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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근세사(원~ 아편전쟁)
· ISBN : 9788994606279
· 쪽수 : 568쪽
· 출판일 : 2014-07-01
책 소개
목차
서론
1. 정복
정복의 조직화 | 이민족의 통치 | 왕조의 통합 | 타협
2. 통치
정치 기구 | 행정 혁신과 중앙 집권화 | 재원과 인재 | 지방 통치 | 청의 행정 능력 | 지방 행정 제도에 대한 청대의 비평
3. 성세
청 제국의 팽창 | 성세의 문화 | 경고의 징후들
4. 사회
인구 증가와 이동 | 토지와 노동력, 천민과 노예 | 민족 | 여자와 남자 | 청의 신사 | 가족과 종족 | 자선 활동
5. 상업
경영 혁신과 도시화 | 무역 활동 | 조공 무역 | 중국 안의 외국인 | 광동 무역 체제
6. 위기
세속적 변화 | 주기적 쇠퇴 | 국내의 반란 | 경제 침체 | 개혁 운동과 경세의 부흥 | 개혁 제안들과 정책들 | 서구의 충격
7. 반란
도적 | 비밀 결사 | 백련교도의 난 | 태평천국 운동 | 제2차 중영 전쟁 | 태평천국에서 살아남은 청 제국
8. 중흥
동치 중흥에 대한 네 가지 견해 | 제국의 부흥 | 초기의 산업화 |자강은 실패했는가 | 청의 대외 관계 악화 | 일본의 도전
9. 제국주의
19세기 말 중국에서의 제국주의 | 제국주의에 대한 중국의 대응(1895~1900년) | 배외주의 | 개인 정치 | 지방 정치
10. 혁명
조정 중심의 개혁 | 1911년 혁명에 대한 서양의 관점 | 학생 운동 | 혁명가 | 개혁주의 엘리트 | 제국의 마지막
결론
청의 황제들과 중국의 역대 왕조
참고문헌
지은이의 말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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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1919년 5·4 운동 이후로 중국의 민족주의적 역사가들은 청대 중국을 본질적으로는 서양 국가들, 그리고 최후에는 일본의 격렬한 제국주의적 침략을 받은 피해자로 묘사했다. 물론 이런 묘사는 어느 정도 타당하다. 그런데 정작 청이 제국주의적 수법을 어느 정도 사용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얼버무리고 넘어가려는 경향이 있다. 청은 최소한 18세기 말까지는 그 수법을 매우 잘 활용했다. 서양의 역사가들은 청대 중국을 더 이상 피해자 또는 이례적인 사례로 서술하지 않고, 대략 같은 시대에 유라시아 대륙에서 생겨났던 몇몇의 초기 근대 제국들(무굴 제국, 로마노프 제국, 오스만 제국, 대영 제국) 중의 하나로 묘사한다. 우리는 지금 이 제국들의 차이점보다는 제국들의 야심에서 드러나는 공통적인 특징인 광대한 영토를 관통하는 행정적 중앙 집권화, 의도적인 다민족성과 민족 경계의 초월, 그리고 특히 공격적인 공간적 팽창주의에 많이 놀라게 된다.
청은 명을 정복한 후 150년 만에 명 제국의 2배에 이르는 크기로 영토를 확장했고, 오늘날 중국의 대부분의 영토를 물려주었다. 청의 팽창에 기여한 수많은 무인, 정치가, 사상가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정복 활동은 유럽의 경험과 동일한 ‘문명화 임무’의 일환이었다. 부계 중심적인 가족 제도, 아들에 대한 균분 상속, 근친상간의 금지, 혼인과 장례 의식, 정주 농업, 호적에 등록되어 세금을 내는 호에 의한 농경지 소유, 그리고 한자를 읽고 쓸 줄 아는 능력과 같은 중국 고유의 역사가 만든 이러한 특별한 성과들은 문명 사회의 척도로서 적극적으로 변방이나 식민지에 이식되었다. 그것들이 청 왕조 자신의 목적에 도움이 되었을 때, 청의 통치자들도 그들의 신민들과 동일하게 이러한 사고들을 활용했다.
청을 초기 근대에 대륙을 기반으로 한 유라시아 제국의 전형적인 사례로 본다면, 1911년의 최종적 멸망은 시기적절했다고 말할 수 있다.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는 몇 년 후인 1917년에 붕괴되었고, 소아시아의 오스만 제국은 1922년에 공식적으로 소멸되기까지 10년이 넘는 동안 분할되었다. 기술적으로 변화된 20세기의 세계 속에서, 이러한 초기 근대 정치 조직의 형태는 다른 실패 요인들 중에서도 급격한 규모의 비용 증대로 인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 우리가 중화제국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왕조 흥망의 주기라는 맥락을 통해 청 제국을 본다면, 정치적 분열의 시기에는 종종 기존 체제와 다른 ‘제국’이 형성되었기 때문에(예를 들면 한과 당 사이의 남북조 시대, 당과 송 사이의 오대) 1911년은 시대를 나누는 기준으로서는 불충한 면이 있다. 적어도 이후 수십 년과 비교해볼 때 1911년의 혼란과 폭력은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떠한 실질적인 효율성을 지난 중앙 집권적 정치적 실체가 통치를 위해 등장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청의 ‘순환 주기’의 종말은 1927년의 국민 혁명이나 1937년의 일본 점령, 심지어 1949년의 공산당의 ‘해방’ 때까지도 진정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