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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6292821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10-12-15
책 소개
목차
채마밭
단 감
그 세월이면 어디든
손녀의 인터뷰
하늘로 가는 길
추도식의 가족들
못난 사랑
엠마의 귀항
궤도 위에서
해바라기사부인
LA 영화관
저자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 고모! 내말 한 번 들어보래. 오늘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어. 글쎄, 둘째며느리가 오늘 주일예배 마치고 손자와 손녀랑 같이 왔는데, 고 어린것들 둘이서 할아버지 턱 밑에 얼굴을 대고 끝내 하나님 믿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지 뭐야! 할아버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만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 갑니다. 안 그러면 지옥 갑니다. 할아버지가 천국 가서 계셔야 나중에 우리가 가면 만나지요. 그래야 먼저 가 계신 증조할머니도 만날 수 있고요. 할아버지, 예수님 믿으세요? 아멘 하세요, 네? 할아버지. 어서요! 그리고 동생인 손자 녀석까지 누나를 따라 같이 할아버지를 졸라대니까 글쎄 오빠 입에서 아멘, 하는 거 있지! 그리고 또 확인을 하자 고개를 끄떡끄떡 하는 거야. 그런데 놀라운 건 불만스럽던 표정이 활짝 펴졌어. 그리고 늘 짜증만 내던 양반이 양처럼 유순해졌고. (…) 올케는 들떠 있었다. 언니, 정말? 하나님께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고 귀여운 손자 손녀들을 할아버지를 위해 사용하셨구나. 그녀는 감탄했다.
그녀는 찬송 소리가 나자 부리나케 분향소로 달려갔다. 예정대로 조카들이 섬기는 교회 부목사와 당회원이 위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그녀는 자리가 없어 입구에 서 있는 성도들 사이에 끼어 섰다. 그리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평화롭게 찬송가를 따라 불렀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하늘로 가는 길」중에서
마침내 조카들이 상을 들고 남자들 앞에 가져다 놓았다. 그때 남편의 음성이 들렸다.
“이것 보라고! 다 좋은데 음식까지 꼭 이래야 되느냐 이 말이다, 내 말은? 절은 안 해도 상은 평소대로 차려야지. 옛날부터 어머니가 하시던 제사음식 그대로 말이야… 내 원, 이렇게 허전해서야… 이래서야 조상들 앞에 면목이 서겠어?”
남편은 상 위를 훑어보더니 서운한 모양이었다.
“어머님이 생전에 좋아하시고 또 평소에 드시던 걸 먹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았어요.”
그녀가 달려가 해명을 했다. 그러자 남편이 다시 말했다.
“평소에 먹는 것 말고 말이야, 우리 고유의 명절 제사음식을 이럴 때 먹지 못하면 언제 먹어보겠어? 그럼 당신 말대로 제사 다 치우고 나면 이제 큰 생선들은 평생 먹어볼 수도 없겠네? 그리고 여러 가지 나물과 갖가지 해물로 끓인 탕국으로 비벼 먹는 재미도 이젠 더 이상 맛볼 수 없고? 큰며느리가 어머님 음식 솜씨 전수 받았으면 대대로 전수시켜야 하는 것도 당신 책임 아니야? 그래야 대대로 그 음식 맛을 후손에게 전해주지. 그것도 우리 고유의 문화야, 음식문화!”
“오빠의 말에 저도 전적으로 찬성해요.”
셋째시누이가 동의를 했다.
“그러고 보면 제사 때처럼 차린 음식이라고 해서 추도식에는 안 된다는 법이 없잖아? 그냥 우리 고유의 음식인데… 그러니 이런 건 가족들의 의견에 따르는 것도 괜찮겠네. 큰 올케, 그렇지 않아요? 어차피 산 사람들이 먹을 음식인데.”
둘째시누까지 찬성을 하자 너도나도 맞장구를 쳤다. 그녀도 내심 그 말에 찬성을 하고 그냥 넘겼다.
-「추도식의 가족들」중에서
드디어 실내를 밝히던 전등이 꺼지면서 영사막이 밝아왔다. 백 박사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마음이 몹시 다급했다. 가슴이 뛴다. 그는 의자 난간을 잡고 통로를 따라 천천히 밖을 향해 걸어갔다. 미국 영화 예고편이 상영되면서 실내는 화면의 변화에 따라 어둠과 빛이 교차했다. 영화 속의 인물들이 하는 대사도 계속되었지만 그의 귀에는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복도로 나오자마자 휴대폰으로 아들의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헬로.”
여자 직원이 그의 주문에 따라 변호사에게 전화를 넘겼다. 드디어 아들의 음성이 들렸다. 얼마 만에 듣는 목소린가? 그 목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임을 미처 몰랐다. 조셉의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그 다음 에스더, 그리고 냉랭한 아내의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여보세요? 말씀을 하세요?”
조셉의 다그침이 아스라이 들렸다. 백 박사는 이미 아내의 속삭임에 사로잡혀 있었다. 대학 캠퍼스에서 아내가 입학을 하던 날 처음으로 만났던 그 장소… (…) 비로소 백 박사의 입에서 참았던 흐느낌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LA 영화관」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