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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88994752563
· 쪽수 : 888쪽
· 출판일 : 2013-11-18
책 소개
목차
상권
약어
서문
제1장 서론
제2장 바울 서신의 단어 용례 관찰
제1부 분석
제3장 데살로니가전후서
제4장 고린도전서
제5장 고린도후서
제6장 갈라디아서
참고 문헌
하권
약어
제7장 로마서
제8장 옥중 서신: 빌레몬서와 골로새서
제9장 옥중 서신: 에베소서
제10장 옥중 서신: 빌립보서
제11장 목회 서신
제2부 종합
제12장 종말론적 성취인 성령
제13장 하나님의 인격적 임재인 성령
제14장 구원론적 성령
제15장 성령과 하나님 백성
제16장 여기서 어디로? 바울의 성령론이 갖는 타당성
부록 바울 이전의 성령론
참고 문헌
주제 색인
현대 저자 색인
성경 및 고대 자료 색인
역자 후기
책속에서
이 연구서에서 풀어가는 두 가지 과제는 오랜 세월 바울 서신을 통해 사도 바울을 연구하고 그와 동고동락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첫째, 대체로 사람들은 성령이 바울의 삶과 사상에서―그리스도인의 삶에 역동성을 부여하고 삶으로 체험할 수 있는 실재로서―긴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간과하거나 그저 한두 마디 생색내기 정도로 언급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잦다. (…) 따라서 여기서 내가 맡아야 할 과제는 바울의 체험과 신학 속에서 성령이 행하는 긴요한 역할을 내가 파악한 대로, 그러나 또한 정성스런 주해 작업의 결과물로서 설명하는 것이다. (…) 둘째, 나는 바울이 자신의 체험과 신학 속에서 성령을 늘 하나님의 인격적 임재와 관련지어 생각했다고 확신한다. 성령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기다리는 우리 삶과 공동체 안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그것도 능력 있게 임재하시는 방식이다. 바울은 성령을 하나님의 인격적 임재라고 이해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또 성령을 늘 능력을 부여하는 임재라는 관점에서 이해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바울에게 성령은 자신이 체험한 실재(an experienced reality)였다. 이 점은 내가 일부러 아주 많은 공을 들여 증명할 것은 아니다. 여러 해에 걸쳐 자라온 확신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주해가 그 점을 적절히 증명해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서문” 중에서
지금 우리 관심사는 바울이 성령에 관하여 말하는 내용이다. 우리가 본디 바울의 성령 이해 속으로 들어가려면 그가 성령에 관하여 말하는 내용을 거쳐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신학 문제는 단순히 모든 본문을 비교하며 검토하고 이 본문들을 어떤 신학적 체로 걸러가며 샅샅이 훑어보는 차원에서 더 들어간 더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가 성령이라는 문제를 다룰 경우, 이는 곧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체험에서 본질인 문제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체험을 통해 초기 교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가져다주신 구원을 자기 것으로 삼게 되었고, 신자들 역시 이 체험을 통해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들 자신의 실존이 갖는 본질을 종말론이 말하는(마지막 때의) 실존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성령은 하나님이 당신 백성에게 베푸실 위대한 미래가 이미 현재 속으로 뚫고 들어왔다는 증거였고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하신 일들을 종결하시리라는 보증이었다. 그러므로 성령은 신자들이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삶을 온전히 체험하고 이해하는 데 절대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그런데 이런 전제가 되는 문제들을 성찰하며 살피지 않고 넘어가는 일이 자주 벌어지곤 한다. 이때 이 전제가 되는 문제들은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이루는 “내용”의 일부일 뿐이다. 사람들이 그런 문제들을 놓고 말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아무 준비 없이 대충 이야기하고 무미건조할 뿐이지 심사숙고 끝에 나온 설명이 없다. 그런 식으로 보면 결국 바울의 “성령 신학”이란 책을 쓰려고 하는 것은 다소 하찮은 일일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바울이 분명하게 말한 것들뿐만 아니라, 그가 분명하게 표현한 몇 가지 일들이 되비쳐주는 체험들 밑바닥에 흐르는 흐름들을 함께 붙들고 씨름해봐야 한다.
“제1장_서론” 중에서
이 시대 신자들이 보통 갖고 있는 이해와 달리, 1세기 신자들은 성령이 능력으로 자신을 드러내신다고 이해했다. 그리고 그렇게 추정했다. 이런 경우가 하도 많아서 가끔은 “성령”과 “능력”이라는 말을 서로 바꾸어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누가는 두 행이 서로 균형을 이루는 셈어 시가 등장하는 누가복음 1:35에서 이 두 말을 서로 바꿔 사용한다. 또 예수의 공생애 사역을 모두 성령의 활동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눅 3:22; 4:1, 14), 누가는 분명 5:17에서 “성령의 능력”이 병을 고치시는 예수와 함께하는 것으로 말하려 한다고 볼 수 있다. 바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바울은 특히 “성령의 능력”과 같은 말을 사용할 뿐 아니라(롬 15:13, 19), 이 성령과 능력이라는 두 말을 결합하여 성령의 임재는 곧 능력의 임재를 의미한다고 말하곤 한다(살전 1:5; 고전 2:4; 갈 3:5; 롬 1:4; 엡 3:16; 딤후 1:7). 이 사례들 가운데 몇 가지는 바울 자신이 펼친 사역을 말하는 문맥에서 등장한다(살전 1:5; 고전 2:4; 롬 15:19). 그러나 그 외 사례들은 성령이 신자들의 삶 속에서 능력 있게 활동하심을 말하는 것들이다. 그런 점에서 바울이 성령을 언급하는 다른 사례들도 늘 능력의 임재를 암시하며, 그가 능력을 언급하는 사례들 가운데에도 성령의 임재를 암시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가령 살후 1:11; 고전 4:20; 5:4; 고후 4:7; 6:7; 12:9, 12; 13:4; 골 1:11, 29; 엡 1:19, 21; 3:7, 20; 딤후 1:8).
“제2장_바울 서신의 단어 용례 관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