선 시기의 작품들에 비해 통속화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가운데 1930년대 중반 염상섭은 돌연 만주행을 선택한다. 진학문의 권유로 ≪만선일보≫의 편집국장으로 근무하며, 1939년 만주 안동 대동항 건설 사업 선전에 종사한다. 이 기간 중 염상섭은 장편 소설 ≪개동≫을 집필하고, 안수길·박영준 등의 창작집 ≪싹트는 대지≫와 안수길의 창작집 ≪북원(北原)≫ 등의 서문을 쓴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창작 활동을 보이지 않는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약 10여 년의 기간 동안 그는 일종의 ‘문학적 단절’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해방된 서울로 돌아온 염상섭은 <해방의 아들>을 발표하며 다시금 문학 활동을 이어 가고, ≪경향신문≫ 창간 당시 편집국장으로 근무하기도 한다. 해방의 감격과 함께 곧이어 마주하게 된 ‘해방 이후’ 식민지의 모순, 미소 분할과 신탁 통치, 남북 분단 등의 혼란한 사회 현실의 모습을 <엉덩이에 남은 발자국>, <삼팔선>, ≪효풍≫ 등의 작품을 통해 세밀하게 그려 낸다.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이 발발하지만 염상섭은 피난을 떠나지 못한다. 9·28 서울 수복, 10·25 중공군 개입, 1951년 1·4 후퇴의 혼란 속에서, 염상섭은 윤백남, 이무영 등과 함께 해군에 입대해 1951년부터 1953년까지 부산과 서울 정훈감실에서 해군 소령으로 복무한 뒤, 1954년 5월 임시 중령으로 전역한다. 전쟁의 발발과 폐허가 된 전후(戰後)의 현실 등과 같은 역사적 비극 앞에서, 염상섭의 소설은 일상적 삶의 감각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1950년대 중후반 이후 발표되는 일련의 후기 작품들은 주로 남녀 연애담에 기반한 결혼과 가족의 문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염상섭은 1963년 3월 14일 서울 성북동에서 타계한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의 삶은 서울에서 마무리된다. ‘작가’ 염상섭이 남긴 빛나는 작품들은 여전히 여기에 남아 있다. 염상섭은 평생에 걸쳐 작품 창작에 임하고, 소설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붙들었던 작가였다. 그가 보여 주는 치열한 소설 쓰기의 모습은 시대를 헤쳐 나가는 염상섭이라는 한 개인의 역사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거대한 물줄기로서 정립되어 가는 한국 문학사 그 자체의 역사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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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진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했습니다. 1988년 계몽아동문학상으로 등단해 2013년 『바우덕이』로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 외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나보다 작은 형』 『내 친구 까까머리』 『겁쟁이 늑대 칸』 『땅끝마을 구름이 버스』 『지붕 낮은 집』 『호야의 숲속 산책』 『채식 흡혈귀 딩동』 등 그림책, 동화책, 청소년 소설 등 130여 권을 출간했습니다. 유튜브에서 어린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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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어떻든지 우리는 그저 내지인과 동등한 대우만 해주면 나중엔 어찌 되든지 살아갈 테에요.”
하며 궐자는 또 한 번 사방을 휙 돌려다 보고 나서 목소리를 한층 낮추어 계속한다.
“가령 공동묘지만 하더라도 내지에도 그런 법률이 있다 하면 싫든 좋든 우리도 따라갈 테에요. 하지만 노형은 자세히 아시겠지만 내지에도 그런 법이 있나요?”
의외에 궐자는 공동묘지 이야기를 꺼낸다. 나는 아까 형님한테 한참 설법을 듣고 오는 길에 또 이러한 질문을 받는 것이 괴상하다고 생각했다. 언제 규정이 된 것인지, 어떻게 시행하라는 것인지는 나로서는 알 바도 아니요, 그까짓 것은 아무렇거나 상관이 없는 것이지만, 아마 요사이 경향에서 모여 앉으면 꽤들 문젯거리로 삼는 모양이다. 나는 한번 껄껄 웃어주고 싶었으나 그리할 수는 없었다.
“일본에도 공동묘지야 있지요.”
나 역시 누가 듣지나 않는가 하고, 아까부터 수상쩍게 보이던 저편 뒤로 컴컴한 구석에 금테를 한 동 두른 모자를 쓴 채 외투를 뒤집어쓰고 누워 있는 일본 사람과, 김천서 나하고 같이 오른 양복쟁이 편을 돌려다 보았다. 나의 말이 조금이라도 총독 정치를 비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중에서 무슨 오해가 생길지 그것이 나에게는 염려되는 것이었다.
“정말 내지에도 공동묘지가 있에요? 하지만 행세하는 사람이야 좀 다르겠죠?”
“그야 좀 다르겠지요만, 어떻든지 일본에서는 화장을 흔히 지내기 때문에 타고 남은 뼉다귀만…… 아마 목구멍뼈라든가를 갖다가 묻고 목패든지 비석을 세우지요. 그러지 않아도 살아 있는 사람도 터전이 좁아서 땅 조각이 금 조각 같은데, 죽는 사람마다 넓은 터전을 차지하다가는 이 세상에는 무덤만 남고 말 게요. 허허허.”
나는 이러한 소리를 하면서 묘지를 간략하게 하여 지면을 축소하고 남는 땅은 누구의 손으로 들어가고 마누 하는 생각을 하여보았다.
“그리구서니 자기의 부모나 처자를 죽었다구 금세루 살라야 버릴 수가 있습니까? 더구나 대대로 내려오는 자기 집 산소까지를…….”
궐자는 나의 말이 옳다는 모양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도 그래도 반대를 한다.
“화장을 지낸다기루 상관이 뭐겠소. 예전에 애급이라는 나라에서는 왕후장상의 시체는 방부제를 쓰고 나무 관에 넣은 시체를, 다시 석관까지에 튼튼히 넣어서 피라미드라는 큰 굴 속에 묻어두었지만, 지금 와서는 미라밖에는 되지 않고 만 것을 보면 죽은 송장에게 능라주의를 입히고, 백 평, 천 평 되는 땅에다가 아무리 굳게 파묻기로 그것이 무엇이란 말이오. 동상을 세우면 무얼 하고 송덕비를 세우면 무엇에 쓴다는 말이오.”
- 만세전


보배는 그러면 그렇지 그 훌륭한 양가구를 돈으로야 샀으랴 하는 생각을 하며 번역을 하여 들려준다.
“사랑하는 미쓰 리…….”
보배는 ‘사랑하는’이란 말이 선뜻 입에서 아니 나와서 그만두어 버릴까 하다가, 그거야 서양 사람의 편지투에 보통 쓰는 말이니 계관할 것이 무어 있으랴 하는 생각으로 학교에서 독본 번역하듯이 기계적으로 읽으면서도 귀밑이 뜨뜻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앞에 섰는 미인의 얼굴도 살짝 발개졌으나 그것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도리어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섰는 이 여자의 얼굴에는 반기는 듯하고 흡족해하는 화려한 웃음까지 떠올라 왔다.
다 읽고 나니까 이 미인은 편지를 받으며 그래도 좀 열적은 듯이 웃으며
“고맙습니다. 이 ‘리처드슨’은 바깥양반 친구인데 어제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방에 아무 치장도 없는 것을 보고 접수해 둔 양가구가 있으니 갖다가 쓸 테거든 쓰라구 보내준 거예요.”
하며 변명 삼아 양가구의 내력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헤에, 그거 좋군요.”
모친은 얼마나 좋은 것인지 보지도 못하고 허청대고 대꾸를 하여준다.
이 부인도 딸의 입에서‘사랑하는’어쩌고 하는 소리가 흘러나올 제 에구 망측스러워라 하고 주름살 진 얼굴이 붉어졌던 것이다. 도대체 그러한 편지를 딸에게 번역을 시키게 한 것이 잘못이라고 하였으나 이것도 집 없는 탓이니 어쩌는 수 없다고 속으로 혀를 차는 것이다.
“어머니, 그 색시 남편이 있나요?”
안집 색시가 들어간 뒤에 보배는 모친을 따라 방으로 올라오며 이런 소리를 한다.
“아, 그럼 남편 있지. 왜 편지에 무어라구 했던?”
“글쎄 말예요. 편지에 ‘미쓰’라고 한 것은 처녀에게 쓰는 말인데요, 지금 또 색시 말을 들으면, 바깥양반 친구니 어쩌니 하니 말이죠…….”
보배는 그 색시가 서양 사람에게는 처녀 행세를 하는 것인지, 리처드슨이 ‘미세스’라고 쓸 것을 잘못 쓴 것인지 어정쩡해하는 것이다.
“누가 아니. 처녀거나 갈보거나 아랑곳할 것두 없지만, 아마 첩인가 보더라.”
이 말은 전부터 들은 말이다.
“옷 입은 맵시가 딴은 그래요. 하지만 기생인지도 모르죠.”
“그두 모르겠지만 그 어머니란 이가 얌전한 여염집 아낙네인 걸 보면 기생퇴물 같진 않구…….”
모친은 딸에게 그 꼴을 보이기도 싫고 이러니저러니 입초에 올리기도 싫으나, 대체 본탈이 무엇인구 하는 호기심은 모녀가 똑같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 양과자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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