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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 홑이불의 전설

베 홑이불의 전설

채종항 (지은이)
  |  
연장통
2012-09-03
  |  
13,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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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 홑이불의 전설

책 정보

· 제목 : 베 홑이불의 전설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6649847
· 쪽수 : 184쪽

책 소개

일상에서의 느낌과 생각을 전하는 채종항 수필집. '삶 속에서', '시와 사색', '그리움' 총 3부로 구성되었다.

목차

삶 속에서

017 __ 2월 1일, 일요일 아침에 부친다
023 __ 기쁜 우리들의 젊은 날이여
029 __ 나의 꽃밭
035 __ 일기 1
041 __ 화초를 들여놓으면서
047 __ 열어주소서, 닫힌 것을
053 __ 옛날은 남는 것
059 __ 인간이 가진 최선의 무기는 사랑
067 __ 사랑꽃
073 __ 노인대학의 소풍
079 __ 설거지와 주부
085 __ 일기 2

시와 사색

091 __ 백발은 아름답다
095 __ 이웃
099 __ 책을 읽는 여인
105 __ 오! 친구여. 내 친구 한나들이여!
109 __ 나의 가을
111 __ 낙엽(落葉)
113 __ 사월(四月)
115 __ 시(詩)가 죽으려 한다
117 __ 북한산을 보며
121 __ 초여름, 초록의 여신(女神)

그리움

125 __ 기도문
127 __ 나의 언니 종희(鍾姬) 여사
133 __ 베 홑이불의 전설
139 __ 오이지와 짠지
145 __ 우리 집 딸들
151 __ 할아버지와 손녀
155 __ 눈깔사탕 나무
161 __ 하늘에 있는 남편에게
167 __ 작고 적은 것으로부터

저자소개

채종항 (지은이)    정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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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후끈한 열기에 숨이 멎을 것 같고 작렬하는 태양빛에 눈을 똑바로 뜰 수가 없다. 올여름도 지독히 덥다. 초복(初伏)이 가까운 오늘, 나는 나만의 즐거운 연례행사를 펼친다.

지난 여름을 나고서는 물기를 말끔히 뺀 베 홑이불, 베 홑청 등이 후줄그레 걸레 같은 모습이다. 이리저리 뒤적이며 어떻게든 올여름에도 나와 함께 지낼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들어 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이 베 홑이불의 소멸과 함께 영 사라져 버릴까봐 겁이 나는 것이다. 이 베 홑이불은 내 혼수용으로 49세라는 나이를 먹었으니 어찌 온전하기를 바라겠는가. 매년 정성을 다하여 그저 살짝살짝 덮고 잘 관리한 덕으로 그래도 지금까지 맥을 이어왔다.

올해는 아무리 작은 몸이지만 나를 덮기에는 영 틀렸다 싶어 결연히 가위로 여섯 폭을 한 쪽 반으로 싹뚝 잘라서 베갯잇으로 만들어 버렸다. 맑은 진풀을 먹여 물기 살짝 걷힌 후 꾸득꾸득한 것들을 빨래 보자기에 싸서 질근질근 밟다가 달구어진 다리미로 재빨리 ‘쏴악’ 다렸더니 싱싱한 본래의 베 모양으로 살아난다. 반가웠다.

베나 모시 종류는 아무리 낡고 후줄그레 보여도 어머니가 하던 대로 그렇게 손질하면 몇 번이고 다시 살아나는 것이 신기하다. 마치 물기가 없어 고개 숙여 시들었던 화초가 물 먹고 일제히 살아나는 것과 같다. 시원하고 칼칼한 베갯잇을 벤 목덜미 따라 어머니의 체취가 되살아난다. 까마득히 잊고 지내던 은비녀 꽂은 낭자머리에서 흘러나오던 동백기름 냄새 섞인 엄마의 냄새!

나는 어느덧 어머니 등에 업힌 다섯 살 막내딸이 된다. 작은 몸매에 커다랗게 쌍꺼풀 진 고운 눈매의 우리 어머니. 언제나 그분은 늘 바쁘게 움직였다. 그 많은 집안일 틈틈이 명주, 베 등의 길쌈을 했다. 세 딸의 명절빔도 손수 짠 명주 중 제일 가늘고 고운 것을 골라 물감을 들이고 밤새 다듬질해서 동네 제일로 치장해 주었다. 어느 해인가는 내 설빔의 물감이 얼룩져서 고심하던 어머니 모습이 선하다. 우리 일남 삼녀 혼수의 주류가 어머니 길쌈으로 준비되었다.

이제 내 여름 베갯잇이 되어 버린 베 홑이불도 어머니가 짠 베로 만들었다.1930년대 내 나이 다섯 살 때의 우리네 농촌은 너무나 가난했다. 그래도 채씨(蔡氏) 종씨 마을에서 우리 집은 ‘골집’이란 가호(家號)가 붙었다. 아버지가 군청에 나가고, 상주 일군들을 두고 짓는 농사는 늘 어머니를 바쁘게 하였다. 그런 틈틈이 눈썰미 빠르던 어머니는 누에를 치고 삼을 삶아 길쌈을 하셨다. 긴긴 북국(北國) 고향의 겨울밤을 지새우며 30대 젊은 허벅지가 벌겋게 부르트도록 베실, 명주실을 뽑으며 타래를 만들어 놓았다가, 이듬해 봄 춘삼월 바람 잦고 날씨 화창한 날 집안 동서들과 넓은 앞마당 사방에 말뚝을 박아 베실을 ‘날았다’. 길게 말뚝 따라 빙빙 돌아 베틀에 올릴 ‘씨줄’이 될 길고 긴 실타래를 만든다. 이때 거친 솔로 풀을 여러 번 먹여 빳빳이 줄을 세워 베틀에 올린다.

지금 생각하면, 이른 봄부터 베틀에 앉은 어머니는 긴긴 여름 긴장한 모습으로 짚신 신은 발을 당겼다 놨다 얼마나 고되었을까? ‘찰카닥 통통’ 하는 북 튕기는 리드미컬한 소리에 한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다가올 때쯤에는 베, 명주 등 피륙이 한 필 두 필 포개져 우리 집은 풍요로웠다. 아마도 내 나이 열 네 살, 우리 집이 완전히 원산시로 옮겨질 때까지 이런 작업들이 계속된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공들여 짠 베로 혼수용 홑이불을 지으신 것이 내 결혼을 일이 년 앞둔 1947년경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때 이미 우리 집에는 월남(越南)할 때 어머니가 제일 먼저 이고 나온 ‘싱거미싱’이 있었는데도 웬일인지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 폭 33cm 여섯 폭을 한 땀 한 땀 홈질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건대 당시 월남 직후 우리 집이 안정되지 못한 여러 가지 정황과 막내딸인 나의 혼인 문제, 미처 월남하지 못한 동기간에 대한 안타까움 등 만감(萬感)을 삭이느라고 일부러 손바느질을 했을 것이리라. 바느질할 때 어머니 모습은 단아하고 무엇인가 엄숙한 분위기였다는 기억이 난다.

당신이 짠 베로 바느질하여 지은 이 홑이불, 이것에 깃들인 수고와 땀의 질과 양은 과연 저울과 자로 달아보고 재어볼 수 있는 것인가? 아른아른 닳아버린 베갯잇 하고 남은 베 조각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보듬다가 나는 와락 울어버렸다. 엉엉 소리 내어 한참을 어린애 같이 울고 나니 시원해지고 정신이 맑아지면서 불현듯 깨달은 것이 있었다.

어머니는 그 많은 일들을 하는 동안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불행하지도 불쌍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시대 우리들의 모든 어머니들이 그랬듯이 그들은 남편을 위해 자식을 위해 일하는 그 자체가 삶의 전부요 기쁨이고 보람이어서 아주 행복하고 충만 된 마음으로 그 일들을 하셨으리라. 그분들의 억척 위에 오늘의 우리가 서 있고 내가 서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 베갯잇으로 변한 내 베 홑이불은 앞으로 몇 번의 여름을 지나면서 영원히 사라져, 그 얘기는 우리 집의 전설(傳說)처럼 아득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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