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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미술 > 미술사
· ISBN : 9788995747292
· 쪽수 : 376쪽
· 출판일 : 2008-06-10
책 소개
목차
서문
한국미술사의 큰 줄기-일본에 남은 고대 한국미술
한국미술과 어머니 존 코벨 박사
1장 한국 무속과 일본 신토
서울에서 산 고대 한국의 청동거울
한국 무속과 신토의 액막이
신토신사를 지키는 고구려 개, 코마이누
오사카의 한일 출토유물 비교전
2장 백제의 불교전파 - 아스카 불교문화
백제의 불교 전파와 호코지
소가의 집권과 일본불교
이들은 누구인가?-소가 이나메, 소가 우마코, 소가 이루카
후지노키고분 발굴과 출토품
고구려풍 다카마쓰고분과 고려신사
동대사와 교기 스님의 신불습합
동대사 대불을 주조한 한국인
3장 백제미술의 보고, 호류지
7세기 백제인의 건축, 호류지
구다라관음으로 불리는 백제관음
백제 성왕이 쇼토쿠 태자로-몽전의 구세관음
한국의 호랑이가 그려진 옥충주자
돌이가 만든 불상들- 금당 삼존불과 약사여래불
금당의 닫집과 무령왕비의 봉황
금당의 사천왕상-청동관, 자세, 발밑 도깨비 등 한국적 특색 그대로
소형 불상들-승려들이 지녔던 듯
호류지 금당벽화와 독일학자들
교토, 핵폭탄을 피하다
4장 꽃피어난 문화
백제가 전한 다양한 문화-정원예술의 경우
백제인의 첫 정원과 13세기 사이호지 선 정원
선 정원의 근원을 말하다
안압지와 쇼소인의 유물
양산보의 소쇄원과 센리큐의 초암다실
하타 가문의 교토 땅과 비단 직조업
야마누에 오쿠라-중세 이래 일본에서 활약한 한국인들
5장 한국에서 사라진 고려불화
고려불화 국적 밝혀낸 야마토분카칸
왜구의 고려불화 약탈과 보존
고려불화, 한국으로
고려불화론1-고려불화특별전이 열리기까지
고려불화론2-다이토쿠지 고려불화 <양유관세음도>의 국적 찾기
6장 일본으로 간 조선화가들
후쿠이 교수의 연구
슈분의 금강산 행과 15세기 일본화단
조세쯔의 선화 <호리병으로 메기를 잡다>
이수문의『묵죽화첩』- 15세기 최고의 걸작
문청의 <유마거사도>와 <여소 초상>
조선인 승려화가들 - 조세쯔, 이수문, 문청, 복케이, 카오, 레이사이, 료젠
7장 15세기 교토의 한국센터, 다이토쿠지
다이토쿠지 삼문의 고려16나한상
새벽에 보는 다이토쿠지의 선화
다이토쿠지의 잇큐
조선의 이수문과 다이토쿠지의 잇큐
임진왜란과 도자기
온돌이여 영원하라 - 라이트의 온돌 건축
8장 한국예술 되살리기
야마토분카칸과 호암미술관, 간송미술관
한국에 드리운 일본의 그늘
한국미술사 영문판 나와야
미술품의 해외 반출과 일본 속의 한국미술품
한일 외무장관 회담과 전라도 밥사발, 이도다완
편역자 후기
원문 출처
색인
책속에서
사리함을 안치한 방식도 한국 절의 그것과 똑같다. 결국 백제장인들은 백제에서 하던 방식을 일본에서도 똑같이 한 것이다. 호류지 5층탑 심주밑에 안치된 사리함은 먼저 조그만 유리병에 사리를 담고, 이를 금으로 된 함에 넣은 다음 다시 은으로 된 함에 넣고 그 다음엔 동으로 된 함에 넣은 뒤 마지막으로 커다란 항아리에 넣은 것이다. 그 다음에 이것은 심주밑 초석에 장치된 사리공에 안치되고 흙이 들어가지 않게 동판으로 사리공을 덮었다.
사리함이 장치되는 순서는 한국 절에서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포갠다.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굴된 사리함도 이와 같은 순서를 따른 것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넝쿨 속에 있는 사냥꾼을 새겨 넣은 동경이 함께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호류지는 한국과 우호적 과계를 맺으려 애썼던 쇼토쿠 태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절이며 일본 왕실과도 긴밀한 유대를 맺어온 절이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 본문 77쪽에서
노략질의 행태는 일정했다. 처음에는 조정의 창고를 급습해 세금으로 거둬둔 양곡을 훔쳐갔다. 양곡이나 종이, 귀금속류는 고려사회에서 돈처럼 거래하는 물자였으므로 어디 가든 흔했다. 사람을 납치해가는 것도 다반사였다. 1천여 명의 고려인이 이때 납치돼 일본으로 끌려갔다. 산업사회도 아닌 그 시대에 이들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인력이었다. 절에도 난입해 일본에 가져다 팔면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닥치는 대로 약탈해갔다. 절에는 청동정병, 청자정병, 상감 청자주전자 등 의례용 값진 보물들이 있었고 벽에 걸어둔 불화도 떼어내 훔쳐갔다. 이런 물건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 필요도 없이, 왜구들은 당시 일본에서는 만들지 못하는 이 귀중품들을 일본에 갖다 팔았다. - 본문 205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