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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 불교사/불교철학
· ISBN : 9788996135524
· 쪽수 : 238쪽
· 출판일 : 2010-10-01
책 소개
목차
제1장 삼계, 우리가 윤회하는 세상
삼계
욕계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
인간
천상
욕계 천인들의 삶
색계
색계 초선천
색계 이선천
색계 삼선천
색계 사선천
색계 천인들의 삶
무색계
제2장 업과 윤회
업이 되는 마음, 업이 되지 않는 마음
업의 특징
선업은 좋은 결과, 악업은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
업을 행하는 것도 받는 것도 마음이다
업과 업의 결과는 부처님 영역이다
업에 대해 주의할 점
모든 것이 업 때문만은 아니다
업은 숙명론이 아니다
업은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업의 분류
결과를 생산하는 장소에 따른 분류
욕계 불선업
욕계 선업
색계 선업과 무색계 선업
기능에 따른 분류
생산업
돕는업
방해업
파괴업
결과를 생산하는 순서에 따른 분류
무거운 업
임종 가까이 지은 업
습관적으로 지은 업
이미 지은 업
성숙하는 시간에 따른 분류
현생에 바로 결과를 생산하는 업
다음 생에 결과를 생산하는 업
아라한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결과를 생산하는 업
효력을 상실한 업
제3장 죽음 직전의 모습과 재생연결
죽음의 네 가지 원인
죽음 직전의 모습
즉음직전 인식과정의 대상
업
업의 표상
태어날 곳의 표상
죽음직전 인식과정의 대상이 다음 생에 미치는 영향
재생연결
재생연결식의 원인
재생의 법칙
제4장 십이연기, 윤회의 원리와 구조
윤회의 원리와 구조를 밝히다
연기란 무엇인가
십이연기의 구조
무명을 조건으로 행이 일어난다
행을 조건으로 식이 일어난다
식을 조건으로 정신과 물질이 일어난다
정신과 물질을 조건으로 육처가 일어난다.
육처를 조건으로 촉이 일어난다
촉을 조건으로 수가 일어난다
수를 조건으로 애가 일어난다
애를 조건으로 취가 일어난다
취를 조건으로 유가 일어난다
유를 조건으로 생이 일어난다
생을 조건으로 노사가 일어난다
십이연기의 세 가지 시기와 인과
십이연기의 세 가지 회전
제5장 행복한 죽음을 위하여
팔정도,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해 주는 수행
고통의 원인: 탐 · 진 · 치로 인한 왜곡
팔정도가 중도이다
알아차림과 지혜: 왜곡을 버리고 진실을 본다
팔정도와 계정혜
사성제와 팔정도
일상생활 속에서 팔정도 실천하기
일상생활 속에서의 선정수행
좌선을 통한 선정수행
일상생활 속에서의 지혜수행
사소한 실천이 기적을 만든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삼계
욕계 천상계에 아무리 좋은 복락이 있고 즐거운 과보가 많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무상(無常)한 것입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것입니다. 그곳에 가더라도 영원한 행복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 태어난 업이 다하면 또 다시 서른한 가지 세상 중 어느 한 곳에 태어나 고통과 즐거움을 겪으면서 그렇게 끊임없이 윤회를 해야 합니다.
≪법화경≫에 삼계화택(三界火宅)이란 말이 있습니다 삼계가 다 불타는 집과 같다는 뜻입니다. 욕계·색계·무색계가 즐거움이나 고통이 많고 적은 차이는 있지만 이 셋 모두 중생이 사는 세상이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아직도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업을 완전히 소멸해 아라한이 되기 전까지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삼계를 끊임없이 떠돌게 됩니다. 때로는 좋은 곳에 태어나 즐거움을 누리고 때로는 좋은 않은 곳에 태어나 극심한 고통을 겪는 것이 계속 반복됩니다. 경전에 보면 중생이 윤회하면서 흘린 눈물과 피가 지구상에 있는 바닷물보다도 많다고 했습니다. 이 삼계를 벗어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수행을 하는 목적입니다.
업과 윤회
사람마다 생긴 모습이 다르고 태어난 환경도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불행한 환경에서 태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아름답게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추하게 태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하게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허약하게 태어납니다. 이런 것들이 다 전생 업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전생의 자기 업에 따라 차이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나 ‘자작자수(自作自受)’라는 말처럼 자기가 지은 업의 결과를 자기가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업의 결과로 사람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아픈데 약을 얻지 못하거나 재물이 없거나 직장에서 상사를 잘못 만나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재생연결을 일으키는 ‘생산업’은 선업이었지만 그것을 방해하는 불선업이 많기 때문입니다. 불선업인 ‘방해업’이 많으면 비록 사람으로 태어났더라도 매우 괴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앙굿따라 니까야》의 <소금덩이 경>에는 같은 악업을 지었는데 왜 어떤 사람은 무거운 과보를 받고 어떤 사람은 가벼운 과보를 받는지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조그만 컵에 담긴 물에 소금 한 줌을 넣으면 그 물은 너무 짜서 마실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강물에 소금 한 줌을 집어넣으면 강물은 조금도 짜지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이생에 보시도 하지 않고 계도 지키지 않고 선행을 행하지 않고 함부로 살았다면 사소한 잘못으로도 다음 생에 악처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일한 악업을 지었더라도 보시도 많이 하고 계도 잘 지키고 수행도 열심히 했다면 악처에는 가지 않습니다.
?업은 고정불변한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획일적으로 이런 업을 지으면 이렇게 되고 저런 업을 지으면 저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일생 동안 지은 업들이 유기적으로 작용을 하는 겁니다.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현생에 내가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 업도 변할 수 있으니 업을 숙명론으로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견해입니다.
업을 행하는 것이나 업을 받는 것은 자아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자아에 의해서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조건에 따라 마음이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뿐만 아니라 한 번 일어난 마음은 다음에 일어나는 마음에 영향을 줍니다. 이런 것들을 불교에서는 연기(緣起)로써 설명합니다. 이와 같은 연기의 법칙에 따라 물질과 정신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반복되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윤회의 과정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많은 악업을 저지르고도 현생에서 행복하게 잘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이 지은 불선업이 아직 성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지 그 업이 결과를 맺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계속 그렇게 불선업을 짓는다면 이생에 나이가 들어서나 다음 생에 반드시 불선업의 과보가 일어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처럼 업의 결과는 이생에 바로 받을 수도 있고 다음 생이나 여러 생에 걸쳐 인연이 무르익었을 때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은 업의 과보가 당장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 업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단지 인연이 무르익지 않아서 과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지 업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죽음직전의 인식과정과 재생연결
불교에서는 죽음의 원인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눕니다. 수명이 다해 죽는 경우, 생산업이 다해 죽는 경우, 수명과 생산업 두 가지가 모두 다해 죽는 경우, 파괴업에 의해 죽는 경우입니다. 삶을 호롱불에 비유한다면 심지가 다하면, 기름이 다하면, 심지와 기름이 다하면 불길이 꺼지고, 심지와 기름이 아직 남아 있다 해도 고의로 꺼버리거나 강한 바람이 불면 불길이 꺼지는 것과 같습니다.
죽음의 마음이 일어나기 전 이생에서 마지막으로 일어나는 인식 과정인 죽음 직전의 인식 과정은 윤회하는 존재들에게 매우 중요한 순간입니다. 죽음 직전 인식 과정에 따라 축생으로 태어날지 천상에 태어날지 등 윤회의 향방이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태어날 곳의 표상이 나타날 때에는 직접 갈 장소가 나타나기도 하고 경험하게 될 물품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인간계에 태어난다면 직접 가는 장소가 어머니의 태 속이므로 자궁의 붉은 색상이 보이게 됩니다. 천상에 태어난다면 천상에서 살게 될 궁전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축생으로 태어나는 경우는 숲이나 들판, 강 같은 것이 보일 수 있고, 아귀로 태어나는 경우는 짙은 어둠이 나타날 수 있으며, 지옥에 태어나는 경우는 지옥의 불길이나 저승사자 등이 보일 수 있습니다.
죽기 전에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죽기 직전의 마지막 인식 과정이 우리의 내생을 좌우합니다. 물론 선업이 아주 강하거나 불선업이 아주 강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업의 힘이 어중간한 경우에는 여러 개의 대상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설사 이생에 악업을 지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죽음 직전에 정신을 차리고 알아차림을 유지하면 그 순간에 선업을 짓거나, 이전에 지었던 선업을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악처로 떨어질 것을 선처에 태어나는 것으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죽기 전에 염불을 열 번 하면 극락세계에 간다는 말도 임종 가까이 지은 업이 중요하기 때문에 나온 말입니다. 죽기 전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죽을 수 있다면 악처에 떨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항상 깨어 있는 수행을 하는 습관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